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통신]7월 3일 지금, 바그다드
[이라크통신]7월 3일 지금, 바그다드
  • 박기범
  • 승인 2003.08.07 16: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월 3일 지금, 바그다드


오늘 오전에 바그다드 시내 하이퍼 스트리트라는 곳에서 일이 있었대요. 미군 탱크가 이라크인에게 공격을 당했고, 그 뒤에 미군이 시민들에게 총을 마구 쏘았다 합니다. 아이 하나가 죽고, 열일곱이 다쳤대요. 우리 팀에서는 하운이가 그곳에 다녀왔는데 찾아가 보았을 때는 이미 총질이나 사고의 흔적은 다 치워져 있더래요. 그런 식으로 사고가 있으면 바로 헬기가 날아와 흔적이 될만한 것들을 치워 간다고 해요. 다친 사람들은 모두 어린 아이들이었다고 합니다. 오후에 우리가 놀이방 공사를 하고 있을 때 살람이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살람은 아주 절망스런 얼굴이었습니다. 격한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마음이 괴로워보였나 모릅니다. 모두 아이들이었다고, 모두.

미군들이야 후세인의 친위 특수부대원을 잡기 위해 총을 쏜 것이라고 공식 발표를 했다지만 사실은 마구잡이로 민간인들에게 쏜 거였다고, 게다가 죽고 다친 이들은 모두 어린아이들이었다고.

지금 바그다드에는 소리 없는 긴장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오늘과 같은 사건도 알게 모르게 계속 되어왔습니다. 총소리는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습니다. 놀이방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도, 집에 들어와 밥을 먹다가도 드르르르륵 미군이 긁어대는 소리와 따당 따당 하는 이라크인의 그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난 3, 4월의 전쟁 때처럼 폭격이 쏟아지거나 격렬한 총격전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요사이 들리고 있는 총소리도 누군가 사람을 향해 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의 몸에 맞을 경우 죽게 하거나 크게 다치게 하겠지요.

아침에 유엔에 갔어요. 여느 때처럼 아이디카드를 보이고 들어가려 했는데 오늘따라 가방 수색을 하더라고요. 나는 노트북 가방을 메고 있었고, 같이 간 강인화 씨는 조그만 손가방을 메고 있었거든요. 나는 무기 같은 거 없다고, 폭발물이 없다 하니까 가방을 열어보기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어제까지는 하지 않던 일이었어요. 미군 측(유엔을 포함해서) 또한 매우 긴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니, 오히려 이라크 인들보다 더 겁을 내고 있습니다. 이라크 인들은 긴장하고 있다기 보다는 점점 미군에 대해 감정이 높아지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일 거예요.

얼마 전 그와 관련해서 동화에게 들은 얘기도 있어요. 동화는 성공회대 엔지오학과에서 공부하다 평화팀으로 이라크에 온 친구인데 팀 일정이 모두 끝나도 개인적으로 12월까지 이라크에서 지낼 계획이거든요. 나름으로 전쟁 뒤 이라크 사회가 바뀌어가는 과정을 길게 지켜보고 싶다 했어요. 외국 엔지오들의 활동도 자세히 살피며 배우고 싶어 하고, 혹시 이라크 안에서 스스로 일어서는 엔지오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며 말이지요. 가끔 인터넷을 쓰려고 유엔에 가보면 거의 날마다 어떠어떠한 주제의 미팅이나 회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동화에게 그런 자리에는 안 가보냐고 물었더니 한 차례 다녀오기는 했는데 많이 실망스러웠다고 해요. 몇 가지 이야기 가운데 유엔에서도 안전 문제를 중요하게 논의하기는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안전’이란 이라크 인들의 안전이 아니라 미군의 안전뿐이더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언론을 통해 보게 되는 이라크의 안전 상황은 결국 미군 처지에서 느끼는 안전일 거예요. 이라크 민중의 일상 속에 있는 안전이 아니라 미군이 체감하는 정도에 따라 말해지는 안전. 어차피 우리 언론이라는 것도 미국의 눈과 입으로 걸러진 것을 바탕으로 할 테니 말이지요. 많은 이라크인들이 미군에게 격한 감정을 보이면 이들은 모두 폭도나 난동꾼이 되는 것이고, 미군의 통제에 그대로 따라 순응하면 질서를 찾아 안정되었다 하는.

그네들로서는 정말 불안할 거예요. 오히려 전쟁 중보다 그 뒤가 더 그렇겠지요. 지난 4월 미군이 바그다드를 점령한 뒤에도 그랬어요. 전쟁 중에는 상대를 압도하는 화력을 지닌 데다 전선 또한 뚜렷했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요. 전선이라는 게 없으니 막강한 화력이라는 것으로 크게 좌우할 수 있는 게 따로 없어요.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어느 누가 폭발물을 던질지 모르니 말이지요. 그래서 더욱 긴장하고 경계를 서는 걸 거예요. 더 바짝 긴장해서 모든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 걸 거예요. 검문검색을 철저히 하고, 통행을 제한하고. 두려우니까, 겁이 나니까. 하지만 전쟁 상황이 끝난 지 두 달 넘게 지난 지금, 그네들로서도 언제까지나 통행 제한이나 검문검색을 둘 수는 없었겠지요. 어쨌든 지금은 4월보다 시내 통행이 훨씬 자유롭기는 해요. (물론 지금도 저녁 일곱 시 뒤에는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기는 하지만 말이에요.) 지금이 더 불안한가 보아요. 물론 총소리가 쉼 없이 들리는 건 아니지만 어디선가 간간히 그치지 않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라크 인이 쏘는 그것은 아마 거의 다 미군들을 향한 것이겠지요. 그네들이 아무리 탱크와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해도 자신들은 누구인지 모를 적 앞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에요.

바그다드가 점점 긴장으로 가고 있는 또 한 가지 이야기는, 어제 시내에서 팔레스타인의 무장 독립 조직 하마스와 비슷한 이들이 유인물을 뿌렸다는 것입니다. 그건 미군에게는 앞으로 공격을 할 거라는 선언이기도 했고, 동시에 이라크 인들에게는 위험한 상황이 있을 테니 미군 곁으로 가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했습니다. 그랬으니 미군은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겠지요. 오늘 유엔을 갈 때에 폭발물에 대한 검문을 시작한 까닭도 그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 아침, 이라크인에게 공격을 받은 뒤에는 끝내 마구잡이로 총을 갈겼다지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까 우리가 일하던 곳에 와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던 살람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릅니다. 아주 슬픈 얼굴이었어요. 살람은 지금 이 상황을 똑똑히 보고 있지만, 그래서 그토록 마음 아파하고 슬퍼하고 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지금 이 땅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겠지요. 내 나라 정부가 없다는 것이, 주권이 없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걸까요?

문득 이 상황이 한국에서, 서울에서 일어나고 있다면 어떠할까 궁금했어요. 서울의 한복판 시내에서 누군가 주한 미군을 공격했다면, 그래서 미군이 마구잡이로 사람들에게 총을 쏘았다면, 길가에 나와 놀던 그 많은 어린 아이들이 그 총에 맞았다면……. 그리고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도시 곳곳에서 총소리가 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총격이 어떤 식으로든 이어진다면. 사실 나는 이곳에서 저 총소리에 참 많이 무감각해져 있거든요. 밥을 먹다가 또는 길을 가다가 듣게 되는 총소리를 마치 무슨 소음을 듣듯 그렇게 듣는 것도 같아요. 어쩌면 서울에서 그랬다면 무서워서 한 발짝도 바깥에 못나갔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아니, 다들 떠났겠지요. 있는 사람들부터 하나 둘 나라 밖 . 어딘가로.

놀이방 준비, 막바지

개관을 내일 모레 하기로 했는데 아직 못해 놓은 게 참 많아요. 공사를 하고 있는 현장도 아직 뚜렷이 눈에 보이는 게 없어요. 아직도 흰 페인트 칠만 해 놓은 빈 방만 덩그라니, 둘레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고. 우리 팀원들이 보기에도 사실 이제 막 공사를 시작하는 건물 같지 뭐가 되어 있다는 느낌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다들 조금씩 막연하게 불안해하는 것 같아요. 날마다 가서 일을 하고는 있는데 참 속도가 나지 않거든요. 글쎄 이제 방 안부터 바닥을 깔고 책상이나 책장, 그 밖의 살림을 채워 넣으면 눈에 들어올까? 아무튼 오늘 오후에는 모두 현장으로 가서 청소도 하고 막바지 일을 하자고 했어요.

오전에는 승로가 시내를 한 바퀴 더 돌면서 장판이나 바구니, 그 밖에 필요한 것들을 사기로 했고요. 아참, 승로는 들어오는 길에 책방에서 아이들 그림책을 한 보따리나 사가지고 왔어요. 내가 전에 하이달하고 같이 다녔을 때는 보지 못하던 것인데 참 반가웠어요. 혜란이는 집에서 놀이방을 알리는 벽보와 초대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안에 들어갈 글자는 살람 아저씨에게 부탁했거든요. 그런데 아저씨가 정말 열심이었어요. 살람 아저씨는 보면 볼수록 아주 좋아요. 아주 정감 있는 얼굴, 순박하고 수더분한 아저씨 얼굴이에요. 살람 아저씨는 부탁한 문구를 쓰다가 다른 색깔 펜을 찾았어요. 그러더니 예쁜 모양으로 바깥 선을 그리며 꾸민 거예요. 예쁘다고, 잘했다고 좋아했더니 아저씨도 웃었어요. 약간은 쑥스러워하면서, 좋아하면서. 살람 아저씨는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그것을 여덟 장이나 더 만들었어요. 날이 더워 땀을 훔쳐가면서.

오후에 모두 공사 현장으로 나갔어요. 우리 팀에 몸이 좋지 않은 사람들도 많아지고, 차츰 기운이 부치는 것도 같아요. 또 몇 사람은 이런 저런 까닭에 가라앉아 있기도 하고요. 사실 요 며칠 가장 기운 없이 지낸 게 나였거든요. 그런데 다른 팀원들 기운 잃은 모습 보니까 정말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요 며칠 내가 보인 모습이 참 미안하기도 했고요. “동화야, 우리 오늘부터 파이팅하자, 파이팅!” 일부러 파이팅, 파이팅 하면서 힘내자 했어요. 동화가 팀 분위기를 힘나게 잘 하거든요. 궂은일도 늘 도맡아 하고, 어떤 일이나 상황 같은 것도 되도록이면 긍정하려 하면서 잘 웃기기도 하고. 이동화, 오늘 우리 파이팅 하는 거다. 파이팅!

어휴, 무엇부터 손을 대어야 하나. 페인트칠을 끝낸 방 안을 바닥부터 물청소를 해야 했고, 바깥 쪽 연못은 물을 다 퍼내야 했어요. 그리고 마당에 널려 있는 공사 쓰레기들을 다 치워내야 했어요. 그런데 여태 바닥 청소에 속도가 나지 않던 것도 다른 게 아니라 물이 잘 나오지 않아 그랬거든요. 동시에 쓰레기를 치워가며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손이 너무 모자라기도 했고요. 연못은 아직 둘레 정리를 하지 않은 채 물부터 채웠는데 아이들이 흙발로 뛰어들어 흙탕물이 되어 버렸어요.

일을 시작했어요. 몇 사람은 페인트칠을 하고 남은 깡통으로 연못물을 퍼냈어요. 흙탕물이기는 하지만 그 물을 날라다 바닥 물청소를 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그 일을 우리 일손만 가지고 하기에는 모자랐어요. 아이들. 우리가 일할 때 늘 구경을 오는 아이들이 있거든요. 오늘 이 녀석들이 크게 한 몫 했어요. 나는 연못에 들어가 물을 퍼냈는데 그렇게 물을 퍼내면 아이 녀석들이 저 쪽 바닥 청소하는 곳으로 물을 날랐어요. 몇 아이는 저희도 깡통 하나씩 들고 연못으로 들어와 물을 퍼냈어요. 아이들이랑 같이 일하니까 아주 재미있고 좋았어요. 내가 일부러라도 더 파이팅, 파이팅 하며 의욕을 내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아주 활력이 있었어요. 아니, 그건 아무래도 아이들이 곁에 있어 그랬을 거예요. 고 녀석들 물론 크게 한 몫을 하기는 했지만 장난을 어찌나 쳐대는지. 그 흙탕물로 저희들끼리 끼얹고, 우리한테도 뿌려대고. 재미있었어요, 좋았어요. 일을 하다 잠깐 쉴 때 살람 아저씨에게 그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고요. 아참, 일을 다 하고 나올 때는 낮에 혜란이와 살람 아저씨가 만든 벽보를 헬쓰 센터의 앞뒷문에 붙였어요. 사람들이 기웃, 무언가 읽어보곤 했는데 아 이제 정말 내일 모레면 문을 열고 아이들을 만나는 구나. 조금은 겁도 나고, 조금은 설레고.

김제복 수사님과 간호 지원단으로 온 철민 씨, 그리고 혁이 형은 며칠 전부터 헬쓰 센터에서 일을 하거든요. 수사님이 부항 뜨는 거나 지압 같은 걸 잘 하세요. 헬쓰 센터에서는 호응이 무척 좋아서 환자들이 줄을 잇고 있어요. 그거 지압하는 거 아는 분은 알겠지만 제대로 해주려면 아주 힘이 드는 거잖아요. 수사님을 비롯해서 철민 씨랑 혁이 형 저녁마다 아주 녹초가 되어 들어오곤 해요.

그리고, 지금

지금은 새벽 세 시. 밀린 날들 얘기 그냥 넘고, 오늘부터라도 새로 써야지 하는 마음에 일기를 썼어요. 혜란이는 옆에서 내일 마을로 아이들을 만나러 다닐 때 마을에 붙일 벽보를 붙이고 있고, 그 옆에서 동화와 승로가 도와주고 있어요. 내일은 더 바쁠 텐데. 그만 잘래요, 안녕.

♬ 오소영 - 기억 상실

내가 누구냐고? 나도 몰라
그런 게 어딨냐고? 이럴 수도 있지, 뭐
왜 비틀거리냐고? 배가 너무 고파
왜 굶고 있냐고? 돈이 없으니까

아무리 걸어도 보이는 것이 없어
난 이렇게 배고프고 더러운데

쉴 곳이 필요해 어디로 가야 할까 도대체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딘 거야 어딘 거야 어딘 거야 도대체 여긴
어딘 거야 어딘 거야 어딘 거야 도대체 여긴

어디 사냐고? 나도 몰라
그런 게 어딨냐고? 여기 있지, 뭐
잘 곳은 있냐고? 물론 없지
어떻게 할거냐고? 될 대로 되라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는 것이 없어
난 이렇게 지치고 외로운데

머물 곳이 필요해 어디로 가야 할까 도대체 내가 있는 여기는
어딘 거야 어딘 거야 어딘 거야 도대체 여긴
어딘 거야 어딘 거야 어딘 거야 도대체 여긴

박기범의 이라크통신(2003/07/0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