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아침.
6월 21일 아침.
  • 박기범
  • 승인 2003.07.24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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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1일 아침.


아침이라고, 여덟 시 사십오 분이라고 혜란이가 깨워 일어났다. 눈을 뜨면서도 어제 회의를 하면서 오늘은 아홉 시부터 일정이 시작한다고, 아홉 시에 대문 앞으로 아마르의 차가 올 거라 한 게 기억났다. 아침이 다 되어 잠이 들었으니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겨우 일어났다. 일어나 보니 다른 팀원들도 다들 늦어 부랴부랴 아침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먹는 둥 마는 둥, 어제 저녁에 나온 누룽지를 한 그릇씩 훌훌 덜어 먹고 아침 일을 하러 나섰다. 아마르의 차는 벌써부터 대문 앞에 와 서 있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활동을 하는 데에는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때가 많은데, 우리가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법은 필요할 때마다 아마르의 봉고차나 살람의 승용차를 탄다. 참고로 아마르와 살람은 우리 팀의 활동의 현지인 파트너라고 이해하면 된다. 일단 우리가 어느 곳에서 차에 내리면 그 다음 움직이게 될 시간을 미리 일러주고 그 때 와 달라는 식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따로 전화를 자유롭게 쓸 수도 없는 형편이니 미리 계획을 잘 짜 놓고 약속한 대로 움직여야 한다.)

알 마시뗄 헬쓰 센터

우리가 아마르의 차를 타고 간 곳은 우리 팀의 주요 활동 지역인 알 마시뗄의 헬쓰 센터. 이 헬쓰 센터는 원래 이라크 군 기지가 있던 곳으로 전쟁이 지나간 뒤 현지인들과 더불어 헬쓰 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센터 안에는 지금 진료소로 쓰는 건물 뿐 아니라 비어 있는 건물이 더 있는데 그 가운데 한 곳을 지역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일을 팀원 가운데 한 사람인 건축가 이상래 형이 구상하여 진행하고 있고, 지금은 우리 팀원들이 건물을 새로 단장하기 위해 페인트칠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헬쓰 센터로 들어가 우리가 일을 할 건물에 들어서니 한 편에서는 시멘트 공구리 작업을 하는 청년이 있고, 한 편에는 빈창에 유리를 끼우는 아저씨가 있었다. 그리고 또 한 편에는 끌을 가지고 다니면서 페인트칠을 할 벽을 다듬는 아저씨. 우리가 오늘 할 일 또한 그 아저씨를 도와 벽을 매만져 놓는 거였다. 아마르와 같이 우리 일을 돕는 아부알리가 사람 수에 맞추어 끌과 장갑을 가져다주었다. 어제 저녁 이 일을 해본 다른 팀원들부터 장갑을 손에 끼고 방으로 들어섰다.

알리, 하이들, 지하드

끌을 들고 일어난 벽을 다듬거나 못을 뽑는 일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 다음 차례는 반죽처럼 갠 석고를 가지고 벽 사이에 있는 틈이나 흠을 메우는 일이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손이 서툴다. 아마 그 일의 기술자인 듯한 이라크인은 아주 익숙한 손놀림으로 반죽을 개어 끌질을 했다. 우리 팀원들이 한 자리에서 버벅거리며 하고 있는 일을 그이는 아주 날래게 해 나갔다.

잠깐씩 새로 반죽을 개거나 땀을 식히려고 일을 쉬는 사이, 우리 일을 구경나온 아이 녀석들을 만났다. 처음에야 말이 통하나, 무슨 의사소통이 되나? 그저 몇 마디 알고 있는 말 앗쌀람 알라이꿈 인사를 건네거나 그것도 아니면 눈을 맞추며 그저 우리말로 으응, 안녕? 학교 다녀왔어? 하고 얘기를 건네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건 그렇게 나는 우리말로 녀석들은 아랍어로 말을 하는데도 무언가 얘기가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아이 참, 이 녀석들. 생각해 보면 나 같으면 그렇게 못했을 것 같다. 만약에 내가 어렸을 적 우리 마을에 외국 사람이 와서 제 나라 말로 뭐라 뭐라 얘기하면 내가 우리말로 친근하게 계속 말을 붙이고 그럴 수 있었을까? 아마 신기해하며 구경은 한다 해도 잔뜩 얼어가지고 아무 말도 못했을 텐데. 그런데 오늘 만난 이 아이들은 내가 하는 말이 전혀 들리지도 않을 텐데 아무렇지 않게 대꾸를 하고 말을 이었다. 아니, 이 아이들 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 만난 아이들, 길에서 만나는 이라크 인들이 대부분 그랬다.

얘들아, 노래 배워 볼래?

노래를 흥얼거리며 일을 하다 나와 쉬느라 그랬을까? 아, 내가 아이들 앞에 앉아서 눈웃음으로 억지억지 얘기를 이으며 마주하고 있으니까 혜란이가 얘기를 했다. “오빠, 얘네들. 얘네들한테 노래 음을 가르쳐 주고 얘네한테 불러달래서 녹음하면 되겠다.” 정말! 영어도 곧잘 하는 걸 보니 학교 교육을 받는 아이들 같았다.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다니다 했다. 글을 읽을 줄 안다고 했다. 다른 걸 더 물을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노래 가락을 들려주었다. 라라, 라라라라, 랄랄라 라라라라라라 (집에 가려는데 내 앞에 아이들이 있다) / 한 소절 음을 불러준 뒤 따라해 보라 했다. 그런데 내가 그 말을 아랍어나 영어로 한 것도 아니고 나오는 대로 “자, 그럼 지금 한 거 따라해 봐.” 하고 말했을 뿐인데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따라했다. 와아, 대충 비슷하게 따라한다. 잘 따라한다. 그러면 그 다음 소절 라라라라 라알라라 따라라라 라알랄라 (아이들이 날보고 나머지라 할까봐) /를 들려준 뒤 다시 따라해 보라 했다. 얘네들 학교 음악 시간에도 노래를 배울 때 이리 했을까? 선생님이 한 소절을 들려주고 같은 소절을 아이들이 따라하고. 금방 내가 들려준 곳을 아이들이 따라 했다. 잘한다. 와아 잘한다. 나한테 누가 처음 듣는 가락을 가르쳐주면 나는 그렇게 따라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마 얘들은 한 교실에서도 노래를 잘 부르는 아이들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한 번 듣고 그래 잘 따라 부르나.

나도 신이 났고, 아이들도 신이 났다. 나는 마치 지휘봉이라도 잡은 듯 손가락을 휘저어 박자를 넣으며 크게 불렀고, 아이들도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크득 웃기도 하면서 라라라라 음을 따라했다. 한 번을 다 부르고 또 한 번을 다 불렀다.

이 아이들의 도움을 받아 아랍어로 옮긴 노랫말을 가락에 붙여 부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함께 음을 일러주고, 따라하는 그 순간이 참 기뻤다. 같이 웃는다는 것, 서로 마주본다는 것, 그리고 함께 기뻐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고마웠다.

엄지손가락 씨름.

제대로 된 놀이 이름이 무언지 몰라 엄지손가락 씨주겠라 썼다. 거 왜 서로 한 손씩 내어 반깍지를 끼고 내 엄지손가락으로 상대 엄지손가락을 누르는 놀이 말이다. 그래서 내가 상대 엄지손가락을 누르면 이긴 값으로 상대 손등을 찰싹찰싹 때리는 거고, 진편은 때리지 못하도록 손바닥으로 막기도 하는.

한참 노래를 부르고 난 뒤…. 아, 아니다. 노래를 같이 부른 건 이 다음이었구나. 석고 반죽 같은 것으로 벽 틈 메우는 일을 하고 나와 아이들 곁에서 쉴 때 내가 이 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그 때는 알리와 하이달 두 아이만 있을 때였는데 알리가 좀 더 붙임성이 많은 아이라면 하이달은 보다 수줍음이 많은. (알리, 하이달 같은 이름은 가는 곳마다 흔히 만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이 알리와 하이달은 예전에 말한 그이들과 다른 처음 만난 아이들이다.)

처음에 알리에게 손을 내밀며 내가 놀이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알리도 개구진 얼굴로 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손을 잡는데 이 녀석은 내가 악수를 하자고 그런 줄 안 모양이다. 손바닥끼리 닿게 덜썩 잡더니 위아래로 흔든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고. 놀이를 가르쳐줄 거라고. 나는 아이가 알아듣거나 말거나 우리나라 아이에게 말을 하듯 천천히 놀이를 설명했다. 이렇게 손을 잡고, 엄지손가락으로 남의 엄지손가락을 위에서 누르면 이기는 거야. / 이렇게. / 으응, 그러면 너는 피해야지. / 자, 그럼 너가 해 봐. 너가 네 엄지로 내 엄지를 잡아서 눌러. / 응, 맞아. / 자, 다시. / 헤헤, 나는 요렇게 피해 다니지? 너도 내가 잡으려고 하면 피해. …… 내 엄지로 상대의 엄지를 잡아 누르는 거라는 것까지는 알리가 곧잘 이해했다. 잘 알아들으니 나도 더 신이 났다. 녀석 꽤 영리하네. 그 다음 상대의 엄지를 잡은 뒤 상으로 상대 손등을 때린다는 걸 가르쳐 줄 차례. 자아, 그럼 해 보자. / 그래, 그래 그렇게 피하면서. / 헤헤, 내가 잡았지? 이렇게 잡으면 내가 네 손등을 때리는 거야. (찰싹찰싹찰싹찰싹.) / 으응, 그런데 진 사람은 졌다고 해서 가만히 맞고 있는 게 아니라 이렇게 밑으로 손을 집어넣어서 손등을 막는 거야. / 자, 그럼 다시 해 보자. 시작! / 그래, 그래. 어어, 네가 잡았네? / 봐봐, 네가 이겼으니까 네가 내 손등을 때리는 거야. / 그래, 그렇게 손등을 찰싹찰싹찰싹. / 자아, 이제 다시 한다. 이번에는 내가 져도 가만있지 않고 못 때리게 막을 거야…….

이긴 편이 진 편 손등을 때린다는 설명, 그럴 때 진편은 못 때리게 막는다는 설명 그게 좀 어려웠는지 아까만큼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이 또한 금세 알아들었다. 금세 나와 함께 놀이를 할 정도가 되었다. 옆에서 구경하던 혜란이와 상미, 하운이도 그 애와 내가 금세 놀이를 하게 된 것을 신기해하며 쳐다보았다. 나도 신기했다. 나는 정말 영어 한 마디, 아랍어 한 마디 한 게 없는데 이렇게 놀이를 가르쳐줄 수 있었다니, 그리고 이렇게 금세 같이 하게 되다니. 알리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하고. 알리와 몇 차례 더 하다가 다음에는 하이달하고 했다. 하이달은 알리 옆에 앉아 설명하는 것부터 실제로 하는 것까지 다 보고 있었으니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벌써 다 알고 있었다. 하이달은 좀 수줍어했지만 손깍지를 끼고 놀이를 시작하니 열심히 내 엄지를 피해 제 엄지를 놀렸다. 기분이 참 좋았다. 우리 놀이를 가르쳐 주어 기분이 좋았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그렇게 놀이를 하며 함께 즐거워한다는 게 참 좋았다.

하하, 글쎄 내가 흥분해서 아이들 손등을 좀 세게 때렸나? 일부러 봐주면서 했는데도 내가 때리는 차례에서는 아마 그랬나 보다. 몇 차례씩 하고 나서 더 하자니까 아이들이 손등을 매만지면서 그만 한단다. 아이고. 아이들 손등을 보니까 빨갛다. 미안.

아, 그리고 나서 저쪽에서 지하드라는 조금 더 어린 아이가 걸어왔고, 나는 그 애에게도 이 놀이를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마치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듯이. 내가 손을 내미니 지하드는 악수를 하자는 줄 알고 손을 잡았다. 아, 맞아. 이 이 아이는 아직 이걸 모르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는데 알리가 무어라고 아랍말로 열심히 설명이다. 자기 엄지를 움직여 보이면서, 손바닥으로 손등 때리는 시늉을 보이며, 그리고 또 막는 시늉도 함께 하며. 알리는 벌써 이 놀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는 새로운 아이에게 놀이 방법의 설명까지 하고 있는 거였다.

코끼리 다리 더듬기

노랫가락을 같이 부른 건 아이들이 빨갛게 부은 손등을 부비면서 그만 한다고 한 뒤였다. 그리고 다시 작업. 벽마다 여기 저기 못자국도 많고 흠집 갈라진 곳은 왜 그리 많은지 잠깐 사이 끝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새 페인트칠을 하려면 그런 흠이나 틈을 잘 메워야 곱게 칠할 수 있으니 꼼꼼히 해야 했다. 한참 그 일을 하다가 반죽을 새로 개는 사이 잠깐 또 나왔다. 알리와 하이달, 지하드는 그 때까지 앉아 있다. 아이들은 보기만 하면 웃는다, 눈만 마주치면 웃는다. 물론 이 아이들 뿐 아니라 이곳에서 만나는 거의 대부분 아이들이 그렇지만.

엄지손가락 씨름을 다시 하자 하니 이제 손등 아픈 게 가셨는지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살살 해야지. 놀이를 더 하고 나서 목지영 누나가 사온 음료수를 나누어 마셨다. 좀 넉넉하게 사와서 함께 일하는 아저씨들부터 하나씩 다 돌아갔는데도 몇 개가 남아 아이들에게도 하나씩 돌아갈 수 있었다. 마시라고, 이거 마셔 하고 깡통 음료를 주는데 알리가 안 받는다고 손사래를 친다. 몇 번이나 실랑이를 하다가 겨우 손에 쥐어 주었다. 그 다음 하이달에게도 주는데 역시 안 받는다면서 손을 뒤로 뺀다. 그래도 먹으라고, 괜찮다고 주기는 했는데 그런 면에서는 오늘 만난 이 아이들이 참 이상타 생각되었다. 여지껏 내 기억으로는 내가 만난 이곳의 아이들이 주는 걸 마다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아무 때나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무얼 달라고 손을 내밀고 옷깃을 잡아당긴 일은 예사였지만 말이다. 그래서 처음 한두 차례는 길에서 만난 아이 누구든 무어라도 주고 싶어 다 내주곤 했지만, 그게 오히려 잘못하고 있는 것 같아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마치 미군이 조롱하듯 초콜렛이나 껌을 나누어주듯 그러지 말아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아까 음료수를 준 일은 그런 게 아니었는데. 모두 땀 흘려 일하다가 목을 축이려 사온 음료수를 나누어 먹는 자리, 그 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너희도 같이 먹자고 준 것인데 이 아이들은 그렇게까지 사양하는 거였다. 잘 모르겠다. 이 아이들이 보통의 아이들 모습일까? 그간 내가 만난 아이들은 길에서 만난 아이들이었기에, 유독 가난한 마을의 아이들이었기에 그랬을까? 그렇게만은 설명할 수 없을 텐데, 잘 모르겠다. 그렇다. 아무리 내가 이 나라에서 이 사람들과 전쟁을 함께 겪으며 몇 달을 함께 지낸다 하더라도 내가 보고 겪는 것이라야 아주 한 부분, 보잘 것 없다. 나는 함부로 이 나라를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도 안 된다. 기껏해야 코끼리 다리 더듬기.

내 이름은 ‘루아이’

알리가 제 이름을 ‘알리’라고 얘기해주며 나에게 이름을 물었다. 아, 아이들 이름을 안 건 이 때부터였구나. 나는 내 이름을 ‘박’이라고 얘기해주었고, 아이들에게 나이를 물었다. 알리와 하이달은 열두 살, 지하드는 아홉 살. 그리고 나서 그늘에 앉아 팀원들하고 가벼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알리가 나에게 내 아랍 이름을 지었다며 일러준다. ‘루아이’. 루아이? 예스, 유어 아라빅 네임 이즈 루아이. 와아아, 나도 이제 아랍식 이름이 생겼다. 루아이, 루아이. 실은 예전에도 팀원 몇이 아랍 이름을 지어 얘기하곤 할 때 그게 살짝 부럽기도 했나 보다. 나도 아랍 이름을 갖게 되니 무언가 대단한 게 생긴 것 같았다. 그것도 아이들이 지어준 이름이니 더 기분이 좋았다. 루아이, 루아이. 다른 팀원들에게 나도 이름이 생겼다며, 이 아이들이 지어주었다며 자랑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자리에 있던 이들 가운데 나만 아랍 이름이 없었지 벌써들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하운이는 ‘알리야 (’알리‘의 여성형, ’알리‘는 이슬람의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 상미는 ‘수아드 (행복이라는 뜻)’, 목지영 누나는 ‘자밀레 (아름답다 라는 뜻)’, 혁이 형은 ‘사이드 (행복한 이라는 뜻)’. 혜란이는 전에 카심이 장난스럽게 ‘왈라드 (작은 남자 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했는데 아까 아이들에게 새로 지어달라고 해 ‘하디르 (작은 강물)’ 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아이들이 나에게 지어준 이름 ‘루아이’의 뜻이 무언지는 그 자리에서 제대로 듣지 못했는데, 낮에 카심이 우리 숙소에 찾아왔을 때 물어 들으니 ‘영리한’이라는 뜻이란다. 푸하하. 그 말을 해줄 때 곁에 있던 혁이 형이 ‘라, 라! 라 루아이! 낫 클레버!’ 크게 웃었다. 나도 웃음이 크게 났다.

아이들은 괜히 내가 지나가면 “루아이, 루아이!”하고 불렀고, 또는 아주 처음 본 사람처럼 내게 이름을 물었다. 그럴 때 내가 마이 네임 이스 루아이 하고 대답하면 굿! 이라며 좋아했다. 저희도 내게 이름을 붙여준 일이 좋은 모양이었다. 물론 더 좋은 건 나였다.

카심

한 시 쯤 되어 오전 일을 마쳤다. 모두 세 개의 방에 흠을 메웠다. 오후에는 페인트칠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다들 지쳐 배가 고프다며 어서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더위에 지쳐서도 그렇고, 아침밥을 못 먹다시피 했으니 그랬고, 피곤이 쌓여 그럴 것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밥을 해 먹었다.

밥을 먹고 나니 한 시 반쯤. 이곳에서는 보통 점심을 먹은 뒤부터 네 시 사이에는 누구도 일을 하지 않는다. 그거야 물론 뜨거운 날씨 때문. 그래서 평화팀의 일도 오전 아홉 시부터 한 시까지 하고 나면 오후에는 네 시나 되어야 시작한다. (네 시부터 여섯 시까지. 이렇게 써 놓은 걸 보면 일은 않고 놀기만 하는 것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일 시간은 바깥에 나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점심을 먹고 난 시간부터 비는 그 시간에 어제 못다 쓴 글(회의 기록과 팀장에게 들은 그간의 상황)을 마저 쓰려 했다. 오늘 오후 뉴바그다드 지역을 돌아볼 때 ‘국경 없는 통신’이 마련한 피씨방에 잠깐 들르기로 해 놓았으니 메일을 보낼 수 있을 때 최대한 써서 보내야하겠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잠이 쏟아진다. 모자란 잠도 자야겠지, 글을 쓰려면 네 시 전까지는 써야겠지, 게다가 그 시간 즈음 하여 카심이 우리 숙소로 온다 했다. 아, 카심! 자는 건 그만 뒤로 미루고 카심이 올 때까지만이라도 쓸 수 있는 만큼 써보아야지. 그런데 컴퓨터를 열고 자리에 앉은 뒤 얼마 되지 않아 카심이 왔다.

달려나갔다. 아, 카심! 카심이 아직 나를 보지 못한 걸 알고, 뒤로 돌아가 눈을 가리고 그 때 그 장난을 다시 쳤다. 후 앰 아이? 그리고는 카심과 깊이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카심 아저씨.

반가운 말을 어떻게 더 하지 못하고 여기에 다시 오면 만나서 주려고 뽑아서 가져온 사진을 꺼내었다. 카심 아저씨와 함께 찍은 사진들. 전쟁 전 바끼통에서 만들어준 걸개를 un 건물 앞에서 걸던 사진, 우리 아이들이 보내어준 그림과 사진을 아들네 초등학교에 가서 교실과 복도에 붙이던 사진, 그리고 전쟁이 일어나 다시 찾아와 그이와 얼싸 안던 사진……. 카심도 그 때 기억이 환히 떠오르는지 그 이야기를 하며 좋아했다. 기쁘다. 사진 속의 카심의 막내아들을 가리키며 그 애가 너무 보고 싶다는 말도 했다.

실은 이번에 바그다드로 다시 오면서도 가장 찾고 싶은 이가 카심을 비롯해 하이달과 핫산, 세이프 그리고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의 아이들과 수녀님들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한 것이 카심과 하이달네 주소를 적은 노트를 챙겨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카심이 알고 찾아와 주다니. 카심에게 하이달에게도 전해달라고, 하이달도 꼭 만나고 싶다고 부탁했다. 그랬더니 카심은 자기도 전쟁 뒤로 하이달을 만나지 못했다 한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전쟁이 끝나고 하이달은 몰려든 외신 기자들이 많은 곳에서 돈 많이 주는 그 사람들의 운전기사를 했다는 것이다. 워낙 하이달은 카심이 고용하여 함께 일하는 운전 기사였는데 일이 그렇게 되었다 한다. 카심으로서는 무척 섭섭했을 것이다. 하이달이 어려서 그랬을까? 안타깝다. 전쟁이 끝난 뒤, 사람들의 관계가 아주 각박해지고, 돈을 중심으로 한 관계로 급속하게 바뀌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 내가 가깝게 지냈던 이들마저 그렇게 되었다 하니 더 많이 안타까웠다. 그래도 카심은 보기 드문 신사. 카심은 내가 하이달을 간절히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알 카리지 호텔 (우리가 1차, 2차 입국 때 머물던 곳)에 가면 그곳 직원들이 하이달을 자주 만나는 것 같으니 거기에 가서 얘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카심은 그 전부터 주로 한국인들에 대한 여행 안내를 많이 해왔는데 이번 반전 평화팀을 보며 한국에 대한 느낌이 아주 달라졌다고, 매우 좋은 기억이라는 얘기를 들려주었다. 특히 전쟁 중에 다시 들어와 카심의 집을 찾고, 몇 가지 약과 음식을 전해준 것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카심의 아내에게 아스피린이 꼭 필요한데 그 때 전한 약 가운데 아스피린이 꽤 많았다.
그러면서 카심은 한국에서 들어온 ‘굿네이버스’라는 단체를 아느냐며, 거기에서 한 일들에 대해 무척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그 단체에서 말하자면 생색용으로 밀가루를 나누어주었는데 그러한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밀가루야 전쟁 전부터 몇 차례 배급이 있어서 시급히 필요한 것도 아닐뿐더러 지금도 시장에 나가면 한 포대에 2달러면 살 수 있을 정도로 구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물론 공짜로 나누어준 밀가루였으니 그거을 받은 현지인 가운데에는 좋아한 이들도 없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아다는 것이다. 괜히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그런 것을, 그것도 제대로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어서 더 받으려는 마음에 사람들 사이에 분란을 일으켜 놓거나 혹은 시장의 밀가루 값에 혼란을 주었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 밀가루를 많이 차지하여 내다 팔기도 했다며 말이다. 카심은 우리더러 그런 식의 일은 하지 말라면서 예를 들어 어떤 엔지오는 알 까마리아 지역 같은 곳에 가서 심각하게 쌓여 있는 쓰레기를 청소해주는 일을 했는데, 그것을 보고 현지인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 해야 할 일을 찾도록 해주었다며 그런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카심은 그 엔지오가 바로 우리였다는 걸 몰랐던 거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속으로 크게 뿌듯했다.
카심이 돌아가기 전 한 가지 부탁을 해보기도 했다. 우리가 왜 이러한 준비를 해 왔는지, 어떻게 하고자 하는지 설명한 뒤, 카심의 막내아들이 아랍어로 옮겨온 노랫말로 노래를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말이다. 번역한 가사도 보여주고, 씨디에 담긴 노래도 들려주었다. 노래를 듣고 카심은 노래가 아주 좋다 하면서 거기에 몇 가지 의견을 얘기했다. 하나는 아랍어로 옮기기는 했지만 번역한 것이 사실 노래를 하기에는 잘 맞지 않는 표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마 보통 사람들이 잘 쓰지 않는 표준어(?)이어서 그렇다는 말 같았다. 그러면서 이 노래들은 그냥 들어도 노래로서 참 좋으니 억지로 아랍어 가사로 하지 말고 그대로 들려주어도 참 좋겠다며 말이다.

카심과 꽤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심은 아무 때나 놀러오라고 얘기했고, 돌아갈 때는 24일 저녁으로 확실히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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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네 시부터

으앗.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이제 겨우 오늘 카심 만난 이야기까지 썼는데 시간이 이리 되었다. 글을 짧게 쓰는 버릇, 연습이 절실히 필요하겠다. 하여간 오늘 카심을 만난 건 네 시가 다 될 때까지이고, 이제부터는 네 시부터 그 뒷이야기들을 아주 간략하게 적어 놓아야겠다.

네 시부터 팀원들은 모두 오전에 일하던 알 마시뗄 헬쓰 센터 내 도서관 공사 하는 곳으로갔다. 팀원들은 거기에서 페인트 칠을 했고, 그 시간 어제 들어온 혜란이와 나는 팀장의 안내로 우리가 주로 활동하는 지역을 돌아보았다. 뉴 바그다드의 알 까마리아, 알 마시뗄, 알 라하세, 알 슈하다, 알 우바이티. 둘러보고 나니 왜 그 동안 그렇게 위생이니 환경이니 청소, 쓰레기를 이야기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말 그대로 마을 전체가 쓰레기장, 어떤 곳은 악취가 코를 찔러 숨을 쉬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그동안 불도저로 밀고, 포크레인으로 퍼올려서 훨씬 나아진 것이라고 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아직도 캄캄했다. 도무지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 이 쓰레기들을 어찌해야 할는지……. 그렇게 마을들을 돌며 마을의 모습을 보았고, 우리 팀이 만들어 놓은 쓰레기 집하장들을 보았고, 곳곳에 있는 헬쓰 센터들을 보았다. 그리고 잠깐씩이라도 들러 그곳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예를 들면 알 라하세 같은 경우 마을 전체 사람 수가 12000명 정도 되는데 하루 환자는 150명 정도, 그 가운데 어린이는 70명 쯤. 지금도 가장 많이 찾아오는 사람들은 설사 때문이라 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마을 전체가 쓰레기 무덤에 하수구에는 오물이 가득 차 길 위로 넘치고 있고, 어떤 곳은 하수도와 상수도가 뒤엉켜버리기도 했다.

다섯 개 지역, 열다섯 곳의 쓰레기 집하장과 헬쓰 센터 한 곳을 들르는 데만도 두 시간이 꼬박 걸렸다. 처음 숙소에서 나올 때는 그렇게 둘러본 뒤 ‘국경 없는 통신’의 피씨방에 들러 어제 쓴 글을 보내려 했는데 시간이 없어 그렇게 하지 못했다. 피씨방 또한 여섯 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통신 쓰는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소식을 보내는 것은 중요한 하나의 활동인 동시에 지켜봐 주고, 기금을 마련해주신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텐데, 그것조차 쉽지 않으니 말이다.

몸살이 이제는 좀 낫는가 싶더니 더해졌다. 다섯 개 마을을 돌고 나서 페인트 칠 작업을 하는 팀원들과 합류하러 알 마시뗄 헬쓰 센터로 돌아왔다. 팀에 구급약이 많이 있다 하여 챙겼던 약을 빼 놓고 왔더니 그것도 낭패. 할 수 없이 헬쓰 센터에 들어가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받으면서 ‘아이 참, 이라크 민중지원활동을 한다고 와서 민폐만 끼치는 거 아니야, 이거? 이 약을 내가 먹네’ 하며 웃었다. 이라크인 의사가 청진기를 대고 입속을 살핀 뒤 약을 조제해 주었다.

다른 팀원들은 얼굴에도 옷에도 온통 하얀 페인트 범벅이다. 열심히,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보니 참 좋다.

저녁 여섯 시, 바그다드에 와 활동하는 천주교 수사님들과 만나 저녁을 먹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수사님 두 분 가운데 한 분이 귀국하기로 하면서 마련된 자리인 듯 싶었다. 알 파나 호텔 쪽에서 약속이라 했는데 나는 가는 길에 숙소에 내렸다. 내려 씻고, 받아온 약을 먹고 잠을 잤다.

밤 열 시, 회의할 시간에 일어났다. 오늘 회의는 짧게, 간단히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끝냈다. 회의가 끝나니까 바로 불이 나갔다. 회의가 끝나고부터 하루 동안 지낸 오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중간에 세 시간 정도는 전기가 나가 있었다. 처음에는 팀에 석유램프가 네 개 정도 있다 했는데 지금은 쓸 수 있는 것이 하나뿐이다. 양초가 필요하다. 충전을 잘 해 놓아야 한다.

지금은 새벽 여섯 시. 바그다드에도 닭을 치는 집이 많다. 아까부터 여기저기에서 닭들이 꽥끼오 꽥깨댁 한다. 오늘은 이곳 저곳 다니며 사진도 좀 찍었는데 이제 그것들 좀 디스켓으로 옮기고 마쳐야겠다. 다 써 놓고 보니 별 이야기도 없는데 길기만 무지 길다. 정작 오후 네 시부터 다섯 개 마을을 돌며 보고 들은 이야기들 가운데 우리 활동과 관련해 중요한 것들이 참 많은데, 그 뒤부터는 대충 쓰느라 다 빼먹었다. 짧게, 간단히, 핵심만! 내일부터는 좀 일찍 자야겠다. 안녕, 드르렁 쿨……. (2003. 6. 22 06:06)

* 운영자님들께 - 다음 번 들어오는 팀이 있을 거예요. 감기약, 양초 챙겨 보내 주세요. 그리고 고추장, 된장은 많은데 김치가 하나도 없어요. 깻잎, 멸치, 오징어포, 오이지 같은 밑반찬뿐이에요. 김치 좀 챙겨 보내주세요. 아참, 그림책 슬라이드 아랍어 번역본은 얼마나 더 늦어지나요? 아직 메일 확인을 못했어요. 아참, 이따 오전에 나가 인터넷을 한 번 쓸 텐데, 메일 확인을 하더라도 적어도 하루나 이틀 지나 그에 대한 답장을 쓸 수 있을 거예요. 왜냐하면 거기에는 한글 패치가 없어 바로 보낼 수 없을 거거든요. 숙소에 돌아와 한글 텍스트 파일로 쳐서 디스켓에 담은 뒤 첨부해서 보내야 하니까요. 아참, 그리고 텍스트 파일로 보낼 때는 한글이 들어가지 않는 제목, 영어나 숫자만으로 된 제목으로 해야 하고요. 아, 맞다. 한국에서 저에게 메일을 보내실 때도 편지지에 바로 쓴 것은 아마 제가 못 읽을지 몰라요. 저에게 메일을 보내실 때는 한글로 쳐서 파일 형식을 텍스트 완성형으로 한 뒤, 첨부 파일로 보내셔야 제가 볼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잘은 모르겠는데, 아마 그럴 것 같아요.

박기범의 이라크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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