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통신]아즈만 302호. 8월 1일
[이라크통신]아즈만 302호. 8월 1일
  • 박기범
  • 승인 2003.09.03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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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즈만 302호. 8월 1일


29일 새벽 암만으로 가는 지엠씨를 타고 팀원들 대부분이 떠났습니다. 카심 아저씨와 살람 아저씨도 함께 떠났습니다. 남은 사람은 동화와 혜란, 하운, 그리고 나. 동화는 처음부터 12월까지 있을 계획이었고, 혜란이는 못다한 촬영이 많이 있어 그것을 더 하겠다고 남았습니다. 그리고 하운이도 지금 하고 있는 조사를 더 하겠다고 남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이들은 모두 뚜렷한 자기 할 일을 가지고 남았는데 나만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나는 27일 미리 집을 나와 얼마간 머물 숙소를 구했습니다. 시내에 있는 작은 여관입니다. 걸어서 팔레스타인 호텔 둘레로 세이프를 만나러 갈 수도 있고, 또 저 쪽으로는 핫산네 집과 가까운,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도 걸어서 십오 분이면 닿는 곳입니다.


<다시 찾는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

28일부터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참 그런데, 거기에 가서 아이들 밥을 떠먹이고 있는 시간만큼은 참 좋습니다. 이름을 이제 다시 다 기억했어요. 이쪽 끝 침대부터 네슈완, 파띠마, 앤썸, 마루완, 아흐메드, 알라위, 꾸아꾸아, 오마르, 낸씨, 노라, 야쓸, 재키, 두니아, 아멜, 아뜨마르, 세이프, 하이달, 알라위, 알라위, 앨리야쓰.
네슈완에게 밥을 떠먹이는데 콧물이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아파서 그런지 떠 넣어주는 것도 잘 넘기지 않고. 앤썸은 며칠 병원에 입원하고 왔다고 했습니다. 오마르는 계속 아이원어고아웃 하면서 밖에 나가고 싶다 했습니다. 전쟁 때 그곳에 가면 하루에 한 아이씩 안고 나가곤 했거든요. 더 어린 아이부터 안고 나가곤 했는데 그 때부터 오마르에게 듣던 말입니다. 아이원어고아웃. 오마르, 더워. 너무 더워. 지금은 더워서 아이들을 안고 나갈 엄두가 잘 안 나지만 이제 다시 아이들에게 잠깐이라도 바깥 햇살을 구경시켜주어야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 나오려고 하다가 노라를 한참 안아주었는데 침대에 내려놓으려고만 하면 금세 울어버렸습니다. 내려놓으려다 다시 안아 들고, 내려놓으려다 다시 안아 들고. 그러다가 수녀님께 노라를 건네고 나왔습니다.


<세이프와 함께>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를 나오니 여섯 시 반 쯤. 바로 팀 숙소로 갈까 하다가 세이프와 밥을 먹고 가야겠다 했습니다. 나도 배가 너무 고팠어. 팔레스타인 호텔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곤 거기에 앉아 담배를 팔고, 음료수를 파는 사람들에게 세이프 못봤느냐고, 세이프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금세 찾아주었습니다. 아하, 요 녀석. 처음 볼 때에는 기가 팍 죽어 있어 왜 이리 애기 같아졌나 했는데 요 며칠 만나고 보니 여전히 씩씩했습니다. 얼굴에 밝은 기운이 돌았습니다. 세이프, 밥 먹으러 가자, 닭고기. 닭고기랑 밥이랑 먹으러 가자. 세이프 손을 잡고 나오려는데 휴지를 들고 다니며 파는 아이 하나가 다가와 돈 좀 달라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그런 아이들을 만나니까 뭐 특별할 건 없었지요. 하지만 그렇게 다가서는 아이마다 모두 돈을 쥐어줄 수는 없으니 그저 지나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 얼굴이 너무 안 되었어요. 손을 입에 갖다 대면서 먹을 게 필요하다고, 돈 1달라만 달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럼 너도 같이 밥 먹으러 가자했습니다. 하긴 그 아이와 세이프가 다를 게 뭐 있겠어요? 내가 세이프를 조금 더 먼저 알았을 뿐이지.

그 아이의 이름은 알라위. 세이프처럼 어린 꼬마 애는 아닙니다. 열아홉 살. 나이보다는 좀 어려 보였지만 어엿한 청소년 아이였습니다. 그래도 알라위는 무작정 앵벌이를 하는 건 아니고 비닐 자루에 휴지를 들고 다니면서 휴지를 사 달라고 하는 아이입니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 하니까 얼굴에 화색이 돌대요.


<어린 알리바바들>

세이프와 알라위 손을 잡고 식당으로 걸어가는데 저 쪽 교차로의 풀밭 위에 대여섯의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두 아이는 싸우는 것처럼 주먹을 들이대고 있고, 몇 아이는 그 둘레에서 구경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저 쪽 아이들을 쳐다보니까 세이프, 알라위가 동시에 노 굿! 알리바바! 라고 하면서 뭐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글쎄 선입견으로 아이들을 보아서는 안 되겠지만 내가 보기에도 세이프나 알라위하고는 다르게 불량스러워 보였습니다. 알라위가 계속 뭐라고 설명을 하면서 자기 목을 보라고 턱을 치켜드는데, 칼자국. 목에 깊은 칼자국이 나 있습니다. 이거 왜 이래? 저 아이들이 그런 거야? 예스, 머니, 머니! 칼을 목에다 들이대고 돈을 달라고 했다지요. 그래서 돈이 없다니까 그대로 칼로 목을 긋고 가버렸다고 합니다. 못된 녀석들. 알라위 목을 다시 살펴보니 칼자국이 옅은 분홍색으로 아직 채 아물지도 않았습니다.
알라위 목을 보며 그렇게 놀라고 있는데 세이프도 턱을 치켜들면서 상처를 보여주었어요. 세이프, 너는 또 왜 그래? 응? 알리바바, 머니, 머니, 켁. 세이프도 알리바바 노릇을 하는 아이들이 칼로 베었다고 했습니다. 어저께. 20달라를 빼앗겼다고 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어리둥절했습니다. 아이들끼리 서로 돈을 빼앗고 물건을 빼앗는 거야 짐작했지만 이렇게까지 몸에 칼을 댈 줄은 몰랐으니까요.
세이프는 워낙 붙임성과 귀염성이 있어서 팔레스타인 호텔을 드나드는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참 많거든요. 세이프랑 같이 지나다니다 보면 이 녀석, 외국 사람들은 거의 다 제 친구예요. 머리가 노란, 또는 검은 그 외국 사람들도 세이프를 반가워하고 말이지요. 아마 그래서 세이프에게는 생기는 게 많겠다 싶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돈을 쥐어주는 이들도 있겠지요.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다른 아이의 돈을 탐내는 아이들에게는 세이프가 눈에 띄지 않을까 싶어요.

하여튼 아이들의 목과 턱에 난 칼자국을 보고 몹시 놀랐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이들을 만나러 걸어오다 겪은 일이 생각났지요.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서 나와 팔레스타인 호텔 쪽으로 걷는 길에서 어느 아이가 웃으며 다가왔어요. 이 도시에서 거닐다 보면 그건 아주 흔한 일입니다. 외국 사람이 신기해서일 거예요. 아이들은 다가와 미스터, 미스터 부르면서 악수를 하자고 청하기도 하고 또는 머니, 머니 하며 돈을 달라고 하지요. 숱하게 겪는 일이니 나는 여느 때처럼 안녕! 하고 손을 한 번 부딪쳐주고 지나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의 손에서 철컥, 번쩍하더니 잭나이프가 튀어 나오는 거예요. 움찔. 순간 무척 당황했어요. 그 길은 그리 한적한 곳도 아닌데, 아니 팔레스타인 호텔 가까이이니 시내 중심지라 할 만한 데인데도 아이가 칼을 내민 거였어요. 가만 보니 그 잠깐 사이 길 위에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일단 몇 발짝을 뒤로 움직였는데 아이가 다가오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가 선 곳 건물, 식당이던가 하여튼 그곳에서 한 떼의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들에 묻혔고, 아이는 어느 틈엔가 칼을 접고 다른 데로 갔어요.
그리고는 세이프와 알라위를 만나 밥을 먹으러 가는 길인데 두 아이의 상처를 보니 아, 그게 장난이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물론 나에게 칼을 내민 건 소년이기는 했지만 그 아이의 눈빛이 풀려 있었거든요. 본드를 한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아이들이 더 겁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본드를 한 상태에서 내어미는 칼은 단순 위협용에 그치지 않겠다 싶어서입니다. 그리고 알라위와 세이프의 목에 난 상처를 보니.
그런데 그와 꼭 같은 일이 다음 날 한 번 더 있었습니다.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로 가는 길. 바그다드에는 어디나 담배나 라이터, 음료수를 파는 노점이 많은데 십대 소년으로 보이는 아이 넷이 담배를 팔고 있었습니다. 녀석들이 나를 웃으며 보았지요. 이 또한 흔한 일입니다. 이 길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특히 외국인이면 웃으며 인사를 건네니까요. 나는 버릇처럼 앗쌀람 알라이꿈 인사를 하고 지나려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나보고 와 보라고 손짓을 해요. 그런 일도 흔하거든요. 괜히 아무 말이나 걸어보고 싶어서 이리 와보라고 손짓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나는 시간에 맞추어 가느라 아니, 담배 있어 하면서 지나치려는데 아이 가운데 하나가 티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허리춤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거예요. 칼. 이번에도 나는 놀랐습니다. 순간 판단이 잘 되지 않는데 아이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찻길로 들어가 길을 건너 상황을 피했습니다.

글쎄요, 전에는 겪지 않던 일인데 이틀 사이에 계속 겪고 나니까 길을 다닐 때 없던 긴장이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알리바바를 조심하라는, 강도를 조심하라는 말은 숱하게 들었습니다. 특히 이곳 사둔 스트리트는 혼자 다녀서는 안 된다고, 매우 위험하다고 하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을 빼고는 한 번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거든요. 지난 번 가출을 해서 몇 날을 걷기만 하며 돌아다닐 때도 그랬고, 세이프를 만나러,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를 가러 다닐 때에도 그런 일은 없었어요. 해서 조심하라는 말 같은 건 괜한 걱정이려니 하며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푸 두 번이나 그 일을 겪고, 게다가 아이들의 목에 난 상처를 보니 찬물을 맞은 기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칼을 꺼내던 네 명의 아이를 만난 날은 한참을 걷고 있는데 또 뒤에서 누가 옷깃을 잡아당기기에 화들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세이프만한 어린 꼬마 녀석이었거든요. 미스터, 미스터 하면서 머니, 머니 하고 앵벌이를 하는 아이였죠. 그런데 나는 그 순간에는 꼬마 아이를 보면서도 겁이 확 들더라고요. 저 아이 손에도 칼이 숨겨져 있을까. 놀란 일을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과민 반응을 한 거였지요.
하여튼 그랬어요. 그 날 하루는 그 길을 걷는데 내가 나도 모르게 사람들 얼굴을 살피는 거였습니다. 괜히 한 번씩 뒤를 돌아보게도 되었습니다. 저이들 가운데 누가 또 내게 칼을 들이밀지 않을까, 뒤에서 따라오는 이가 갑자기 등 뒤로 무언가를 찔러대지 않을까.
내가 괜히 새가슴이 되어서인가? 바로 사흘 전만 해도 나는 그런 걱정 하나 없이 이 길을 다녔는데, 나는 사람들이 장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사람들끼리 인사를 나누는 모습에 정겨워했고, 나 또한 아무에게라도 앗쌀람 알라이꿈, 쌀람 인사를 건네곤 했는데. 갑자기 사람들에게 의심의 눈길을 주며 긴장해서 걷는 내 자신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애써 그 기억을 지우려고 해도 한적한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이 있기라도 하면 지금도 나는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곤 합니다.

아니, 내가 만난 대부분의 이라크 사람들은 정말로 참 순박하고 정겨웠습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보더라도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고 친절합니다. 그래서 나는 이라크 사람들을 그렇게 말해왔어요. 그런데 만약, 지난 이틀에 겪은 일을 지금이 아니라 이라크에 들어오자마자 겪었어도 나는 이라크 사람들은 순박하고 정겹다고 자랑하듯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바그다드는 아주 위험한 도시라고, 이곳에는 아이들도 칼을 들고 강도짓을 한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이 밀리는데 혼란스럽거나 답답한 마음은 둘째, 슬펐습니다.
도대체 모르겠고, 도무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라크가 어떤지, 바그다드가 어떤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누구도 이라크는 어떤 곳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아니,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될 거예요.


<길 위의 아이들>

아이들과 밥을 먹었습니다. 알라위는 정말 배가 몹시 고팠는지 게걸스레 먹다가 금세 배가 부르다며 손을 씻었습니다. 열아홉 살 나이이니 한참 먹을 때인데 묻지 않아도 뻔히 늘 굶다시피 했겠지요. 세이프는 와 본 곳이라고 식당 안을 익숙하게 돌아다니며 밥을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종업원들의 눈치를 보았는데 말이지요.
알라위가 남긴 음식, 세이프가 남긴 음식을 각각 싸달라고 한 뒤 밥집을 나왔습니다. 아이들을 팔레스타인 호텔에 데려다 주고, 나는 그만 팀 숙소로 가려 했지요. 다음 날 새벽이면 대부분 팀원들이 암만으로 떠나니 이 날 저녁이 마지막 저녁이었거든요. 음식을 한 봉다리씩 들고 가는데 저 멀리에서부터 두 아이가 나를 보고 달려왔습니다. 머니, 머니 하면서 손으로 입에 무언가를 넣는 시늉을 했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말. 그런 아이를 만날 때마다 다 어떻게 해줄 수 없는 노릇이니 나는 어물쩡 지나치려 했지요. 그런데 내가 무어라 하기도 전에 세이프가 나를 보며 노 굿, 노 굿! 알리바바! 하면서 손사래를 쳤습니다. 여기에서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무조건 알리바바라고 하기도 하거든요. (진짜 도둑이나 강도에게도 알리바바라 하지만.) 나는 노 알리바바라 대꾸하고는 가던 길을 계속 가려 했어요. 사실 혼자 지나칠 때보다 더 난감한 게 세이프와 알라위에게는 먹을 것을 사 먹였는데 다른 아이에게는 못 본 척 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있는데 두 아이가 바로 앞까지 다가와 매달리면서 배가 고프다 했습니다. 배가 고프다 하는 얼굴이나 매달리는 모습이 정말 안 되어 보였어요. 아이들이 나에게 매달리니까 세이프가 그 아이들을 떼놓으려 하면서 뭐라고 뭐라고 화를 내었습니다. 그러니까 두 아이는 세이프가 손에 들고 있던 남은 음식 봉지를 가리키며 그걸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래, 이거라도 주면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데 벌써 세이프와 한 아이는 음식 봉지를 서로 다투면서 싸우려고 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세이프는 아주 당차 보였고, 상대편 아이는 비실거리는 얼굴이었어요. 오히려 그 아이는 세이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아이였는데도 말이지요. 그 순간 나는 속으로 어쭈, 세이프 이 녀석 제법이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세이프에게, 세이프, 우리는 지금 먹고 왔으니까 남은 건 얘네들 주자 하고 말을 하는데 세이프가 안 된대요. 마이 프렌드 갖다 주어야 한대요. 그리고 얘네들은 알리바바래요. 노 굿, 알리바바래요. 주면 안 된다고, 소리쳐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두 아이는 음식 봉지를 두고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세이프가 그 아이의 멱살을 잡고 막 주먹을 올려붙이려 했습니다.
그만!
아이들을 서로 떨어뜨린 뒤 음식 봉지를 두 아이에게 주어 보냈습니다. 세이프는 여전히 안 된다고, 노 굿이라고, 얼굴을 찡그려 억울한, 삐친 표정이었습니다. 세이프, 우린 먹고 왔잖아. 내일 또 같이 밥 먹자. 그리고 오늘은 알라위가 남긴 음식 봉지, 이것으로 친구들하고 같이 먹어, 응?
억지로 세이프를 달랬습니다. 그래도 세이프는 뭐가 답답한지 쟤는 노굿이라고, 알리바바라고 계속 설명했습니다. 그 때까지 나는 그저 세이프가 먹을 것을 내주게 된 게 싫어 그 아이를 그렇게 말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세이프, 알라위와 팔레스타인 호텔 마당 쪽으로 들어가려는데 경비원들이 세이프를 막아섰습니다. 팔레스타인 둘레에는 철조망을 쳐 놓아서 들어가는 길이 하나뿐이거든요. 지난번에도 경비원들이 막아서기에 그 때는 내가 화난 얼굴로 얘는 내 친구라고, 비키라고 했더니 그 때는 들여보냈어요. 그런데 이 날은 안 그랬습니다. 그 때처럼 마이 프렌드! 라고 소리치면서 비키라고, 막무가내로 들어가려 하는데도 세이프만은 막아서는 거였습니다. 알라위는 휴지를 팔러 들어가는 거라 허락이 되는 것 같았어요. 경비원이 아랍말로 뭐라 뭐라 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는 없고, 아주 강하게 막아섰습니다. 세이프가 내 손을 잡아끌며 돌아가자고 그래요. 내가 알기로 그 길 말고 한 군데 더(알파나 호텔 쪽으로 해서 가는 길, 그곳은 미군들이 지키는데 세이프가 미군하고 아주 친합니다) 있기는 해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아이를 못 들어가게 하는 경비원들이 괘씸해서 그리로 들어가겠다고 계속 실랑이를 벌인 것이었지요. 워낙 강하게 막아서는 통에 더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 길을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알파나 호텔 쪽으로 해서 돌아가는 길로 걸어 나왔습니다.

모퉁이를 도는데 아까 우리에게 음식을 달라던, 그래서 음식을 가져간 아이 하나가 길가에 앉아 그것을 먹고 있었습니다. 비닐봉지에 든 먹다 남은 밥과 살을 바르다 만 닭고기, 그리고 호브즈라는 빵과 채소. 아이는 그것을 아주 허겁지겁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앉은 건너편에는 세이프와 멱살잡이까지 하던 아이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하쉬쉬. 하쉬쉬래요, 그 애 이름이. 그런데 그 아이는 까만 비닐봉지에 코를 묻은 채 걷고 있었습니다.본드를 하는 거였지요. 세이프는 옆에서 계속 하쉬쉬 노굿, 하쉬쉬 알리바바 라고 내게 설명했습니다. 그제야 대충 나도 감을 잡을 수가 있었습니다. 세이프가 왜 그렇게 (아니 알라위도 함께) 그 아이들을 나쁘게 말하고 싫어했는지. 나중에 팀 숙소에 와 들었는데 혜란이 말이 세이프는 길가에 다니다 만나는 아이를 보면 ‘마이 프렌드’인지 ‘노 굿’인지 아주 분명하게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호텔 둘레의 아이들 가운데 다른 아이를 괴롭히거나 알리바바 짓을 하는 아이에게는 ‘노 굿’, 그리고 그런 것 없이 동무로 지내는 아이에게는 ‘마이 프렌드’라 한다는 것이었지요.

눈앞에서 그 아이가 본드 비닐에 코를 묻고 큰 길을 지나고 있었지만 무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습니다. 당장에도 그런 아이는 하쉬쉬 하나가 아니었거든요. 하쉬쉬가 함께 어울리는 것으로 보이는 또다른 아이들도 저편에서 그렇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지난 번 나를 당황시킨 것처럼 본드를 한 상태에서 칼을 꺼낼지도 모릅니다. 나는 세이프와 알라위 손을 잡고 그 길을 지나쳤습니다. 본드를 마시는 하쉬쉬와 우리가 남긴 밥을 게걸스레 먹던 그 친구 곁을. 나는 이 아이들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영호 삼촌일 수 없었습니다. 이 많은 동수, 동준이 앞에서 영호 삼촌이 될 수 없습니다.


<팀, 마지막 밤>

알라위와 세이프를 보낸 뒤 택시를 타고 바삐 팀 숙소로 갔습니다. 길게는 반년이 넘도록, 짧게는 한두 달 함께 고생하며 지낸 팀원들이 다음 새벽 암만으로 나가는 지엠씨를 타기로 했지요. 이로써 한국이라크 반전평화팀의 현지 공식 활동은 모두 마치는 것이었습니다.
밤에 숙소 마당에 앉아 팀원들과 술을 마셨습니다. 하지만 그 동안 우리 활동을 마무리하는 그 어떤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습니다. 다들 자기 안에서 무언가를 마무리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몇은 새벽길을 위해 일찍 들어가서 잤고, 몇은 오래도록 남아 술을 마셨고, 몇은 부엌을 드나들며 열두 시간 가까운 길을 나서기 위해 그 안에서 먹을 달걀을 삶았습니다. 밤에, 팀 숙소의 마당에 앉아 있으면 별똥별 떨어지는 게 참 많이 보입니다. 나는 새벽에 잠깐 눈을 붙였지만 이내 깨어 그대로 날이 새는 걸 맞았습니다. 그리고 새벽 여섯 시쯤부터 하나 둘 짐을 꾸려 나오고, 모두 지엠씨 네 대에 나누어 타고 떠났습니다. 우리 팀원 일곱에 한국으로 가는 카심 아저씨와 살람 아저씨, 그리고 팀과 떨어져 활동을 하던 유은하 씨와 그곳으로 온 자원봉사자들.
아침에는 한 번 더 짐을 챙겨 싣고 하느라 막상 이렇다 할 배웅은 하지 못했습니다. 정신 없이 짐을 싣고, 하나 둘 차에 오르는가 싶더니 정말 떠났습니다.


<남은 사람들>

이제 이라크에 남은 팀원은 모두 넷. 동화와 혜란이, 하운이 그리고 나입니다. 다들 떠나고 들어온 숙소가 왜 그리 썰렁한지.
팀의 숙소는 이 날까지 계약한 거였고 이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여러 달을 혼자 지낼 동화가 지낼 숙소가 되는 것이지요. 집에는 짐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 동안 반전평화팀을 들고 난 사람들이 줄잡아 삼사십 명은 될 거예요, 아마. 그 사람들이 벗어 놓고 그대로 두고 간 옷이며 이런 저런 소지품들. 휴우, 이사하는 것도 큰 일이 되겠네. 우리는 아마르에게 이사 갈 집을 부탁해 놓았고, 이 날 쯤 이사를 나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고양이들. 팀 숙소에는 고양이들이 있어요. 그 가운데 하나는 ‘토끼’라는 이름을 가진 것이고, 하나는 ‘토끼’가 낳은 새끼. 그리고 ‘토끼’와 그 새끼 말고도 두어 마리가 더 우리 집 마당에서 사는 것 같아요. 그 숙소에서만 벌써 두 달. 그 동안 우리가 먹고 남는 음식으로 ‘토끼’를 비롯한 고양이들 밥을 주었거든요. 그랬더니 이 녀석들 의례 밥 때만 되면 부엌 앞에 와 기다리거나 우리가 앉은 뒤에 와 있어요. 조금씩 버릇이 나빠져 부엌에 들어오기도 했지요.
마당에 앉아 고양이들을 보고 있다가, 우리마저 이사 가고 나면 얘들은 이제 무얼 먹고 사나 하는 하찮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녀석들 우리가 먹을 것 주기만을 기다릴 텐데. 그러느라 제 힘으로 먹이 구할 줄을 잊었을 텐데. 한 동안은 굶을지도 모르겠다. 그래, 책임질 수 없다면 길을 들여서는 안 되는 건데……. 그저 멍하니 이런 생각을 중얼거렸어요. 그러다 미친 생각이 그게 어디 비단 이 집의 고양이들한테 뿐이겠느냐는 거였습니다. 세이프, 세이프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호텔 둘레의 아이들. 이제 세이프는 날마다 나하고 점심을 먹지만 내가 가버리고 나면, 그 때는. 아니, 우리가 이곳에 와서 하고 있는 일이 다 그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우리가 여기 이라크에 와서 이라크 사람들과 함께 한다고 한 일들도 결국은.

우리는 친구의 마음으로, 이라크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는 것을 함께 하기 위해, 단순히 구호물자나 뿌려주는 것하고는 다르게, 우리 활동을 해오려 했지만 냉정하게 본다면 그게 얼마나 달랐을까? 물론 최대한 이곳 사람들의 뜻과 요구에 따라, 그것을 뒷받침하는 활동을 하려 했지만, 그리고 무엇을 하든 늘 이들과 의논을 하고 이들의 뜻을 받들려 했지만, 결과로 보면 어쩔 수 없이 돈 많은 외부인들의 도움에 무엇이 다를까.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은. 아직 나는 이 곳 이라크에서 해 온, 보고 겪은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정리가 잘 되지 않습니다.


<아즈만 302호>

아직 집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이 날 이사는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몇 가지 짐을 더 챙겨 당분간 따로 지낼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가 지내는 숙소는 사둔 스트리트에 있는 아즈민이라는 호텔입니다. 여기에서는 뭐든 호텔이라 하니까 호텔이지 작은 여관입니다.
먼저 번 팀 회의에서 우리 팀의 현지 공식 활동은 29일로 마치고 이 날 모두 떠나는 것으로 원칙을 세울 때, 나는 얼마간 더 남아 지내겠다고 할 때부터 그 때는 시내에 방을 하나 얻어 지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팀의 일정, 활동 이런 것과 무관하게 빈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거나 소용돌이를 치는데, 그것을 홀로 들여다보며 다스길 시간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팀 활동의 마무리 시점으로 다가올수록 더했지요.

12월까지 앞으로 다섯 달을 더 지낼 동화를 생각하면 단 얼마간 머무는 만큼이라도 함께 지내는 게 좋겠지만 그러려면 내가 굳이 더 남아 지낼 까닭이 없겠지요. 안타깝지만 할 수 없었어요. 동화는 이제 이곳에서의 활동이 초반을 지나 중반으로 접어드는 거라면 나는 마무리를 해야 할 때. 그런데 그게, 마무리가 잘 안 되네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지난 여섯 달. 아니, 내게는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한 몇 년은 건너 뛴 것 같아. 겨우 여섯 달이었지만 그 안에는 세상의 끝과 끝이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과 다시 만났습니다. 껍데기를 다 뒤집어 보여 속엣 것을 보이듯이.

그래요, 내가 얼마간 이곳에 더 남아 있겠다는 것은 무슨 못 다한 일이 있어서라거나 무얼 더 채우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그러니 뚜렷한 계획이나 일정 같은 것은 가지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언제쯤 귀국할 계획인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묻는 분들께 정확한 대답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음 깊숙이 들여다보고, 만져 살피다가 비로소 내 안에서 대답을 해 줄 때, 그 때 털고 돌아갈게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행기표도 팔월 말까지로만 연장해 놓았으니 그 안에 돌아가겠지요. 앞으로 이곳에 머물면서는 지난번에도 말했듯 오전에는 마시뗄 놀이방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낮에는 세이프를 만나 밥을 먹거나 핫산네 집에 놀러갈 거예요. 그리고 오후에는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가려고 해요. 아이들 밥을 먹여주고, 아이들을 안아주고.


<요 며칠>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래 지내고 있습니다. 아, 아직은 오전에 마시뗄 놀이방에는 나가지 않고 있어요. 아직 다시 하고 있는 공사가 덜 끝났는데 공사를 마치고 새로이 문을 열면 그 때부터나 나가보려 합니다. 사실 지금 공사를 하는 동안에는 가보아도 그렇게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단지 공사 책임을 맡은 동화가 계속 그곳을 오가며 감독을 하는 정도입니다. 아니, 감독이라는 말은 좀 그렇고 공사에 대한 의논을 나누고, 우리 계획을 설명하면서 진행을 돕는 일.

어제는 세이프와 같이 점심을 먹고 나서 녀석이 내 방에 놀러왔어요. 어제는 녀석이 위아래로 새 옷을 입었더라고요. 신발도 새 거. 그래서 가라데에 갔어? 했더니 거기에서 받은 거래요. 말끔하게 차려 입으니 아주 멋있네. 어제도 닭고기와 밥이 나오는 식당에서 밥을 먹었지요. 그런데 어제는 왜 그런지 세이프가 닭고기에는 손을 하나도 안 대는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내가 고기를 발라 놓기도 했는데 안 먹어요. 그러더니 싸가지고 가겠대요. 가지고 가서 친구들하고 먹으려고 그러나? 해서 기특한 마음이 들다가도 혹시나 못된 아이들이 음식을 그대로 가지고 오라고 시킨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날마다 세이프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간다는 걸 거기 아이들은 거의 다 알 테니 말이지요.

밥을 먹고 나오는데 세이프가 음식 싼 봉지를 나보고 들래요. 저번 날부터도 꼭 바깥에 나오면 음식 봉지를 제가 들려하지 않고 나보고 들래요. 그리 무거울 건 없고, 귀찮아서 그러나 싶었는데 어쩌면 다른 아이들 눈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가까운 팔레스타인 정문 쪽 문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알파나 호텔 쪽 길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방에 들렀다가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기에 세이프에게 그만 안녕! 했지요. 워낙 그 동네야 녀석이 제 집처럼 돌아다니는 데니까 굳이 호텔 마당까지 바래다주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런데 세이프가 안 된다고 합니다. 저기, 미군이 있는 곳 그곳까지 가 달라고. 그래서 왜? 혼자 갈 수 있잖아? 했더니 하쉬쉬, 하쉬쉬 하면서 주먹질 하는 시늉을 보여요. 아아, 하쉬쉬. 그저께 세이프 먹을 것을 주었던 하쉬쉬. 세이프가 노 굿, 알리바바 라고 하던 하쉬쉬. 길에서 본드를 하고 다니던 하쉬쉬. 그래도 그 날은 세이프가 의기양양하게 주먹질이라도 할 것처럼 덤비더니 아마 그건 내가 뒤에 있으니 그걸 믿고 그런 거였나 봅니다. 하쉬쉬에게 먹을 것을 빼앗길지 모르니 저 쪽까지 데려다 달라고.

그래서 가던 길을 계속 걷는데 길 건너편에서 웬 십 대 아이들이 손짓을 해요. 미스터, 미스터! 그래서 나는 그냥 손을 흔들어주고 웃어 대꾸한 뒤 계속 길을 갔지요. 그러다가 세이프에게 알리바바? 하면서 저 형들도 못된 형들인지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세이프가 씨익 웃는데 그게 맞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리곤 또다시 몇 발자국을 걷는데 갑자기 세이프가 잠깐 기다리래요. 그러더니 아까 그 형들을 불러요. 그 십대 아이들이 우리 곁으로 왔습니다. 세이프가 물었어요. 이거 이 형들 줄까? 어, 세이프가 갑자기 왜 그럴나. 내가 알리바바냐고 물은 말이 음식을 주고 싶다는 말로 들렸나. 아니, 왜? 세이프, 너 좋을 대로 해. 그랬더니 세이프는 웃기만 하면서 내 마음대로 하라는 거예요. 애즈 유 라이크. 이 녀석 맨날 미군하고 놀더니 영어가 나보다 더 잘 되는 것 같아. 나는 세이프의 마음을 가늠하기 어려워 또다시 너 좋을 대로 하라고 했어요. 그래도 세이프는 계속 이거 이 형들 줄까? 오케이, 노 오케이? 하고 나에게 묻는 거예요. 자기가 먼저 불러 놓고 왜 나한테 묻는 거야. 이 형들을 주고 싶다는 것 같기도 하고, 싫다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그 십대 아이들은 벌써 음식 둘레에 모여 있었습니다. 그래, 이 형들 먹으라고 해.

왠지 뭔가 서운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에이 참. 세이프는 고기 한 점도 입대지 않았는데. 일부러 참아가면서 아끼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걸으면서 건너편을 보니까 덩치가 어른만한 아이들 넷이서 그 음식 하나를 놓고 나누어 먹고 있었습니다. 식당에서는 한 사람 먹을 음식을 가지고 말이지요. 그래, 세이프 누구든 배고픈 이에게 돌아가면 되겠지.

음식을 그 형들에게 내어주고 세이프가 우리 집에 가고 싶대요. 아이 원트 유어 홈. 마이 홈? 그래, 가자. 세이프 손을 잡고 여기 아즈만 302호로 들어왔습니다. 나도 땀이 많이 났고, 녀석도 씻은지가 오래 되어 보여서 같이 샤워를 하자고 했어요. 내가 막 훌렁훌렁 옷을 벗으니까 세이프도 윗도리를 벗었어요. 그러더니 바지를 벗으려다가 갑자기 싫대요. 팬티를 안 입었다나? 뭐 어때, 임마. 목욕할 때는 아무 것도 안 입는 건데. 그래도 무조건 안 벗겠대요. 안 벗는대. 억지로 벗기려 하다가 에이 몰라. 그럼 나 혼자 한다, 하고 씻으러 들어갔더니 하필이면 그 시간에 물이 안 나오는 거예요. 나는 내가 하고 있으면 녀석도 들어오겠거니 했는데.
방안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습니다.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에 가야할 시간이 빠듯했거든요. 방에서 같이 나와 녀석과 팔레스타인 호텔 앞에서 헤어졌습니다. 아, 앞으로 세이프가 좀 더 편해지면 여기에서 같이 자자고 해 봐야겠어요.

미셔너리 오브 채리티. 나는 이곳에 가서 아이들을 만날 때가 가장 좋습니다. 아이들 얼굴 보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떠 넣어주고, 아이들 안아주고, 아이들 손을 잡고, 아이들 눈을 보면서 혼자 말을 건네고. 마음이 저 아래로 가라앉는 때에도 여기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만큼은 아주 평화로워집니다. 오늘은 아이들을 안고 뒷마당에 나가 햇볕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늘도 보여주고, 나무도 보여주고, 저건 새야, 이건 해바라기. 오마르와 알라위, 꾸아꾸아. 다른 알라위도 앨리야쓰도 아멜도 다 안아달라고, 안고 바깥에 나가달라고 매달렸어요. 그래, 내일. 내일 나가자. 시간이 다 되어 내일 그러기로 했습니다. 수녀님들 기도할 시간이 되었거든요.

방에 돌아왔는데 어떻게 이 집을 알았는지 혜란이와 하운이가 들렀습니다. 혜란이 하운이도 세이프를 만나러 온 길에 들렀대요. 지난번에 내가 짐을 싸가지고 나올 때 택시 기사에게 바빌론 씨네마 앞으로 가달라는 말이 기억나 여기에 있나 해서 물어봤더니 있더라고. 며칠 혼자 지내다가 얼굴을 보는 건데 반갑네. 며칠 만에 한국말을 했으니까요. . 어, 아까 세이프도 여기에 놀러왔었는데.
혜란이와 하운이가 나를 보더니 막 웃었습니다. 내 머리가 지금 되게 웃기거든요. 그저께던가, 여기 사둔 스트리트에 있는 한 이발소에서 머리를 잘랐어요. 그런데 아주 이라크 스타일로다가 짧게 깎아 놓은 거예요. 반듯반듯하게. 어휴. 내가 거울을 봐도 웃깁니다. 아, 여기 이라크에 와서 머리는 두 번 깎았거든요. 지난번에는 숙소에서 혜란이가 깎아 주었어요. 배상현 주려고 가져온 이발 가위가 있었잖아요. 그걸로. 조금 삐쭉빼쭉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주 보기 싫을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웃겨요.

혜란이, 하운이는 내일 모레 앗시리아에 다녀올 거라며 나에게 같이 가겠느냐 했습니다. 거기 앗시리아에는 파병한 한국군이 머무는 곳인데 인터뷰와 촬영을 하기 위해 간다는 거였죠. 그리고 거기 말고 또 외곽으로 또 한 군데는 펠루자라는 곳을 간다고 했어요. 미군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인데 지금 바그다드에 있는 미군들은 전쟁이 끝난 뒤 와 있는 거고, 전쟁 전부터 계속 와 있는 미군들은 펠루자에 주둔해 있다나 봐요. 그런데 펠루자는 많이 위험해서 택시 기사들도 아무도 안 가려 한대요. 방법을 찾겠다고는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같이 가겠느냐면서 끼워주는 건 고마웠지만 나는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한국군이 와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직접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지만 이제 더는 새로운 곳을 가거나 새로운 것을 보고 싶지도, 겪고 싶지도 않아서입니다. 어떻게도 정리가 되지 않고 있으니 말이지요. 둘이 펠루자에 간다면 그 때나 같이 가려고요. 그래도 남자 하나 같이 다니면 좀 낫겠지요.
혜란이와 하운이는 그렇게 함께 다니며 촬영과 조사를 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참, 전에 살던 숙소에서 이사하는 거는 여태 집을 구하지 못하다가 오늘(지금 여기 시간 8월 1일 아침) 이사를 하게 되었대요. 나보고도 이삿짐 날라주러 오라고. 이거 쓰는 거 어서 마치고 나도 가 봐야겠어요.


이라크 하늘에는 구름 낀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언제나 파래요. 꼭 한국의 가을 하늘이 그러한 것처럼, 안녕. (2003. 8. 1)

<박기범의 이라크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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