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사람도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동물? 사람도 살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 김혜란 광명자치대학
  • 승인 2022.09.06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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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란

어느 날 K동물보호단체에 같은 지역 주민센터 소속 사회복지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90이 넘으신 할머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119가 출동하여 응급실로 들어가셨어요. 키우던 개가 있는 줄 몰랐는데, 며칠을 굶은 채 낑낑거리는 소리에 이웃이 신고를 해서 나가보니 하얀 말티즈 한 마리가 혼자 남아있는 거에요. 이 강아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동물보호단체에서 좀 데려가주실 수 있을까요?”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는지 물어보니, 아직 깨어나지 못한 상태이고, 앞으로 어떻게 되실지 알 수도 없고, 가족도 연락이 안 된다는 사정이었습니다. 그러니 아예 동물단체에서 입양을 하거나, 아무튼 그 비슷한 것을 해주기 원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개(초롱이)를 동물단체가 데려오는 것은 여러 모로 좋은 대안이 아닙니다. 할머니와 초롱이의 관계가 어떤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혼자 사시던 할머니의 유일한 친구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지요. 그런 영혼의 친구를 할머니의 건강이 모호한 상태에서 함부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할머니가 사라진 충격을 초롱이도 받는 중입니다. K동물보호단체는 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단체 활동가들이 한번 나가서 초롱이 상태를 살펴보고, 더러워진 집안을 청소하고, 사료그릇과 물그릇의 위치를 정해주고, 사료도 무료로 제공하는 대신 구청은 매일 동네분들과 조를 짜서 사료와 물을 갈아주고, 가끔 산책도 시켜주시면서 할머니의 상황을 지켜보자는 제안이었어요. 다행히 담당자가 흔쾌히 제안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초롱이와 할머니의 관계를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초롱이의 거취를 결정하려던 것은 잘못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공무원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점점 더 많은 관계자들이 개와 인간의 관계, 즉 반려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결과가 매우 좋았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는 깨어나셨고, 의식을 찾자마다 개의 안부를 물었던 것입니다. “잘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고맙다”며 우셨답니다. 그리고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는 할머니께 말씀드렸어요. “할머니가 건강해야 초롱이도 보살필 수 있으니 앞으로는 건강에 더 유의하시고, 맛있는 것 초롱이만 챙겨주지 마시고, 할머니도 챙겨드시고, 운동도 하시고, 건강검진도 잘 받으셔야 한다”고요. 할머니는 그 후 더 건강해지셨습니다. 내가 건강해야 초롱이도 돌볼 수 있다는 걸 아셨으니까요. 이런 방식이 사람, 동물, 이웃, 공동체 모두를 살리는 길입니다.

반려동물은 오랜 기간 인간과 함께 살도록 길들여져 왔습니다. 반려동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떤 사람에게는 도덕적 문제이거나, 태도의 선택일 수 있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동물에게는 생명이 걸린 문제입니다. 사실 반려동물 뿐만 아니라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사람, 동물 모두에게 윤리나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라는 것,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물과 인간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삶’과 '생존'의 문제이다.

광명자치대학 반려동물학과는 초롱이와 같은 사례가 발생했을 때 해결의 기본방향을 이해하고, 제시할 수 있는 마을활동가를 양성하는 데에 있습니다. 2017년 서울의 M복지관이 지역 영구임대주택 단지의 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려동물 관련 현황을 전수조사 한 바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13%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었고, 70% 이상이 60세 이상 노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비용부담(33.3%), 이웃과의 불화(8.3%), 산책의 어려움(8.3%), 양육정보 부족(5.6%) 등으로 반려동물을 돌보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또한, 기초생활비 40만원 가운데 30만원을 반려견을 돌보는데 사용하여 생활고를 겪고 있는 노인도 있었고, 손주들이 맡기고 간 중형견 네 마리를 좁은 집에서 돌보느라 밖으로 나가기조차 어려운 노인도 있었습니다. ‘키울 능력이 안 되면 키우지 마라’는 것은 대안이 아닙니다. 그 어려움이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확실한 해결책은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함으로써 더 좋은 ‘관계’를 만드는 것입니다.

내년에는 반려동물학과가 다시 열려 재미있고 신나게 공부하고, 광명시가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길 희망합니다.

김혜란
광명자치대학 반려동물학과장
평택대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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