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죽음을 놓는 마음
(드라마)죽음을 놓는 마음
  • 김경미
  • 승인 2003.05.31 03:44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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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놓는 마음

한때 나는 내가 쓴 드라마에 사람이 죽는 이야기를 두려워서 쓰지 못 한 적이 있다. 이는 왠고하니, 가수가 죽음을 예견하는 노래를 부르면 꼭 얼마 후에 요절하더라-하는 식의 미신같은..뭐 그런 찝찝한 기분과한 편으로는,어찌나 다른 작가들이 죽음이란 쉬운 장치로시청자의 눈물을 뽑아내는지..나라도 좀 다른 방법을 써보고 싶은 뭐, 그런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내 경험에서 나온 죽음에 대한 두려움때문이었다.

그 경험이란 것은 작가되고 1년도 채 안 된 때였는데,한 감독으로부터 단막을 부탁받고 준비를 했었다. 나는 철없는 치기랄까 죽음을 눈물 뽑고 청승떠는 분위기로가 아니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써봐야겠다는 욕심이 났다. 그래서 내용을 구성하면서 간암으로 죽음을 앞 둔 아버지가 연애 한번 못해본, 아직은 철없는 딸을 걱정하며, 곧 맞을 죽음을 비밀로 한 채, 딸을 위해 마지막 여행을 하는 그런 이야기로 다듬었고, 딸은 여행 끝무렵 그 사실을 알게 되지만, 대신 그 동안 아버지에게 섭섭했던 바로 그 추억들을, 절절한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추억으로다시 선물 받는..그런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에 바로 그 단막을 같이 했던 감독과 미니시리즈를 하는 와중에 드라마 상 주인공의 엄마가 죽는 그 날이 실제내 아버지의 죽음(검사 중 돌아가셔서 확실한 건 모르지만 간경화나 간암이 사인으로 추정되는)을 목격한 그 날이 되었다.

그 후 나는 괜히 내 드라마에서 누군가가 죽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꺼려졌고, 아직도 (명분은 죽음으로 쉽게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 자존심 상해서지만) 드라마에서 쉽게 사람을 죽이지 못한다.
말하자면 현실 세계에서 죽음에 대한 큰 두려움이 나에게 내재되어 있어서 그런 터무니없는 미신조차 믿었던 것이리라.

그리고 몇 년 후, 혼자 인도여행을 하던중에 바라나시에 당도했을 때 두려워 피하고 살아온 죽음을 만났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겐지즈강이라고 부르는'강가'강에 도착했던 때였는데, 인도 사람들은 그 강에서 목욕을 하고, 물을 마시고, 한 쪽에서는 화장을 하고, 또 시체의 일부를 물고 다니는 개가 헤엄을 치기도 하는...참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광경을 보게 되었다. 인도 사람들도 죽음 앞에 왜 눈물을 흘리지 않으랴만은..대체로 인도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도 눈물을 보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난다고 보고, 죽음을 담담하게 맞는듯 했다. 그들은 어쩌면 윤회를 믿으며 다음 생을 기약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참 묘한 광경이었다.
'강가'강(겐지스강)은 인도인에게 그렇게 삶과 죽음이 따로 있는 곳이 아니라 함께,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담담하게 바라 볼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나는 잠시 후, 조그만 배에 올라 뱃사공의 독특한 노래를 들으며 '강가'강에 손을 담궜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내가 삶을 붙들고 있듯 그렇게 죽음을 붙들고서살아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면서 '강가'강의 물살에 내가 쥐고 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랄까 삶에 대한 집착이랄까 그런 것을 놓아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인도인들처럼 기도를 하며 아버지를 놓아드리려 애썼다.

이제 세월이 흐르고, 나도 나이가 점차 들어가니 가까운 사람들의 부모님 빈소에 가는 일이 늘어난다. 그 분들에게는 참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 항상 난감하다.
사실 내 경험으로 봐서 위로랍시고, "누구나 죽는거야. 너무 슬퍼하지마." 라고 했던 어느 감독을 두고두고 심정상해 했던 기억이 있고 보면, 함부로 뭐라고 말하는 건 정말 위로가 아니라 상처가 될 수도 있겠다 싶고, 그래서 겨우 하는 얘기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수준이다.
최근에 광명 시민신문에서 일하시는 한 분의 아버님 빈소에 갔을 때도 참 뭐라 말 할 수가 없어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어쩌면 그 분에게 위로가 안 될 게 뻔하겠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위로가 되었던, 언젠가 한 작가 선배가 내 아버지 돌아가신 후보내주었던 짧은 시를 그 분에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다.

꿩 발자국(최승호)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꿩이 눈밭을 걸어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뚜렷한 족적을 위해 어깨에 힘을 주면서 발자국 찍기에 몰두한것도 아니리라.
꿩조차 제 흔적을 넘어서 날아간다.
저자의 죽음이란 흔적들로부터의 날아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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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者 2003-05-31 03:44:28
제 상주 경험에 따르면 그저 마주 보아주고 눈길로 마음을 전하는 분이 가장 위로가 되더군요.

김경미 2003-05-31 03:44:28
내가 갔던 겐지즈강을 그 나라 사람들은 강가라고 부르더군여. 제가 강가강이라고 썻던 것 같은데..내가 넘 늦은 시간에 비몽사몽 써서 안 쓴 건지..편집 중에 빠진 건지...하여튼..지금 보니 강가란 강 이름은 빠져서 알려드립니다.

??? 2003-05-31 03:44:28
경미님 죽으면 않되요.알았져?

김경미 2003-05-31 03:44:28
에고...저 안 죽습니다..걱정 안하셔도 됩니다..하지만..인명은 재천이지여..

??? 2003-05-31 03:44:28
걱정이 되요.하도 술마시고 다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