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옛사랑의 추억2
희미한 옛사랑의 추억2
  • 김경미
  • 승인 2003.05.08 10:5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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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옛사랑의 추억2

희미한 옛 사랑의 추억2편입니다.
근데....내용중 나오는 '믿거나말거나 1,2,3'에 대해
열분이 안 믿어도 저로선 어쩔 수 없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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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난, 그를 만났다.
그가 누구냐구?
사랑이야기 일편의 주인공 남자라고만 알려드리겠다.
오랜동안 연락도 안하고 지내다가
여기 글을 올리고 보니 그 아이가 생각났고,
어떻게 사는 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내 잡동사니 상자들을 죄다 뒤져서
몇 년 전의 수첩을 찾아냈고, 그 수첩 속에서 그의 전화 번호를
발견했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언제나 활달한 부산 아지매 같은 목소리, 그의 어머니가 받았다.
인사를 하자 어머니는 반기시며

"오늘 전화 안 했으면 니캉 다시는 연락 못 할 뻔 했다 아이가!
우리 내일 이사간다! 이사갈 집 전화 번호부터 받아 적거라."

하신다. 나는 어머니 이사갈 집 번호를 받아 적고,
그 애의 휴대폰 번호도 받아 적었다.

"니 결혼 안 했나? 아이고마, 아직까정 안가고 뭐했디노?
언제 한 번 놀러 온나."

부평에 사신다는 그의 어머니께는 언제 한번 놀러 가겠다고 인사하고 끊었고, 내 수첩에 다시 적힌 그의 이름과 그의 휴대폰 번호를 찬찬히 읽어 보았다.
조금 묘한 기분을 느끼다가 전화기 버튼을 눌렀고,
잠시 동안 내 가슴이 떨렸던 것 같다.
신호음에 이어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나야.잘 지냈어?"

그런데 그는 마치 어제 전화한 듯 놀라지도 않고,
그저(?) 반갑게 받았다.
그리고는 만나자고 했고, 우린 약속을 했다.
그는 강남에 살고 있었지만 내가 있는 여의도로 오기로 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한 동안 내가 한 게 잘 한 짓인지 아닌지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이지만 "우연이 세 번이면 인연"이라는 말도 떠올랐고,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는 말도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오늘 전화 안 했으면 우린 어쩌면 다신 못 만났을지도 모르는건데...
물론 난 그가 결혼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고,
그에게 여자가 있는지 어떤지도 모르며
이제와서 그 애랑 어떻게 해 볼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와는 참으로 질기면 질긴 오랜 인연이 있다고 생각했고
그 인연이 어떤 것인진 모르지만 쉽게 폐기처분할 그런 가벼운 인연은 아니란 생각은 했다.

사실 그와의 질긴 인연은 어릴 적부터 줄기차게 알아온 초등학교 3년 연속 반창이라는 것 외에도, 그 애와 헤어졌다가 어떤 우연으로 다시 만난 적이 두 번이 있었던 것이다.
첫번째 우연은, 그 아이가 많은 동창들 앞에서 날 좋아한다고 했다며 전화로 고백을 한 후, 내가 챙피하고 화가 나서 다시는 안 본다고 (사실 그 전에도 만나준 적도 없었으면서)끊어버린 몇 주 뒤에 일어났다.

그때는 대입 시험을 치르고 난 후여서 반팅이니 뭐니 하며 대부분의 고3들은 미팅에 열을 올리며 들떠 있던 시기였고, 나는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며 알찬 고3 방학을 보내려고 철학서들을 읽으며 인간과 신, 유물론과 유심론을 고민하고 있었다.(믿거나말거나1)
그런데 그런 나를 한심하게 보고 있던 우리 어머니가 어느 날, 내 동창생 전화를 바꿔주며, 이미 허락했으니까 엄마 얼굴 먹칠하지않게 괜찮은 애들 데리고 나가 미팅시켜주라시는 게 아닌가..!
결국 이미 어머니와 작당을 한 내 동창생의 등살에 미팅주선을 할 수 밖에 없었고, 엄마의 권유로(믿거나말거나2) 미팅을 나가긴 했지만 일말의 도도한 자존심이랄까, 주선만 해주고 미팅에 끼지는 않겠다고 동창에게 말했었다.하지만 당일날, 나오기로 한 여자애 하나가 안 나왔고, 주선만 하고 빠지는 짓은 죽어도 못하겠다며 난리치는 내 동창 녀석때문에 할 수 없이 쪽수 채우느라 나도 그 미팅에 끼게 되었다.그리고 며칠 후, 난 그때 만난 남학생과 두 번 째 만남을 하러 (이때도 다른 친구들이 같이 에프터 하자며, 주선해 놓고 빠지면 배신자라고 그래서 흑흑..진짜다..!-믿거나말거나3)나간 까페에서였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바로 문 가까운 곳에 그 애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바로 그 건너 편에 내 파트너와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난 당황해서 얼른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리고는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했다.
(사실 그 동안 그 애를 안만나준 이유도 "단지 학생이 연애하면 안되기 때문" 이었고, 그 애가 전화로 동창들 앞에서 내 얘길 했다고 했을때도, 날 "쪼가리"라는 비속어로서 규정했다는데 충격을 먹어서였다. 그렇게 순진한 척,범생인척-나로서는 진실이지만 어쨌든- 그 애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그 동안의 내 모습이 도도한 척, 잘난 척, 하며 안만나주고 튕긴 꼴 밖에는 안되는 거 아닌가..! 내가 단체 미팅이나 하고 저 아닌 남학생과 데이트 하는 모습을 보면 그 애가 날 어떻게 볼까 눈 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 까페 문이 열리며 그 애와 내 미팅 파트너가 동시에 나왔고,(둘은 날 이미 본 모양이었다. 그렇게 쏜 살 같이 나왔는데도, 흑흑...) 서로 나에게 인사를 하다가 서로를 의아해 하며 봤다.
난 정말 당황해서 얼굴까지 빨개지는데,
그런데... 그 애 뒤에는 한 여학생이 서 있었고, 그 애는 그 여학생을 여자친구라고 내게 소개시켜줬다. 난 그저 멍하니 응...하고 바라보고 있는데 내 파트너가 다가왔다. 그 애와 내 파트너는 나에게 서로를 소개시켜 달란 얼굴로 보고 있었고, 나도 어쩔 수 없이 소개를 시켜줬다.
"으,응..이 쪽은 000라구 내 미팅 파트너구...요 쪽은 000라구 내 초등학교 동창..이야..."
둘은 인사를 했고, 그 애는 여자친구를 데리고 얼른 갔다. 물론 난 내 파트너와 함께 단체미팅 2차전을 위해 그 까페로 들어갔다.
하지만 미팅 내내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왜 하필 이 곳에서 이 시간에 이렇게 만나고야만거지..!
속상해했다.
하지만 그러고 얼마 안 있어서
그 아이는 다른 친구 편에 편지를 보냈고,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했으며
내가 만나주지 않아서, 화김에, 잊어보려고 만났던 애였으며
그 애를 만나도 날 잊을 수가 없노라고 괴로워하는 편지였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 날 그렇게 까페 앞에서 부딪혀서 보게 된 후,
난 처음으로 내가 어쩌면 그 앨 좋아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전엔 내 감정을 몰라 적극적인 그 애 앞에 당황해서 도망만 갔었는데 그 날 그 애가 다른 여학생과 있는 것을 보고 속상했던 나자신을 돌아보며 처음으로, 질투란 감정이 내게 있다는 걸 깨달았던 것이다.
결국 그 우연한 만남은
우리 둘을 다시 이어줬고,
비록 친구이상으로 금방 발전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편지하고 아주 가끔은 보는 관계가 되었다.
(그러다 사랑이야기 일편의 그 장미 한송이를 받는 일이
그 다음 해에 있었던 거다.)

그리고 두번째 우연은 헤어진 지 몇 년 후
(지금은 헤어진 이유조차 모르겠지만)
전대협(전국대학생협의회)집회때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때만해도 대학생들 중의 많은 수가
전대협집회를 위해 철통같은 검문을 뚫고 집회로 달려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 해는 광주에서 전대협 집회가 있었고,
나는 우리 후배들과 함께 검문을 피해 시외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무등산을 넘어가며 겨우 전남대 운동장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맞은 편에서 다른 대학도 막 운동장 입성을 하고 있었고
우리 대학과 그 쪽 대학은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출정가를 불러
서로의 기운을 북돋아주고 있었는데, 그 줄의 제일 앞에 서 있던 그 애와 나는 손을 높이 쳐들며 구호를 외치다가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놀라며 서로의 높이 쳐든 손을 잡았지만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대열에 파묻혀 멀어졌고, 그 날 광주의 밤 하늘을 보며 서로가 비슷한 생각과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다시 만나지는 않았다. 물론 만나려고 하면 만날 수는 있었겠지만(각 학교가 집합하는 장소는 정해져 있었으므로) 여전히 고지식했던 나는 그 곳에서 사적인 감정으로 그 애를 만나는 게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 후, 우리는 연락을 했고 서로를 다시 만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렇게 두 번의 우연을 통해 만났던 우리는 이제 세 번째 우연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그 애가 어떻게 변해있을지 가슴 졸이며
그 애와 약속한 장소로 걸어가고 있는 날 발견했다.
그리고 그런 날 보며 이런 생각이 퍼뜩 들었다.
우연이니 필연이니 하는 것은
그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픈 이에게만 다가오는 것이란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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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2003-05-08 10:55:43
다시 만나시죠!

김경미 2003-05-08 10:55:43
3편에 만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