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통신]6월 26일
[이라크통신]6월 26일
  • 박기범
  • 승인 2003.08.04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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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에서 6월 26일


전기가 들어왔어요. 휴우, 하루에 두어 시간 들어오거든요. 지금 시간은 새벽 한 시 칠 분 (6월 26일)입니다. 오늘 바그다드에서 나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 편에 어제 그제 사진 찍은 것을 담은 디스켓을 부탁하려 합니다. 요르단에 나가 피씨방에서 보내 달라고. 바그다드에서 인터넷 쓰기는 참 힘들어요. 지난 번에 딱 한 번 잠깐 썼을 뿐이에요.

그저께는 알 타쉬 지역을, 어제는 ‘해피 패밀리’라는 바그다드 대학생들 모임, 만소루 지역, 모함마드네 집, 카심네 집을 다녔습니다. 오늘은 오전에 알 후리아 지역에서도 멀리 들어가야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하루하루 빡빡한 일정이었습니다. 바그다드에 들어온지는 겨우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간의 일정과 상황 속에서 혼란스러운 마음이 많았습니다. 나는 정말 다시 이라크로 오고 싶어 했고, 이곳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이곳에 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다니는 것이 아니었거든요. 오히려 나는 최소한의 일만 하고 싶었고 구체적인 몇 사람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느 곳, 어떤 사람들과 그대로 곁이 되어 이웃이 되어 살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을 만나는 것 또한 내가 한 달이면 한 달, 그보다 길면 그만큼의 시간을 어떤 아이들과 일상으로 늘 만나며 지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난 며칠 새 참 많은 곳을 다녔고, 참 많은 이라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느 곳이든 자동차에서 내려서기만 하면 우리 앞으로 달려드는 아이들도 참 많이 만났습니다. 미처 이름을 물을 새도, 눈을 맞추어 이야기 나눌 새도 없이 떼로 달려드는 아이들. 그런 사람들을, 아이들을, 마을을, 집을 스치듯 다녔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에 모래 바람 속에서 그렇게 다니는 일정은 사실 힘겨웠습니다. 아니, 푹푹 찌는 더위나 모래 바람이야 두 번째 문제이겠지요. 정작 힘든 것은 그렇게 다닐수록 내 자리가 이방인으로 굳어지는 것 같아셔였을 것입니다.

하필이면 내가 다시 팀에 결합한 때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일정을 가져야했던 까닭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나는 혼란스러웠고 나 스스로를 어떻게 설득하고 해명해야 하는지 그것이 힘겨웠습니다. 내가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한 것은 그렇게 스치듯 만나는 것이 아니었는데, 단 몇 아이를 만나더라도 그 아이와 일상으로 부대끼며 관계를 맺어가고 싶었던 것인데 ……. 더 많은 이들을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듣거나 더 많은인사를 나누고 싶은 것보다, 단 몇 사람이더라도 그이들과 함께 살며 그네들의 삶을 더 가까이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제가 보기에도 우리 팀은 이라크의 객관적인 상황 속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들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효율적으로, 그리고 아주 알뜰하고 규모 있게 구호 및 지원 사업들을 해 나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관적인 의지와 계획과는 다른 판단을 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이 땅의 객관적 현실 - 모스크를 통한 지역의 커뮤니티와 함께 일을 해야 하는 문제, 지역 내에서도 지역 커뮤니티들 간의 갈등, 불안전한 치안 문제, 이곳 사람들의 정서……. 우리 팀은 여러 가지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가장 쓸모 있는 일을 찾아왔고, 그것이 단지 구호의 차원이 아니라 친구로 다가서며 일을 할 수 있도록 관계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면서 참 많은 일을 했지요. 뉴 바그다드의 다섯 개 마을을 다니며 쓰레기 집하장을 짓거나 그곳 유아들을 위해 가루우유를 지급하는 일, 그리.고 마을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마련하는 일, 알 타쉬 캠프 난민들에게 이주금을 지원하는 일, 알 후리아 쪽의 시골 마을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지원한 일까지. 이렇게 꼽아보면 참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참 이상한 것은 그것이 내 활동으로 온전히 녹아들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부터 몇몇 팀원들에게 그러한 것을 묻거나 이야기했고, 오늘은 팀원들 모두와 함께 마당에서 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내가 스스로 해명하지 못하는 것들 다른 팀원들의 이야기나 평가를 통해서라도 풀어내고 싶었고, 또는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째 고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은 내일, 아니 오늘 새벽에 떠날 팀원들을 위해 환송회 자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나는 전기가 들어온 지금 잠깐 방에 들어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디스켓에 담아 떠나는 팀원에게 부탁하려 말이지요. 지금도 빨리 오라고, 어서 오라고 부르네요.

며칠 째 인터넷은 물론 컴퓨터에 이야기를 남기는 일 조차 제대로 못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날씨는 무척 덥습니다. 몸은 여전히 그래요. 어쩌면 몸 때문에 마음이 더 예민해져 있어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어서 씽씽해져야 할텐데요. 아쉬운 마음이 많지만 이만 줄일게요. 모두 건강하세요. 저는 얼굴이 아주 씨꺼매 졌어요.(2003. 6. 26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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