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에서]2. 에르뜨리아에서 온 싸미
[암만에서]2. 에르뜨리아에서 온 싸미
  • 박기범
  • 승인 2003.06.26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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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에르뜨리아에서 온 싸미

그리고 어젯밤.
미리 이곳 유학생에게 부탁하여 약속한 현지 아랍 친구가 유학생의 숙소로 왔어요. '에르뜨리아'라는 나라가 국적인 싸미 라는 친구예요. 그 나라는 수단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사이에 있다고 해요. 스물 네 살, 살빛 검은 청년.

처음에는 그 친구에게 그림책 슬라이드 준비한 것 가운데 그림책 글을 아랍어로 번역한 것을 읽어달라 하면서 녹음을 하려 했는데, 미처 그 번역본은 제가 받지 못한 거에요. 저는 그것 번역본도 잃어버린 가방 안에 들은 줄 알았거든요. 아직 한국에서 그게 다 안 되었다는 걸 모르고 착각했어요. 아무래도 그건 이라크에서 이메일로 받아 그곳 현지인에게 부탁해서 완성해야 겠어요.

그래서 그림책 나레이션은 말고, 이라크에 가서 거기 아이들과 함께 부를 노래, 그것 준비를 도와달라 했어요. 아시다시피 한국에서 떠나올 때 우리 아이들이 불러온 평화 노래, 동요 몇 곡을 골라 그것 가사를 아랍어로 번역해 가지고 왔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번역한 아랍어를 한글 토씨로 달아놓았다 해도 그 발음을 도무지 따라갈 수 있어야지요. 아랍어를 쓰는 현지인이 직접 보고 불러 녹음한 것을 배우는 수 밖에요.

(아랍어 발음이 얼마나 어려운가는요, 대충 이래요.
어제 까페 운영자들에게 쓴 메일에서도 그 얘기를 잠깐 했는데 그대로 따다 놓으면요,

"공항에서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
'요르단 대학'을 이 나라 말로 '자마 (좌마/좌미흐) 조르디니아(요르디니아)' 라고 하거든요.
우리 숙소가 요르단 대학 맞은편에 있어서 어디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택시 기사에게 그렇게 말을 해요.
그런데 오늘 또 택시 기사가 못알아듣는 거예요. 자마 조르디니아, 자말 조르디니아, 자마아 조르디니아.... 억양을 다르게 해서 열 번, 스무 번을 해도 도무지 못알아듣는 거예요. 정말 어려운 아랍 말.
지난 2월부터 이곳에 머물며 '자마 조르디니아' 이 말을 수천번은 했을 텐데 아직도 제대로 된 발음을 몰라요. 운이 좋아서 기사 아저씨가 알아들어주면 통하는 거고, 대부분은 못알아듣는 거예요. 그래서 어쩌다 알아듣는 아저씨에게 제대로 된 발음으로 해 달라고 부탁해서 배워보면, 나는(우리는) 도대체 내가 말하는 것과 이 아저씨가 하는 게 뭐가 어떻게 다른지 모르겠는 거예요.....")

아무튼.
그래서 아랍어로 가사를 옮긴 노래 또한 현지인이 직접 부른 것을 우리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싸미에게 부탁했어요. 열 두 곡의 노래 가운데 우선 가장 쉬워 보이는 노래를 골랐어요. <작은 세상>이라는 곡에 기차길 아이들이 가사를 붙인 노래. 곡조가 느리고 가사도 단순해서 싸미가 쉽게 하겠다 싶은 거죠. 무엇보다 음이 이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하고 가장 비슷해 보였고요.
먼저 쉬운 노래부터 해야 조금 어려운 노래나 낯선 곡조의 노래도 하겠다 싶어 말이에요.

싸미는 아주 열심이었어요. 씨디로 구워온 노래 파일을 노트북으로 틀어 몇 번이나 돌려 들었어요. 그리고는 바로 아랍글자로 써 놓은 가사를 보며 떠듬떠듬, 조금씩 따라 불렀어요.

대충, 대애충 비슷했어요. 아, 박수! 다리를 놓아준 유학생도, 혜란이도, 저도 박수를 치면서 좋아했습니다. 이 정도로만, 이 정도만 되어도 이라크에 들어가 아이들하고 같이 부를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몇 번을 다시 부르고, 다시 음을 견주어 보고, 또 다시 부르고. 싸미는 노래 없이 음만 있는 반주가 있으면 좋겠다 했지만 그건 없으니 있는대로만 했어요. 또 불러 보고, 다시 불러 보고. 처음에는 부르자 마자 원곡의 음과 비슷해 신기해하며 기뻐했는데, 계속 들으니까 원곡하고는 차이가 크게 났어요. 싸미 말로 한국의 음절수와 아랍어의 음절수가 달라 원래 곡조대로 하기는 어렵겠다며 가지가 조금 바꾸어 불러도 괜찮겠냐고. 물론 그래도 된다고 했습니다. 가사를 번역한 것도 어차피 꼭 맞지는 않을 거고, 편곡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그리고 본디 노래라는 것도 부르는 사람의 느낌을 타며 하는 게 더 좋은 거 아닌가요?

어느 정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 있겠다 싶었을 때 녹음기를 켜 놓고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조금 쉬었다가 다른 노래를 또 배워서 해 보려고 <딱지 따먹기>를 개사한 <평화사랑 하겠다>를 틀어 듣는데, 싸미가 아까 자기 노래 녹음한 걸 다시 듣고 싶대요. 그러더니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원곡 <작은 세상>을 다시 듣고 싶대요. 다시 부르겠대요. 아아, 우리는 와 프로페셔널하다 하면서 웃으며 더 좋아했어요. 싸미가 노래를 다시 불러 녹음을 했고, 싸미는 그걸 다시 듣더니 마이크가 없느냐며 마이크를 찾아요. 그냥 외장 스피커가 있는 녹음기로 녹음을 했더니 잡음이 많잖아요. 싸미는 또 그게 아쉬운가 보았어요. 마이크가 있으면, 마이크에 노래를 하면 잡음이 없을 텐데 하면서. 그래서 우리는 준비해온 게 없다 했더니 자기 집에 마이크가 있다면서 내일은 자기가 마이크를 가져오겠다는 거예요. (아, 나중에는 혜란이의 캠코더에 있는 마이크를 떼어 녹음기에 연결해서 다시 녹음했습니다.)

그렇게 한곡을 녹음하는데 모두 두 시간. 밤 아홉 시 반인가 부터 시작한 것이 열 두시가 다 될 때까지 했어요. 유학생 친구는 싸미가 열한 시까지는 집에 가봐야 했다면서 오히려 미안해하며 발을 동동 굴렀는데, 오히려 싸미가 원해 더 늦도록 했어요. 무척 고마웠어요.
그런데 걱정은 노래 한 곡 하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니 (게다가 싸미 이 친구는 대충 하는 걸 스스로 용납치 않는 것 같으니!) 이걸 어쩌나 하는 거예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은데.....

아무튼 싸미가 한 곡을 더 해보자 해서 <딱지 따먹기>를 개사한 <평화사랑하겠다>를 들려주었는데 다듣고 나더니 이건 아이들이 부른 노래라 자기가 하기 어렵겠다는 거예요.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 그게 왜 어려운 건지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아무튼 싸미가 그래요. 그러면서 다른 노래는 없느냐고..... 다른 노래요? 다른 노래를 찾아 들려주겠다 했어요. 그러면 노래 열 곡 가량을 다 듣고, 네가 하기 편한 노래를 골라 그 곡부터 하자고요. 아, 그런데 어쩌지요? 씨디에는 분명 노래가 열두 곡 모두 있는데, 노트북에서 실행 되는 건 세 곡 뿐이 안 되는 거예요. <작은 평화>와 <딱지 따먹기>는 운이 좋게 실행되는 노래였고요. 그것말고 <앗쌀람 알라이꿈>도 실행이 되기는 하는데, 이것은 아랍어로 번역된 것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한글 발음으로만 적어 놓았지 싸미가 읽을 수 있는 아랍 글자로는 없는 거예요.

씨디에 담긴 노래 열두 곡 가운데 그 세곡은 MP3인가 하는 파일로 되어 있고, 다른 노래는 뭐더라 하여튼 다른 파일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그건 내가 가진 노트북으로는 실행이 안 되는 거였어요.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일단 싸미는 집으로 돌아갔어요. 다음 날 자기 시간을 보아서 연락을 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는.

혜란이와 숙소로 돌아와 컴퓨터를 아무리 만져보아도 나머지 노래는 어떻게 해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노래를 들으려면 인터넷에 그 음악 파일을 실행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데, 과연 그건 어떻게 할 수 있을는지. 이러다가 나머지 노래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한국에 급하게 연락해서 프랭스에게 이러한 사정을 알리고는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놓기만 했습니다.
내일 아침이 되면 인터넷 방에 노트북을 가지고 가보자,
프랭스가 그것 다운 받는 주소를 보내었다 했으니 노트북을 인터넷 케이블에 직접 연결할 수 있으면 다행! 그 프로그램을 다운 받자.
혹 노트북에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으면... 피씨방에 씨디 라이터가 있는지, 씨디 라이터가 있으면 프로그램을 씨디에 담아와 다운을 받자. 아, 피씨방에서 노트북 연결도 안되고 씨디 라이터도 없다 하면 그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돈으로 씨디 라이터를 사서 하는 건 방법이 될까....

적어도 다음 날 싸미와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그 문제를 해결해 놓아야 할 텐데, 싸미는 자기 집에 있는 마이크까지 가져오겠다며 도와주는 걸 즐거워하고 있는데.

<박기범 이라크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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