다시 바그다드(3. 13)
다시 바그다드(3. 13)
  • 박기범
  • 승인 2003.04.0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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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그다드


다시 이라크로 들어올 것을 마음에 품은 채 암만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은 답답하기만 했다. 지난 번 보다 비자 받기가 더 어려울 거라는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하루하루 기다리는 시간은 애를 태웠다. 우여곡절 끝에 재입국 1진이 10일 떠나고, 남아 있던 이들 가운데 이해종 선생님, 러시아 유학생 OOO 씨, 혜란이와 내가 (우리 그룹 비자를 도와준 분이 한국일보 기자도 이 그룹에 끼워주기를 부탁하여 그이까지 모두 다섯 명) 이라크로 떠났다.

떠날 때는 늘 분주하다. 날짜가 확정되고 길어야 하루, 짧으면 몇 시간 정도밖에 준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그 사이에 저마다 한국에 연락을 보내거나 입국 후 해야할 활동 계획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도 이번에는 좀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떠날 때가 가까워오니 마음이 바빴다. 여태까지는 늘 국경 통과 문제나 경비 문제, 가이드나 비밀경찰과 관계를 맺는 문제를 나 아닌 다른 사람이 해왔는데, 이번에는 그런 것에 대한 처리 문제를 다른 이에게 미루어둘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할 줄 아는 게 참 없었다. 어디에서 누구에게 비자를 건네야 하고, 어디에서 누구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고, 그런 가운데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다 챙겨야 했다.

밥도 채 먹지 못하고 짐을 꾸려 내려갔다. 막상 차에 오를 생각을 하니 다시 긴장이 왔다. 떠나는 사람과 암만에 남을 사람들. 내가 그제 재입국 1진을 보내며 암만에 남던 생각을 하니 떠나는 우리보다 남아 있을 팀원들 마음이 먼저 헤아려졌다.

그 가운데 특히 상현 씨. 자기는 이라크에 들어가면 맨 끝까지 남겠다며 그룹 비자로는 가지 않겠다는 상현 씨. 상현 씨는 나더러 이라크에 들어가서 좋겠다는 말을 했다. 사실 상현 씨의 비자는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태. 그토록 이라크에 들어가 이라크 민중과 함께 하고 싶은 상현 씨는 오히려 맨 마지막까지 입국을 못하고 있다. 재입국 1진이건 2진이건 그룹 비자로 들어간 이들은 언젠가 나오기로 약속한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이라크에 들어가는 일이 누구보다 절실할 상현 씨인데, 들어갔다 돌아올 것을 기약한 이들은 다 들어가고 있어도 그이만 더 남아 비자를 기다려야 하는 처지이다. 우리 2진마저 떠나면 북적북적하던 암만 캠프에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허전할까? 우스갯소리 잘하고 재미있는 얼굴짓을 잘하던 상현 씨는 못내 서운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팀장 님. 우리가 차에 올라 마지막 떠나기 직전까지 팀장 님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약속한 대로 17일 개전 이전, 15일 유엔 사찰단이 빠져 나오는 시점에 꼭 나오라고 당부했다. 아무리 프랑스, 러시아가 어떻고 영국이 어떻고 해도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꼭 나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무래도 팀장님은 떠나는 우리들이 더 오래 남겠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을까 걱정인 모양이었다. 안전할 때 나오겠다고 약속한 건 단지 재입국에 대한 평화팀 차원의 동의를 얻기 위해 한 말일지 모른다 생각해서인가 보다.

암만 캠프에 남아 있을 팀원은 앞으로 계속 캠프를 지키며 이후 난민구호사업을 준비할 팀장님과 승로, 주재일 기자, 대사를 통한 비자를 계속 기다릴 상현 씨와 유은하 씨이다. 미처 챙길 것을 다하지 못하고 있을 때 우리를 싣고 갈 택시가 숙소 앞에 와 기다렸다. 정신없이 짐을 내리고 차에 올랐다. 조금 늦어 나왔으니 제대로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없었다. 잘 다녀올게요, 잘 하고 올게요! 우리가 탄 JMC가 출발했다. 오전부터 오던 비는 싸래기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다.

다섯 시간을 달려 요르단과 이라크의 국경에 닿았다. 이라크 쪽 땅으로 넘어가니 반가운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카심! 지난 번 이라크에서도 카심은 여행 안내원이라기보다는 우리 평화팀을 지원해주는 현지인이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활동에 대해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 적극 지지해주고, 정부 요원의 통제로부터 조금이나마 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중간에서 애를 참 많이 써주었다. 우리를 걱정해주었고 우리가 원하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위해 노력했다.

반가웠다. 일주일 전 그곳을 나올 때 그이에게 은밀한 부탁까지 한 나는 더욱 반가운 마음이었다. 아주 오랜 동무를 만난 것처럼 우리는 힘껏 끌어안았다. 여전히 막막하기만 한 이라크 땅에서 카심이 우리를 안내하고 도와준다는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걱정이나 긴장 따위가 싹 지워지는 듯 했다.

러시아 유학생 말이 며칠 전 이라크에서 나오려 할 때만 해도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했는데, 또 그럴지 모른다고 생각하던 거에 대면 수속은 일찍 끝났다. 여권과 소지품 검사를 하는 데 두 시간, 그래도 그건 일찍 끝난 편이었다.

다시 네 시간 남짓을 달려 국경 택시 정류장에 닿았다. 날이 조금 흐려서였을까? 지나 번 처음 이곳에 닿았을 때 너무 반가워 마음이 확 트이던 것하고는 좀 달랐다. 크게 감격스러울 것도,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었다. 단지 긴 시간 차를 타고 오느라 몸이 무겁다 느낄 뿐이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차를 갈아타려면 또 그 전만큼 기다려야 하나? 차에서 내려 멍하니 둘레를 둘러보는데 반가운 차 하나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하얀 색 봉고, 하이달! 내가 달려나가고, 하이달도 차에서 내려 뛰어왔다.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 소박한 사람이라는 게 그대로 다 써 있는 얼굴. 함께 활짝 웃으며 서로 힘껏 끌어안았다. 여행 안내원을 카심이 맡아줄 거라는 얘기야 암만에서부터 듣고 있었지만, 운전 기사야 낯모를 이가 나올지 모른다 생각했다. 다만 그것을 하이달이 해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 와아, 하이달!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면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텐데. 겨우 할 줄 아는 말 몇 마디로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더 많은 이야기는 얼굴로, 눈빛으로 나누고 있었다. 얼굴만으로도 서로 얼마나 반가워하고 고마운 마음인지 충분히 느껴졌다.

국경 택시 정류장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아이. 이라크 땅을 처음 밟을 때도 가장 먼저 반겨주었고, 아쉬움을 남기며 떠나올 때도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어준 아이. 일주일이 지나 만났을 때에도 내 이름을 기억해주었고, 무언가 주고픈 것을 찾다가는 장미꽃 냄새를 선물해준 아이. 모함마드. 우리 팀이 타고오는 다른 차를 기다리다가 모함마드의 집 앞을 가보았다. 얼마나 반가울까? 모함마드는 또 얼마나 좋아할까? 기대를 잔뜩 품고 모함마드네 대문 틈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는데 아이의 엄마가 안에서 손을 흔들었다. 얼굴을 알아보며 수줍게 웃어 반겼다. "반가워요. 모함마드는요? 나는 지난번에 만난 모함마드 친구예요." 아쉽게도 모함마드를 볼 수는 없었다. 여인의 말이 모함마드는 어디에 나갔다는 말을 하는 것도 같고, 슈퍼마켓으로 무얼 사러갔다는 것도 같았다. 모함마드, 다음에 다시 이곳 정류장에 들르게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보고 싶다. 다치지 말아야 한다, 모함마드.

정류장에서 팀원이 다 모이게 되어 바그다드 시내로 들어섰다. 아침이라 그런가, 공휴일이라 그런가? 거리는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길에는 사람도, 차도 얼마 없었다. 건물이 줄지어 있는 곳의 상가도 모두 문을 내렸다. 하지만 이상한 건 그렇다고 해서 군인이 많이 나와 있거나 전쟁의 분위기가 감도는 것도 아니었다. 분명 우리가 암만으로 되돌아나올 때는 이백 미터마다 군인이 나와 있고, 기관총이며 탱크 같은 무기가 시내 쪽으로 모였는데 다시 들어온 바그다드는 그 때와 분위기가 싹 바뀌어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거리는 상점이 문을 닫은 채 사람도, 차도 거의 보이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군인들이 경비를 두텁게 하는 것도 아닌 모습이니.

시내로 들어와 우리가 짐을 푼 곳은 알 칼리지 호텔. 지난 번 머무는 동안에도 숙소로 쓰던 곳이다. 호텔의 프런트며 이런 저런 심부름을 해주는 사람들 얼굴이 낯익었다. 그이들도 알아보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었다. 서로 아는 사이. 아주 짧은 인연이지만 우리는 이미 서로 아는 사이다. 만일 이곳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내가 아는 사람이 죽거나 다칠지 모를 일이다. 호텔에서 만난 이들 뿐 아니라 거리에서 내가 안아주던 아이, 내 손을 잡고 따라오던 아이 할 것 없이.

숙소에 들러 먼저 간단한 아침을 먹은 뒤 앞으로의 일정을 그려보았다. 우리가 이곳에서 앞으로 며칠 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얼마만큼 할 수 있을지. 일단 내가 들어온 비자로는 한계가 명확했다. 일단 이번에도 관광 비자로 들어왔으니 관광청에서 나온 정부 요원과 함께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그룹 비자의 형식이니 머무는 기간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다. 이곳으로 들어오며 팀에게 약속한 것, 그것은 우리 그룹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이라크를 나가자고 하면 다 같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개전을 17일로 예상하고 있는 상황, 목숨까지 달려 있는 위급한 상황이다. 적어도 자기 혼자 이곳에 더 오래 남겠다고 할 수는 있어도, 자기가 남고 싶으니 다른 팀원까지 같이 남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는 한 사람의 고집 때문에 돌아가고 싶은 이들까지 남게 만들 수는 더더욱 없는 일이다.

관광 비자로 들어왔으니 이 안에서 최대한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모습대로 움직이려면 먼저 우리에게 뚜렷한 계획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어느 시간대에 어디를 가고 싶다, 우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싶다, 우리가 ***를 가도 괜찮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결국 관광 안내원이나 관광청에서 늘 해오던 계획 속에 이끌려 다녀야 한다. 우리가 어디를 가자고 부탁하거나 요구를 해도 그게 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인데, 아예 그것조차 없다면 두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지난번에 견주어 이번에는 다양한 활동을 가능케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북과 꽹과리 같은 풍물을 비롯해 한국의 어린이들이 보내어준 사진과 그림, 엽서 따위가 상자로 하나 가득 있다. 또한 한국의 여러 단체에서 뜻을 담아 보내준 걸개가 많이 있다. 지난번에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없이 맨손으로 들어오지 않았나? 하지만 문제는 구체적인 장소나 일정에 스케줄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관광 비자라는 그룹 비자의 형식을 갖추기 위해 결합한 한국일보 기자를 뺀다면 우리 팀의 실질적 수는 네 사람인데, 사람 수가 적다는 것 또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차라리 개별 비자로 들어온 거라면 혼자이더라도 시간이나 장소 같은 것에 제약이 없으니 그런 부담에서도 자유로울 것이다.

우리의 계획을 마련해야 했다. 오늘 오전에는 어디를 가고 싶은지, 오후에는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내일은, 모레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우리의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우리가 마련한 계획을 가지고 의례적인 관광 일정에 대해 요구하고 조율해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일단 우리가 알기로는 내일쯤 재입국 1진이 바그다드에 최병수 선생님이 그려온 그림을 그리고 퍼포먼스를 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내일은 우리도 그 일정에 함께 하는 것이다. 설령 그 계획이 내일이 아니라 다른 날이더라도 걸개와 퍼포먼스를 하는 날 하루는 그 일정에 결합하기 위해 비워야 했다. 그렇다면 당장 오늘은? 우리는 지난 번 가보았던 올드 바그다드 마을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카심에게 부탁해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더불어 지난번에 다녀온 올드 바그다드 마을 뿐 아니라 그와 비슷한 서민 마을들을 다녀보고 싶다는 말도 부탁해보려 했다. 한국에서 아이들이 준비해준 사진이나 그림, 그리고 걸개들은 그러한 마을을 돌면서 전시를 하거나 나누어주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흔히 그런 곳은 외국인이 가기만 해도 아이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의 환영을 박곤 했으니 거기에 더해 사진이나 그림까지 준비해 가면 그 곳의 처지에 맞게 할 만한 것들이야 많을 수 있겠다 싶었다. 게다가 이 나라 사람들은 북이나 꽹과리 같은 악기를 치는 걸 아주 좋아한다 했으니 마을을 다니건 관광을 하건 언제나 악기를 치며 다닌다면 훨씬 더 이 나라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어차피 오늘은 첫날이니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관광 일정을 한 번은 따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속에서 러시아 유학생 OOO씨가 휴먼쉴드 및 IPT에서 계획한 일정이 있지 않은지 빠르게 알아보기로 했다. 지난번에 여러 나라 평화활동가들과 함께 한 집회에 참가한 것을 떠올려보면 이번에는 더 잘 준비해서 참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카심에게 말을 할 때는 먼저 우리가 이곳에 온 까닭을 한 번 더 이야기했다. 이 나라에 있을 거라 하는 전쟁에 반대하는 마음으로 왔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쟁을 반대한다는 뜻을 알리러 왔다, 그러니 우리가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바란다' 며 말이다.

오늘 일정에 대한 우리 의견을 들은 카심이 곤란한 얼굴을 지었다. 그 까닭은 오늘이 이라크 사람들에게는 무척 슬픈 날이기 때문이라 했다. 오늘이 바로 '이맘'이라는 사람이 죽은 날인데 이 날만큼은 이라크인 모두가 집에서 나오지 않고 조용히 보낸다 했다. 그런데 마을에 가서 악기 연주나 무슨 행사 같은 것을 하게 되면 사람들이 아주 좋지 않게 생각할 거라 했다. 아아, 그랬구나. 오늘 거리에 사람이 없던 것도, 자동차가 거의 보이지 않던 것도 모두 그런 까닭 때문이었구나. 어찌했건 계획한 것을 할 수 없다 하니 조금 힘이 빠졌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카심은 오늘은 첫날인데다 아직 정부 요원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니 관광을 하면 좋겠다고 권했다. 카심은 손에 들고 있던 관광 책을 보여주었다. 그 가운데 어느 교회 하나와 어느 건축물의 사진을 보여주며 무어라 말을 했는데 아마 오늘 가보았으면 하는 관광지가 그곳으로 가 보았다. 마음만 급한 데다 답답했다. 결국 첫날부터 관광 일정에만 매이게 되는 건가? 지금 시기에는 이라크로 들어가 봐야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그것도 왜 관광 비자를 내어서까지 들어가느냐고, 관광 비자로 들어가면 할 수 있는 게 더욱 없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고…… 우리 계획에 동의하지 않던 사람들이 떠올라 더 답답했는지 모르겠다. 더 조급한 마음이었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결국 오늘은 어디를 가거나 조용히 둘러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무 광장이나 거리를 간다 해도 사람들이 나와 있지 않으니 우리끼리 하는 것 말고는 그 무엇도 하기가 어려웠다. 궁리 끝에 생각한 건 하나, 한국에 있는 여러 모임에서 보내어준 플랭카드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광장에다 걸자는 거였다. 사실 그것만 해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될 것 같았다. 처음에야 플랭카드를 놓고 생각할 때 타흐리 광징이건 또 다른 어디건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무언가를 한 뒤에 그 자리에 하나씩 걸면 좋겠다는 거였다. 물론 그것들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민들이 어울려 함께 만든 건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아예 한 곳에 집중해서 다 거는 것도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럼 어디? 타흐리 광장. 타흐리 광장 앞이라면 우리가 준비해온 걸개로 그곳을 가득 두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팀원 가운데는 혹시 당국이나 경찰에서 허가를 안 해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적어도 걸개 서너 개는 충분히 걸 수 있을 것 같았다. 타흐리에 다 걸지 못한다 해도 카심에게 부탁하면 그 비슷한 다른 광장을 찾을 수 있을 거였다.

계획을 분명하게 세우지 못한 게 걱정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딪히면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후 한 시가 되어 관광 일정에 올랐다. 하이달이 운전을 하고, 운전석 옆에는 마타라는 정부 요원이 앉고, 카심이 우리를 안내했다. 자동차는 알 카리지 숙소 앞을 떠나 도심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너무 조용한 도시. 오늘이 어떤 날인지에 대한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직접 거리로 나서니 참 낯설었다. 어쩌면 이리도 사람이 없을 수 있나? '앨 홀라니 스트리트'라는 전자 상가가 줄지은 길을 지났고, 쇼루주 시장 뒷편으로 '알라쉬드 스트리트'라는 거리를 지났다. 거리 모습은 눈에 익었다. 지난 번 이라크에 머물 때 한 번 이상 지난 곳이었다. 특히 쇼루주 시장은 첫날, 첫 관광 일정을 나온 곳으로 복잡한 재래 시장 골목을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다닌 곳이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얼마나 이 나라 사람들의 애도가 깊기에 그 복잡하던 시장조차 사람을 찾아보기가 어려울까? 자동차 안에서 거리를 설명해주는 카심도 몇 번이나 다시 설명했다. 여기는 무척 복잡한 곳이다, 사람들과 자동차가 아주 바글바글한 거리인데 오늘만 이렇게 조용하다……. 혹시라도 이라크의 현실을 왜곡할 뜻이 있다면 이런 거리의 모습을 찍어 내보내 놓고, 이라크 사람들은 모두 전쟁 준비중인 듯 선전할지 모를 일이다. 활기와 생기, 살아있는 생명력이 넘치던 쇼루주 시장마저 오늘은 마치 '죽어있는 도시, 죽어 있는 마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자동차를 타고 도시를 둘러보는 동안 티그리스 강에 놓인 다리를 몇 개나 건넜다. 참 예뻤다. 한강보다 못하다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강변에 빼곡이 들어선 건물, 자동차가 가득 메인 강변 도로 들을 떠올리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강, 그것만을 놓고 본다면 한강보다 나을 것 없지만, 도시를 곁에 끼고 있으면서도 자연 모습이 그대로인 듯 했다. 다리를 건너며 내려다보는 티그리스 강에는 지금도 나룻배 같은 것으로 건너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오늘처럼 도시 전체에 사람이 없고, 자동차가 없는 날 보는 티그리스는 더욱 평화로웠다. 사람의 일에는 아랑곳없이 수천 년 전부터 이대로 흐르기만 했을 티그리스 강.

자동차에 탄 채 시내 몇 군데를 더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카심은 우리를 도와주면서도 관광 안내원의 구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야 우리 평화팀을 돕고자 하지만 겉으로는 정부 요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곳은 무슨 거리라고, 이곳에는 어떤 건물이 있는 곳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만 나는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죽은 듯한 도시 사이에도 드문드문 나와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게 좋았고, 문 닫은 시장 공터에 모여 앉은 사람들이 반가웠다.

우리가 타흐리 광장이건 어디건 걸개를 걸려면 줄이 필요했다. 분명 한국에서 온 물품을 풀 때는 줄이 충분히 많았는데, 여기에 와 찾으려 하니 보이지 않았다. 아하, 먼저 들어온 팀에서 하나도 없어 카심에게 걸개를 걸 수 있는 줄과 물감을 사고 싶다며

(쓰다 만 일지 입니다)


2003. 3. 13
박기범(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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