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바그다드에서
다시바그다드에서
  • 박기범작가
  • 승인 2003.04.23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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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바그다드에서

나는 잘 왔다.
여섯명이 함께 떠나려 했지만 막히고, 막히고, 이라크 국경을 혼자 넘었다.
오는 길, 고속도로는 곳곳이 폭격을 맞은 흔적이다.
버스가 뒤집혀 있기도 하다.
요 며칠 새 가장 위험한 것은 바그다드와 암만을 잇는 고속도로 위.
여지껏 서른여덟 대의 차량이 고속도로 위에서 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내가 들어올 때도 연달아 터지는 네 번의 폭격을 보았다.
바그다드로 들어오니 차라리 마음이 놓였다.

지난 두 번의 입국으로 낯익은 거리들.
나는 그저께 들어와 일단 알파나로 들어왔고, 아이피티 사람들과 함께 머물고 있다.
내 비자는 휴먼쉴드 비자이지만 하쉬미가 내어준 것이 아니라 요르단의 이라크 대사가 직접 내어준 비자이기 때문에 바로 싸이트로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여지가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날 한상진 씨가 추방당했고, 내가 들어왔을 때 이곳에 있는 평화팀은 유은하씨 혼자 뿐이었다.

나는 첫날밤을 알파나에서 보냈다.
7층. 높은 층일수록 위험한데, 방이 그곳밖에 없다.
처음 보는 아이피티 회원들은 모두 친절했고, 내가 7층 방을 얻었다 하니 모두 걱정한다.
방에 들자마자 유리창을 테이프로 붙였다.
솔직히 겁이 났다.

이튿날.
나는 제이드(아이피티를 관리하는 이라크 당국 책임자)에게 허락을 받아 카심과 하이달을 찾아 나섰다. 카심은 만나지 못했다. 하이달의 주소를 보여주며 택시 기사에게 찾아달라고 했다. 헤매고, 헤매고, 헤매다 하이달의 집을 찾았다. 하이달과 함께 붙잡고 엉엉 울었다. 하이달이 왜 왔느냐고 한다. 하이달을 만나 너무 반가웠다. 하이달에게 줄 약과 음식, 그리고 카심에게 줄 약과 음식을 가지고 왔는데 카심에게는 전하지 못했다.
일단 호텔로 돌아와야 했고, 오후 세시에 다시 하이달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하이달이 점심은 자기 집에 와서 먹으라고 꼭 약속해달라 한다.

기쁘다. 하이달을 만나다니.
차를 타고 움직이는 동안 타흐리 광장도 지나고, 알 카리지 호텔도 지났다.
사람들은 거리를 거닐고, 장사를 하기도 한다. 공터에서는 아이들이 맨발로 축구를 하기도 한다. 그냥 일상 같다.

세 시에 다시 하이달을 만났다. 하이달의 여동생도, 하이달의 조카도, 하이달의 어머니와 삼촌도 아주 반겼다. 하이달은 음식을 차려주며 이것밖에 못차려 주어 미안하다 한다. 이그… 하이달은 김광석 테이프를 틀어주며 이 노래를 들으며 너와 너희 친구들을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하이달이 준 열쇠고리를 보여주었다.
하이달이 사진을 가지고 왔다. 어렸을 때 사진부터… 그 중 두 장을 나에게 주었다.

저녁에는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갔다. 혹시 못갈까 싶어 그곳 수녀님께 긴편지를 썼다. (새벽에) 그것을 은하씨가 영어로 번역했다. 내 명함과 사진을 같이 주면서 수녀님께 그것을 전해달라 했다. 동화 작가라고, 빼빼 마른 동화작가라고, 기억하시느냐고. 나는 오로지 여기 아이들을 만나러 다시 들어왔다고, 수녀님이 허락해주지 않으면 폭격 시설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죽는 건 두렵지 않지만 그렇게 시설로 가서 폭탄받이가 되고 싶지 않다고, 아이들 곁에 있게 해 달라고……

수녀님들이 아주 반겼다. 아이들을 보니 눈물이 난다. 오, 노라, 낸씨, 꾸아꾸아, 오마르, 마르완, 두니아, 재키……
우리가 가져온 공동물품 중 약품들을 일단 모두 그곳에 보내었다.
아이들 저녁 먹는 동안 아이들을 보았다.

밤.

폭격 소리가 거세었다.
무서웠다.
침대에서 공책에 일기를 쓰다가 몇 번이나 놀랐다. 나도 모르게 침대 밑으로 내려와 엎드렸다. 누가 보았으면 우스웠을지 모른다. 겁이 났다. 그렇게 몇 시간을 있다가 더욱 거세어지는 소리에 더듬더듬 밑으로 내려갔다. 이미 전기는 나가 있었다.
2층에 은하씨를 깨워 방공호를 가르쳐 달라 했다.
은하씨는 나보다 훨씬 의연했다.
방공호에서 잤다.

시간이 없다. 은하씨에게 컴퓨터를 넘겨야 한다.
듣기로 어제만 800발의 폭격이 있었다 한다.
오늘 하이달과 함께 카심을 만났다.
호텔 앞에서 구두닦이 세이프, 알리, 하린을 만났다.
그들의 친구 하산은 못만났다. 내일 꼭 이리로 와 달라고 전해달라 했다.
만날 사람들을 다 만났다. 하이달, 카심, 하산의 친구들,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의 아이들, 아이들…….

오늘부터 비상. 앞으로 3일 집중 포화가 있을 예정이라 한다.
내 짐은 모두 2층의 은하씨 방으로 옮겼다.
나를 비롯한 고층에 숙박한 사람들은 당분간 방공호에서 생활한다
현재 나를 제외한 아이피티 회원은 모두 열 여섯.

오늘 한 번 더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다녀왔다.
오늘은 가지고 온 식량을 그곳에 모두 전했다.

오늘 아이피티는 회의를 해서 어떻게 자기 거취를 정할지 의논했다.
나와 은하씨는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아주 살고 싶다 이야기했지만
수녀님들은 그것이 곤란하다.
당국의 허락도 그렇고,
전쟁이 나면 이라크 인들도 모두 그곳이 안전할 거라 생각하고 몰린다 한다.
말로는 아이들을 돌본다 하지만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 위해…
어쩌면 나도 그런 속마음이 있는 거 아닐까?
그런데 혼자 호텔에서 폭격 소리를 듣는 건 무섭지만
아이들 곁에서 아이들을 안고 있으면 무섭지 않을 것 같다.

폭격 소리가 거세다.
아이들을, 친구들을 만나서 참 좋다.
내가 겁이 많아 무서움을 많이 타기는 하지만
그대로 알파나는 안전한 편이다.

잘 있다.

박기범(반전평화이라크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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