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만에서] 3. 밤새 그림 그린 이야기
[암만에서] 3. 밤새 그림 그린 이야기
  • 박기범
  • 승인 2003.06.30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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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밤새 그림 그린 이야기

앞으로 이라크에 들어가 아이들을 만나 지내며 할 것들.
앞서 말씀드린 대로 그림책 슬라이드, 애니메이션, 아랍어로 옮겨 노래 부르기 말고도 몇 가지가 더 있어요. 종이 접기를 하려고 종이접기 책과 색종이를 준비했고, 아이들과 함께 그림 그리기를 하려고 크레파스(이건 한국에서 다시 챙겨주시면 좋겠어요)를 준비했고, 가능한 대로 아이들과 글쓰기도 해보려 공책과 연필 같은 것도 준비했어요. - 아, 이것들. 아이들의 그림과 글을 혹시 한국으로 가져갈 수 있다면 이라크 아이들의 글 그림 전시나 아이들의 글을 한국어로 옮겨 작은 글모음집으로 묶어도 좋겠다 싶고요.
그리고 풍선도 준비했고, 인형극에서 쓰는 얼굴에 꼭 맞는 가면도 준비했고, 제기와 팽이, 축구공 따위들을 준비했어요.

그 가운데 놀이.
규칙이 까다롭지 않고, 간단하면서 여러 아이가 어우러져 즐겁게 함께 할 놀이를 어떻게 준비하나 고민했어요. 말도 잘 통하지 않는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가며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책방에 나와 있는 놀이 책을 구해 거기에 소개된 것 가운데 쉽게 할 수 있는 놀이들을 찾아 보았죠. 몇 가지를 꼽아 보았는데, 잘 하면 참 재미있고 좋겠다 싶어요.

그런데 문제는 그 놀이를 어떻게 설명할 건지.
이것 또한 이곳 유학생이나 아랍 현지인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우선은 유학생에게 책을 건네며 그 가운데 우리가 꼽은 놀이, 그 놀이를 간단하게 소개할 말을 한글로 써준뒤, 그것을 아랍어로 얘기할 수 있게 옮겨 한글 발음대로 적어달라고 부탁했지요. 그게 그저께.

어제, 유학생 친구는 우리말 발음대로 아랍말을 적어 놓기는 했는데, 아이들에게 이걸 전하기는 어렵겠다고 얘기를 해요. 그것을 아랍말로 일러주는 것도 에르뜨리아의 싸미가 해 주었다는데, 싸미가 한 얘기래요. 이 책에는 그림이 참 잘 나와 있는데 차라리 그 그림을 보여주는 게 아이들이 이해하기에 훨씬 낫겠다면서.
정말 그렇겠다 싶었어요. 앞서 말했듯이 우리 글자로 그 나라 발음을 적어 놓는다 해도 그걸 읽어 아랍 사람이 알아듣기는 어려울 거거든요. '자마 조르디니아' 하나만 해도 수천 번을 했지만 택시 기사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 맞아, 괜한 짓 했다 싶었어요. 그리고 다시 책의 그림을 보니 그것으로 설명하는 게 훨씬 쉬울 것 같았어요. 그런데 책에 있는 그림은 너무 작단 말이에요. 어떻게 하나 하다가 이 그림을 커다란 종이에 하나 하나 그려보기로 했죠. 아무래도 나보다는 혜란이가 더 손맵씨가 있을 테니, 그걸 혜란이가 했으면 했어요. 그랬더니 혜란, 자기는 정말 그림 못 그린다면서 자꾸 빼는 거예요. 물론 나중에는 하기로 했지만요. 진작 그 생각을 했으면 한국에서 같이 준비한 분들과 함께 미리 그려왔으면 좋았을 걸.. 아쉬웠어요.

밤에 싸미와 노래 녹음 작업을 한 뒤에 평화팀 숙소로 돌아가 서로 해야할 일들을 했어요.
혜란이는 마룻바닥에 전지를 깔고 책에 나온 놀이 설명 그림을 놓고 한숨을 쉬었죠. 아, 이걸 내가 어떻게 그려? 하지만 열심히 책을 보면서 그림을 그렸습니다.

옆에 앉아 책을 보던 한상진 선생님도 나도 그려줄게 하면서 그 곁에 전지를 펴고 다른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면서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며 이게 뭐야? 아이를 그리는데 귀신처럼 그렸네, 괴물 같네 하면서 민망해 웃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조금 못그리면 어때요?

그림을 다 그리고, 네 시가 넘어 그 때야 잤습니다.
그 일들 모두 우리 일이면 우리 일이고,
제 일이 아니면 제 일이 아닐 수 있는데
그렇게들 함께 하니 참 좋았습니다. 고마웠고요.
사실 혜란이도 다른 작업을 해야 할 것이 있다 했는데, 그 못 그리겠다는 그림을 그린 거거든요.

<박기범의 이라크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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