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 추석연휴에 책을 본다고요?
한가위특집> 추석연휴에 책을 본다고요?
  • 김경미작가
  • 승인 2003.09.03 16: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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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 특집> 책읽기 123

추석 연휴에 책을 본다구요?

 

 

 

 

 ▲ 추석 연휴에 배를 깔고 술술 읽을 수 있는 소설 두권...

 

광명시민신문에서 추석 연휴에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을지 소개를 좀 해달라고 한다.
나원참.. 내가 비록 미혼이긴하지만 추석 때는 음식 만들고, 상 차리고, 설거지하고, 조카들보고... 그러느라 책 읽을 시간도 없는데..  다른 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명절은 친척들로 붐비고 아이들의 왁자한 소리에 정신이 없어야 명절 같은 거 아닌가? 하지만 그런 때 정말 갈 데 없거나, 아니면 애써 쉴 기회를 잡은 이들이 편히 쉬면서 읽을 만한 책을 생각해봤다.

먼저 떠오르는 건, 쉽게 술술 읽을 수 있는 소설 두 권이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The education of little Tree)> 과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A Tree Grows In Brooklyn)>이다.

책의 원제를 보면 느낄 수 있듯이 이 책들은 성장소설류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은 인디언 체로키족 혈통을 이어받은 작가 ‘포리스터 카터’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며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이지만 인디언의 세계를 어린 소년의 순수한 감각으로 묘사한, 따뜻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닌,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은 뉴욕빈민가 브룩클린에서 자라난 작가 베티 스미스의 어린 시절 경험을 토대로 한 자전적 소설로서 ‘어른이 되려는 병’에 걸려 자라는 진통을 겪을 시기의 어린 여성의 이야기다. 그녀는 섹스에 대한 관심도 많아지고 사랑하는 남자도 생긴다. 자신이 무엇에 재능이 있고, 무엇을 하며 살길 원하는 지도 고민하는 시기고, 사랑에 대한 자신의 선택에 갈등하기도 한다. 엄마와 딸의 솔직한 대화 한 토막을 옮기자면

“어머니, 그가 나한테 밤을 같이 보내자고 했을 때 따라갔어야 했을까요?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어머니. 진실을 말해 주세요.“

“거기엔 두 가지 진실이 있어. 어머니로서 나는 한 소녀가 낯선 남자랑-그 남자를 안 지 겨우 48시간도 안 되었으니까- 자러 가는 일은 끔찍한 일이 될 지도 모른다고 말해 야겠지. 너한테 엄청난 일이 생길 수도 있었어. 너의 전 생애가 파괴될 수도 있었고. 이 건 너의 어머니로서 내가 너에게 말해주는 진실이야. 그러나 여자로서...여자로서 너에 게 진실을 말해 주마. 그건 아주 아름다운 일이 될 수도 있었단다. 그건....네가 그런 식 으로 사랑하는 일은 단 한 번 밖에 없기 때문이야.”

<나를 있게 한 모든 것들>은 ‘어른이 되는 병’을 겪었으나 지금은 그 시절을 잊어버린 여성, 사랑 앞에서, 혹은 어느 덧 무게감으로 나타난 인생이란 화두 앞에서, 어른이 될까 말까를 고민하는 여성들이 읽기에 좋은 소설이다.

하지만 만약 이런 소설 류가 아닌 학구적 욕구, 그 중에서도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근에 내가 읽고 있는 <강좌 한국근현대사>를 추천한다. 식민지적 역사관에서 벗어나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잘 풀어놓은 책이다. 이 책의 미덕은 읽다보면 우리의 근현대사를 쭉 꿰어 살펴보기에 적당하다는 점이다. 나로서는 평소 가장 공부하기 싫었던 우리 역사가 식민지 시기의 역사였다.
너무도 암담하던 시절이라 생각만 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좀 더 견디기 강해진 어른이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 책이 훌륭하기 때문일까? 이 책을 읽는 동안 지금의 우리가 그냥 있음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느끼며, 역사의 진보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시절을 애끓는 심정으로 헤쳐 나온 민중의 역사에 대해 경배를 드리게 되었다.

그 외에도 강만길 교수의 <20세기 우리 역사>처럼 각 시기의 포인트를 살려 주요하게 생각해 볼 만한 것들 중심으로 보는 책들도 유용할 것이고, 재미 삼아, 강자의 손에 씌어 진 우리 역사에 안티를 거는 <패자의 역사>를 읽는 것도 심심풀이로는 괜찮을 듯 싶다.

사실 이 원고를 주문 받고 난감했다. <느낌표>니 또 최근 물의를 빚은 <책을 말하다>니 해서 각 방송사에는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고, 전문성을 가진 이들이 나와 책을 소개하는데 나같은 평범한 사람이 책을 소개하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러니 내 글은 TV에서 소개하지 않을 법한 ‘어줍잖은 빈틈’으로서의 책 소개 정도로 읽어주시길 바란다.
그런데 정말 이 글을 쓰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해주신 지짐이 먹으면서 배 딱 깔고 누워 가볍게 책 한 권 독파하는 것도 어쩌면 추석을 즐기는 좋은 방법일 것 같다.

 

 

  

<2003. 9. 3 김경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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