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통신]7월 4~7일
[이라크통신]7월 4~7일
  • 박기범
  • 승인 2003.08.11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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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4~7일


7월 4일

- 개관 전날. 아침부터 하루 종일 개관 준비. 바그다드에서는 저녁 일곱 시 즈음하여 바깥을 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깨고 밤 열 시가 넘도록 막바지 작업.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것에 대면 이 날 하루 일을 하고 난 뒤에는 완공의 모습이 어느 정도 눈에 나게 보였다. 연못 둘레 마당에 자갈을 깔았고, 그늘이 되어줄 천막을 쳤고, 방마다 장판이나 카펫을 깔고 책장과 책상을 들여 놓았다. 준비해간 놀잇감과 학용품들을 채워 넣었다. 알마시뗄 주택가와 상가를 돌며 아이들에게 내일 놀이방 개관을 알리는 초대장을 나누어 주었다.



7월 5일

- 개관식. 여전히 준비가 모자란 것이 많았지만 대충의 뼈대를 놓고 놀이방 문을 열었다. 꽤 많은 아이들과 식구들이 왔다. 준비한 대로 바그다드 대학생들이 모인 ‘해피패밀리’라는 인형극 동아리를 불러 마당에서 인형극 공연을 했다. 아이들이 무척 재미있어했다. 한쪽에서는 아이들 얼굴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주었고, 한 쪽에서는 아이들과 공을 찼다.



7월 6일

- 개관식까지 강행군을 하느라 모두들 지쳤다. 나 또한 몸이 이겨내지 못했다. 워낙 이곳 이슬람 문화를 따라 금요일을 쉬는 날로 삼아 왔지만, 이번 주에는 개관 준비로 우리 뿐 아니라 우리를 도와주는 현지인들도 쉬지 못하게 했기 때문에 이 날 쉬기로 했다. 몹시 더웠다. 숙소에만 있는데도 땀이 줄줄 흘렀다.

밤에는 전체 회의를 가졌다. 놀이방 개관으로 팀 전체로 움직여야 하는 일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다. 이 다음부터는 좀 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될 텐데 그러한 것을 확인하는 시간. 크게는 이 곳에 계속 남아 놀이방에서 아이들을 만날 사람들이 몇 있고, 수사님과 함께 지압 및 부항, 수지침 같은 것으로 의료 봉사를 할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몇 사람은 투어 일정으로 이라크 전역에 대한 조사와 기록 작업을 하기로 했다.



7월 7일 오늘

- 개관 첫 날. 우리 팀원들 가운데 앞으로 놀이방에서 아이들 만나는 일은 동화와 승로, 그리고 내가 하기로 했다. 여기에 다큐멘터리 촬영을 하기 위해 온 혜란이도 짬짬이 도움을 주기로 했다. 어젯밤 넷이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해 나갈지, 아니 오늘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여전히 또렷한 계획을 잡지는 못했다. 당장 오늘만 해도 얼마나 되는 아이들이 올지, 아이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아이들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레는 마음보다는 걱정이 더 컸다. 아이들이 너무 적게 올까봐도 걱정이었고, 아이들이 너무 많이 올까봐도 걱정이었다. 되도록이면 우리가 어떤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따라오라고 하는 것보다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아이들이 스스로 만드는 질서로 아이들을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왕좌왕하며 마구잡이로 덤벼들 모습이어서 그 또한 걱정이었다. 아이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 것도 걱정, 아직도 갖추지 못한 필수 생활 용품 따위에 대한 것도 걱정.

오전에 승로는 몇 가지 물품을 사러 장을 보러 나가야 했고, 동화는 마시뗄 지역 책임자인 아마르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풀어야 했다. 실제로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손은 혜란이와 나뿐이었다. 헬쓰 센터 대문을 들어가 놀이방 쪽으로 가는데, 혜란이가 나보다 몇 발 앞서 있었는데, 아직 내가 굽은 길을 돌기도 전에 와아아아 하는 아이들 함성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많은 아이들이 와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저희끼리 삼삼오오 놀러온 아이들 뿐 아니라 혼자 다니기에는 어린 아이를 안고 온 엄마들도 있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올 때만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기쁜 마음보다 먼저 이는 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겁이 나는 마음이었다. 아이들은 우리가 움직이는 걸 쫓아 우루루 우루루 쫓아다녔다. 아니,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둘러쌌다. 아주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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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축구를 했고, 아이들과 종이접기를 했고, 아이들과 자갈밭에 앉아 이 나라 아이들에게 배운 놀이를 함께 했고, 흙탕 구정물이 다 된 연못에 풍덩 들어가 물을 튀기며 놀았다. 아, 힘들어. 이 땡볕에서 아이들과 노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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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방 둘레 곳곳에 널려 있는 탄피와 아직 쏘지 않은 실탄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어제 회의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위험한 것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아이들, 그것을 알면서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어제 회의 시간에 철민이가 제안한 것은 우리가 탄피와 실탄을 수거하고, 그것을 유엔에 반납하는 퍼포먼스를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그런데 이것을 좀 더 신중히 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은, 실탄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더구나 지금처럼 뜨거운 날에는 우리 같은 비전문가가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열을 받았기 때문에 약간의 충격만 있어도 탄이 터질 텐데 안전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탄을 모아 자동차에 싣고 간다 했을 때 운반하는 데에도 무척 위험하다는 거였다. 탄을 모아 담았는데 자동차가 급정거를 하거나 갑자기 출발하게 되면 서로 탄의 공이를 치게 된다는 것, 그래서 탄마다 담는 방식도 따로 있고 하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였다. 해서 뒤이은 의견은 적어도 미군에게 말을 해 직접 수거해 가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로 이어졌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그래도 미군이 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했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아이들이 노는 둘레에 그렇게 많은 실탄과 탄피가 널려 있는 것을 우리가 알고, 또 아이들이 던지며 노는 것까지 우리가 보았으면서도 그것을 방치해 둔다는 것은 안 될 것이다. 당연히 우리가 줍던, 전문성이 있는 누구를 통해 줍던 수거해야만 한다. 우리가 조심스럽게 수거한다고 해도 안전 문제가 그렇게 크고 심각하다면, 그것을 주워 던지며 노는 아이들은 어떻겠나. 당연히, 한시라도 급히 그것부터 해결해야 한다.

사실 나는 탄을 줍는 일이 그렇게까지나 위험하다는 게 잘 실감으로 와 닿지는 않았다. 조심하면서 얌전히 들어내어 모으는 일인데 그렇게까지 위험할까. 하지만 탄에 대해 잘 아는 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그걸 무시하며 괜찮을 거라고 무책임하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끝내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결정을 내지 못하고 회의를 마쳤다. 일단 지역 책임자인 아마르와 이야기를 해서 이러한 위험이나 사정을 알리고 어떻게든 실탄과 탄 껍데기를 걷어내야 한다고 의논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엊그제도 아마르에게 이야기한 일이 있는데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해 놓고는 대충 탄이 모여 있는 곳에 흙을 덮을 뿐이었다.) 아마르에게는 여러 모로 기대할 수 있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일을 푸는 데에는 절차가 있으니 어쨌든 지역 커뮤니티와 의논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마르와 이야기를 해도 별 진전이 없다면 이 문제는 우리가 직접 나서서라도 풀어야 할 거였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 같은 까닭에 팀원들이 직접 수거하는 일에 나설 수는 없으니 그게 아니라 임시방편으로라도 아이들이 총알을 만지지 못할 수 있게 하는 조치라도 마련해야 했다.

오늘 저녁, 아이들이 돌아간 뒤에 그 일을 했다. 아이들과 축구를 한 바로 그 마당에 총알과 탄피가 널려 있다. 급한 대로 철망을 가져다 총알, 탄피가 더 많은 쪽에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거둔 총알과 탄피는 모두 그 안 쪽으로 넣었고.

어제 우리가 총알 탄피를 수거하자는 것에 이야기에 끝을 보지 못한 뒤 한국에 연락해 보다 잘 아는 쪽에 자문을 구해보자고 했다. 총알을 수거하는 일은 꼭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만 할 수 있는지, 혹 비전문가가 할 수 있다면 지켜야 할 안전수칙은 어떤 것인지. 거 왜 몇몇 평화단체에서 지뢰 제거 활동 같은 일을 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쪽으로 물어보면 대충 답을 들을 수 있을까 해서 말이다. (프랭스, 되는 만큼 알아봐 주라. 놀이방 둘레의 실탄과 탄피를 줍는 일은 중요한 일 같아.)

오늘 하루 저물었다.
요즘 많이 고단해 하루하루를 돌아보는 일조차 잘 못하고 지내고 있네.

박기범의 이라크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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