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부를 건드리지마!
치부를 건드리지마!
  • 김경미
  • 승인 2003.04.12 02:57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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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를 건드리지마!

작가 초년생 시절 MBC 에서 방송된 청소년 드라마 <나>란 시츄에이션드라마를 1년 몇 개월 간 썼었다. 처음 맡은 연속물이란 점에서도 내게는 의미있는 드라마였지만 무엇보다도 멋 모르고 참 즐겁고 신나게 일했던 시절이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드라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청소년 드라마라고 하면 <사랑이 꽃피는 나무>나 <사춘기> 류의 가족과 학교를 병행하면서 한 가족 내의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 들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놉시스 단계에서 취재를 해보니, 내가 보냈던 청소년 시절과는 사뭇 달라진 학교 분위기에 달라진 학생들...뭔가 다른 틀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국 기존 청소년 드라마의 틀을 벗어나 일단 가정을 고정해서 등장시키는 것을 생략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에서, 함께생활하는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로 틀을 만들고, 스스로의 문제이건, 학교의 문제이건, 교육전반의 문제이건그들 나름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문제가 있으면 친구들과 함께 풀어가는 당당한 모습의 청소년 이미지를 그려보고 싶었다.
그리고 부모의 비중을 줄인대신선생님에 대한 비중을 늘여 교사의 고민에 대해서도 진솔하게 보여주고자 몇 회에 한번은 꼭 교사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 거리를 찾으려고 애썼다.
하여튼 그런 저런 고민에서 출발해 회를 거듭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다루던 중에 한번은 선생님이 촌지를 받는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그 당시 한창 촌지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지만이 촌지 이야기는 어느 청소년 드라마에서도 한번은 다루게 되는 소재였다. 하지만 드라마의 보수성이라고 할까, 청소년이 보는 드라마라서 더 조심한 걸까,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촌지 받은 선생님에 대해서는 결국오해였다는 식의 헤프닝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아예 제목도 "학주(학생주임) 촌지받다!" 로 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윗 선의 압력(?)이 들어왔다.
제목도 선정적이지만 어떻게 선생님이 촌지를 받는 내용을 쓸 수 있냐는 것이었다.
나는 현실이 그러면 그런 드라마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며 맞섰고, 부장은 "나도 촌지 줍니다. 그래요, 그게 현실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치부를 건드리는 건 위험해요. 나 바로 문책 들어옵니다! 바꾸세요!"
나는 참 많이 고민했다.
어느 동료 작가는"괜히 골치 아픈 소재 잡고 싸우지말고 적당히 말랑말랑한 걸로 써 줘."
하지만 완전히 물러 설 수는 없었다.
결국 제목은 부장이 원하는 <의문의 꽃다발>로 하는 걸로 양보하고, 내용에서도 문제로 지적한 몇몇 장면은 잘라내거나 변형시키겠다고 말하고 돌아왔다.
방송 나간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학생주임이없는 사이 누군가 학부형으로 보이는 사람이 놓고 간 책 한 권과 꽃다발.
뒤 늦게 교무실에 온 학생주임은 책 속에 봉투가 있는 것을 보고는 주머니에 얼른 챙겨 넣는다. 그런데 그걸 한 학생이 보게 되고, 그 소문은 삽시간에 학교에 퍼지게 된다.
학생들은 도덕적인 척 하는 학주에게 삐딱하게 굴며, 친구 삥뜯는 거나, 학부모 촌지 뜯는거나 뭐가 다르냐며 반항도 한다.사실 학주는 그 나름의 어려움과 갈등, 현실적 경제난에 봉착해 괴로운 상태였다. 학주는 자학하듯 화를 내고, 학생들은 시간이 흐르며 학주의 어려움을 엿보게 되자 선생님에 대한 무례를 반성하고 오해였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사실 학생주임은촌지를 받았기도 하고, 또아니기도 하다.
왜냐하면, 학생주임은 그것이 학부모가 놓고간 촌지라 생각하고 받아 넣었으니 학생주임에게 그 돈은 확실한 촌지다.
하지만 그 후 교무실로 찾아와 책을 놓고 간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왔는데 그는 다름 아닌 학생주임이 청년시절첫 담임 때 맡았던 학생이었고, 그는 대학 갈 돈이 없어 대학을 포기하려고 한 자신에게 등록금을
주며 커서 갚을 능력되면 갚으라던 그 존경스런 선생님(지금의 학주)께 돈을 갚으러 온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요즘처럼 촌지다뭐다해서 교사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존경할 선생님이 없다고 다들 말해도 저는 항상 선생님을 생각하며 존경할만한 선생님이 있다고 자랑했습니다.참, 제가 봉투에 같이 넣어둔 편지에 다 쓴 얘기네요...읽으셨죠?" 하며 존경스런 선생님을 바라 본다.
학주는 고개를 떨구며 아무 말 못한다.
하지만 그 날 밤, 학주는 교무실에 앉아서 그 제자에게 고백과 참회의 메일을 쓴다.
<사실은 나 그 돈 촌지인줄 알고 받았다.....하지만 이제 다시는 촌지를 안 받을거다...대신 앞으로 너한테 존경스런 선생님이 되도록 노력하마..>

결국 방송이 나갔다. 그런데 사실, 나로서는 부장과의 다툼이 오히려 검열을 피해간 꼴이 되었다.내용중일부에 전교조 선생님과 학주와의 갈등이 깔려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청소년 드라마에 '전교조'란 단어조차 쓸 수 없는 때였다.
부장과 심의실에서 촌지를 받느냐 안 받느냐에만 촉각을 세우는 통에 '전교조'에 대한 대목을 못 보고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방송은 나갔고, 그들은 방송을 보면서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방송 후에 인터넷에 올라 온 글들은 격려와 감사의 글들이었고, 무엇보다도전교조 선생님이자 방송반을 맡고 있다는
선생님의 장문의 글은 우리를 숙연하게 했으며,많은 학생들은 학생주임의 행동을 이해할 것같다며 그런 선생님을 존경하리라는 글들로 도배되면서게시판은 졸지에 <학주사랑>팬클럽이 만들어질 분위기였다. 이런 사태(?)가 오자 부장과 심의실에서는 더 이상 딴지를 걸어오지 않았고, 나는 덕분에 무사히 한 회의 방송을 사고없이, 물론 더 이상의 문책없이 끝내게 되었다.
만약 게시판에 그런 글들이 올라오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부장의 문책에 열 받아 대판 싸우고 짐 싸들고 낙향이라도 했을까?

그 후 나는 이 일을 거울 삼아 <치부를 건드리자! 하지만 요령껏 건드리자!> 하는 조금은 약은 수를 쓰는 쪽을 택하게 되었지만 적어도 아직은 그 약은 꾀를 후회하지 않는다.

근데, 최근에 <선생 김봉두>라는 영화가 나왔다고 한다.
김봉두는 내가 그렸던 학주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돈을 밝히는 교사로 나온다는데, 이제 내가 약은 꾀 써가며 방송했던 학주의 촌지 받는 이야기는 그때, 권위와 가식의 시대, 그 한 귀퉁이로 조용히 떠나 보내도 될 것 같다.

그 당시 취재하면서 만났던 참 좋은 선생님들과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재기발랄하게 학교 생활을 들려줬던 많은 학생들은 어떻게 지낼까?
학생에 대해, 혹은교사에 대해 많이 포기하고 산다던 어떤 선생님은 좌절하지 않고 씩씩하게 살아남아 있으실까?
소년가장으로 동생을 돌보고, 가난에 허덕이면서도 골목깡패가 안되려고 다시 복학했다던복돌이(복학생) 성진이는 학교를 무사히 졸업했을까?

내 드라마는 떠나 보내도 서운치않지만 그때만난 그 고운 사람들은 마음에서 떠나보내기가 항시 서운하다.
우연히라도 그 사람들의 반갑고 행복한 소식을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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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者 2003-04-12 02:57:49
이구 저절로 빠졌네요. 선생 김봉두 그 영화 보여준다는 말이었는데...

김경미 2003-04-12 02:57:49
누구신지 몰라도...그거 저한테 보여준다는 말 맞죠?

민들레 2003-04-12 02:57:49
드라마 이야기 정말 재미있고, 감동도 있네요.. 앞으로도 좋은 이야기 기대됩니다.

폭풍 2003-04-12 02:57:49
치부를 보여줄 용의가 있는데........

송재신 2003-04-12 02:57:49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