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죽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 박기범
  • 승인 2003.06.09 16:3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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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어제 오후 쯤 잠깐 부구 쪽으로 지나가는 길이었어요. 그 길은 외곽 국도 같은 데여서 자동차들이 빠르게 달리는 길입니다. 나 또한 다른 자동차들처럼 빠르게 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 사람들이 걸어다닐만한 길이 아닌데, 그 길 위에 웬 사람들 둘이 배낭을 잔뜩 짊어지고 깃발 하나씩을 들고 걷는 거였어요. 깃발 폼새로 보니 하여튼 무언가 '꿘' 냄새가 나더라고요. 그래서 무심결, 핵 폐기장 문제로 무슨 순례를 하는 이들인가 보다 했지요. 여기 울진은 핵 폐기장 후보지 문제로 지난 겨울 부터 아주 투쟁 분위기이거든요. 곳곳에 플랭카드와 깃발을 꽂아 놓고.

그 사람들 앞을 쌔앵 하고 지나치는데, 아니 웬걸. 그 깃발에는 '전쟁 반대'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아주 잠깐, 나는 쌔앵 지나쳤지요. 아니, 여기 울진에서도 죽변, 부구 골짜기에 웬 '전쟁 반대'의 깃발이, 놀랐어요. 반가운 건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반대편 차가 없는 틈을 타 자동차를 돌렸어요. 그리고 가던 길을 거슬러 그이들이 걸어오고 있는 길로 내려갔어요.

-안녕하세요? 반가워서요. 저기 반전평화팀으로 다녀온 ... 거든요.
-아아, 그래요?
-그래서 차를 타고 지나다 너무 반가워서.
-저희는 노사모 소속 회원들인데.....

그랬어요. 그 두 아저씨는 지난 언제부터였다더라? 국회의사당을 출발해서 서해 쪽으로 걸어 내려와 남쪽을 돌아 이쪽 울진-삼척-동해- 강릉 쪽 7번 국도 위를 올라가는 거라 했어요. 전쟁 반대 국토 순례 중이라고. 휴전선이 가로막힌 윗녘까지 다 올라가면 통일 전망대를 거쳐 서울로 되돌아갈 거라고.

참 반가웠습니다. 사실 그 두 분의 걸음은 참 외로워보였거든요. 긴긴 행렬이 아니니 눈에 띌 것도 별로 없었어요. 자동차들이 팔십 키로, 백 키로로 달리는 길 곁을 둘이서 거북이처럼 그래 걷는데 누가 보아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그 분들은 묵묵히 걸었습니다. 길 양 편으로 따로 걸었으니 둘이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것 같지도 않았어요. 속으로야 참 많은 이야기를 했겠지요. 벌써 3주 째라고 했던가, 이제 3분의 2쯤을 걸었다나 봐요. 잠은 어떻게 자느냐 하니까 때로는 민박을 하거나, 때로는 침낭으로 노숙을 하기도 하지만, 곳곳마다 고장에 있는 회원들이 하룻밤씩 재워준다나 봐요. 그래서 거기에서 서로 연락해 다음 잘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곳 모임에서도 돼지 저금통을 다시 모은다고 해요. 아마 지난 대선 때 희망돼지를 모았듯 그렇게 구호 성금을 모으는가 봐요. 그렇게 모으고 있는 그 힘도 이라크 민중지원을 위한 연대회의로 함께 더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래요, 이런 사람들이 곳곳에 있겠지요.
어디 이들 뿐이겠어요?
그간 마로니에에 거르지 않고 모이던 아이들, 엄마들,
촛불을 켜고 종이꽃을 접던 아이들.....
지난 채팅 회의 때는 도서연구회의 바람님이 얘기해준 평화티 이야기를 듣고 한참이나 감동을 받기도 했거든요.
다들 저마다 이름 없이 온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
목숨을 평화를 지키는 일에 묵묵히 있는 사람들.

어제는 나도 그 분들 곁을 따라 그저 걷고 싶었습니다.
다시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거는 일이 아주 무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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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평화팀 활동 게시판에 프랭스 형이 퍼다 놓은 보고서를 읽었어요.
바그다드 상황이, 지금 활동이 눈에 환히 보이는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온지 벌써 꽤 보름이 넘었습니다.

정말 잠깐이라도 다녀가고 싶어했거든요.
오고 싶었어요. 한국에.
보고 싶은 이들도 많았어요. 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여기 정든 곳에 안기듯 몸을 누이고 싶었어요.
그런데 보름이 넘도록, 실은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죽변으로 도망내려온다고 왔어도 여기에서도 그리 하지 못하네요.

정말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났지만,
나는 그 때마다 얼굴은 죽상을 해가지고 골치 아픈 회의만 했어요.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마치 제가 어떤 걸 다그치듯 하기도 한 것 같아 마음에 많이 걸립니다.
정말 내가 하고팠던 건, 그이들 만나
다 하지 못했던 속엣 얘기들 하고 싶은 거였는데,
무서웠다고, 힘들었다고, 외로웠다고
그런 얘기들 아무렇게나 다 터뜨리며 안아달라 하고 싶은 거였는데.

미안해요.

좀 전에 이라크 평화팀 활동 게시판에 프랭스가 퍼다놓은 보건의료진 보고서들을 읽었습니다.
어서 정신 차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똑똑히.

<동화작가 박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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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sehghk 2004-12-15 21:59:59
부구 죽변은 고향 강원도와 가까이있어 고향가면 언제나 찿는곳이랍니다. 너무나 아름답고 정이가는 고향이지요,
언제나 늘 사람냄새 나는 시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