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특집>--- ‘친정에서 그리 배워 왔나?’
한가위특집>--- ‘친정에서 그리 배워 왔나?’
  • 조은주기자
  • 승인 2003.09.04 13:4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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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야기1.

--- ‘친정에서 그리 배워 왔나?’


하안2동에 살고 있는 임OO 주부(35세)는 매 해 추석이 되면 일주일 전에 아이들과 함께 시댁이 있는 순천으로 미리 가 있는다. 밤과 감 농사를 지으시는 시부모님을 도와야 하고 차례준비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시댁에서 추석을 세고도 한 달간 머무르면서 바쁜 일손을 돕고 올라왔었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후로는 그렇게 오래 있지는 못한다.

임씨 가족은 3남 3녀의 대 가족이다. 다른 집과 달리 3녀도 모두 출가했지만 명절 때마다 임씨의 시댁으로 모두 모인다. 그 외에 고향 친지들까지 모이면 추석 당일 임씨가 대접해야 하는 식구들은 어림 잡아 40여명이 넘는다.

임씨와 두 며느리들의 일과를 잠시 살펴보았다. 연휴 전에 시댁에 도착하면 한 참 출하로 바쁜 시부모님을 도와 밤, 감을 추려내는 일을 하고 차례 음식준비에 눈코 뜰 새가 없다. 임씨의 시댁은 명절 전 날 밤에 한 번 차례를 미리 모시는 풍습이 있다. 11시경에 차례를 지내고 치우고 잠자리에 들자마자 추석 아침 차례를 위해 새벽 4시쯤 일어난다. 다시 음식을 준비하여 오전 7시경에 차례를 모시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나면 집 안 남자들이 성묘 갈 준비를 한다. 성묘 가서 올릴 음식을 준비해 주고 나면 오전이 후딱 지나간다. 남자들이 성묘를 다녀오는 동안 집안 청소와 곧 오실 친지들 점심 준비를 해야 한다. 점심 때가 되면 삼삼오오 고향 친지들이 방문하게 되고, 몇 차례에 걸쳐 점심 상을 차리고, 치우고를 반복한다.점심을 먹고 난 오후에는 남자들은 밤과 감을 따러 다시 나가고, 며느리와 딸네들은 고추를 따거나 밭 일을 나가 시어머니를 돕는다.저녁엔 다시 상차리기, 치우기가 반복된다.

워낙에 완고하신 시아버님 때문에 시댁에 내려 갈 때에는 염색한 머리를 다시 검은 색으로 물들이고, 옷 차림에도 신경을 쓰고 내려가야 했단다. 오늘 만난 임씨의 머리는 약간의 갈색으로 물들여져 있었는데, 올 해는 검은 색으로 다시 물들이지 않고 내려가리라 맘 먹었다고 한다. “워낙 내려가면 꾸중 듣는 게 일이라 이젠 웬만한 꾸중은 그냥 듣고 넘겨요. 예전엔 혼자서 울기도 많이 했는데.” 모든 일이 장남을 중심으로만 결정되는 가부장적인 모습에 예전에 몇 번은 시부모님께 제언을 드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친정에서 그리 배워 왔나?”하시는 타박뿐이어서 이제는 그마저도 포기하고 그저 할 도리만을 하고 있단다. 그래도 혼자서 일하시는 시부모님이 안타까워서 방학 때면 아이들과 함께 내려가서 한 달씩 일 손을 돕고 올라오는 착한 며느리이다.“어머님, 아버님 마음은 제가 알아요. 막내인 제가 편하셔서 제게 이런 저런 꾸중을 많이 하시는 것도 알고요, 그래서 장남 중심으로만 생각하시는 것 까지는 이해 하려고 하는데, 가끔 손자들까지 맏아들의 손자들만 귀하게 여기시는 모습을 볼 땐 저도 모르게 속이 상하죠.”

임씨는 결혼하고 지금까지 명절 때 친정에 가 본 적이 없다. 순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나주에 친정을 두고도 항상 시댁일만 보고 올라가야 하는 게 항상 마음이 아팠다. 요즘 시아버지께서는 병환으로 서울에 올라와 계신다. 바쁜 맏며느리와 직장에 다니는 둘째 며느리보다는 시간 여유가 있는 임씨가 시아버님 병간호를 맡고 있다. 같은 시기 친정어머니도 병환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내려가 볼 수는 없었다.

이번 추석엔 꼭 친정에도 들러 볼 생각이라고 말하는 임씨의 눈에 서러움이 얼핏 비친다.

이야기를 마치고 함께 계단을 내려가면서 임씨가 말한다. “어차피 내려가서 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이왕이면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가야죠. 올라오면서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치긴 하지만 그래도 저 스스로한테 자꾸만 이렇게 말해요. 즐거운 마음을 가지고 하자, 도리를 다해야 내 마음도 편하니까.”

명절.
추석.
봄, 여름 뜨거운 뙤약볕에서 일하고 얻은 소중한 수확물을 조상님과 가족 그리고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명절의 진정한 의미라면 그 안에서 또한 소외되는 이 없이, 모두 가족 애를 느끼며 함께 행복할 수 는 없는 것인지, 안타까움이 든다.

2003. 9. 4 조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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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2003-09-04 13:46:25
모두가 즐거운 명절이 되어야 할텐데..., 제사를 두번 지내는 것은 너무 한다.

김경미 2003-09-04 13:46:25
명절의 진정한 의미 속에 여성이 소외되지 않는 그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