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안티 임성한 정정당당’
(드라마)‘안티 임성한 정정당당’
  • 김경미
  • 승인 2003.06.17 22: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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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임성한 정정당당’

최근 <인어아가씨>의 작가 임성한의 절필을 요구하는 인터넷 동호회 <안티 임성한 정정당당>이 회원수 2만을 넘기며 방송가에 회자되고 있다. 사실 같은 동료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 하는 건 껄끄러운 일이다. 거기다 원래가 시청률이 높다보면 주목을 받게 되고 그러다보면 억측 같은 소문도 나돌기 마련이어서 내가 본 적 없는 ‘임성한 목격담’을 함부로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일면식도 없는 나로서는 임성한 작가를 한 개인으로 말할 수 있는 데이타는 애초에 없다. 그런데 내가 방송작가이다 보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안티 임성한 정정당당’에 대해 얘기하며 임성한이 어떤 사람인지 물어오곤 해 난감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같은 방송작가로서 궁금하기도 하고, 그냥 넘기기에는 그 사건의 현실적 문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기사내용은 ‘방송 전파를 개인의 소유물로 여기는 오만한 사고방식으로 시청자를 우롱하는 문제적 글쓰기를 하는 임성한이 방송계에서 퇴출 될 때까지 싸우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이버 테러도 불사하는 안티 임성한 정정당당과,이에 맞서 그 동안 어떤 언론과도 인터뷰 하지 않고 자신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던 임성한 작가가 이례적으로 A4용지 8장 분량에다 구구절절 심경을 토로한 장문의 글이었다.
특히나 임성한씨가 직접 썼다는 글을 읽으니 나도 작가지만 실망스러웠다. 이렇게 개인적 입장에서 방어적으로 사고하고, 또 그런 자신을 당당하게 여길 수 있는 거구나...사실 그 작가의 글의 오류를 지적하자면 재미도 날 것 같지만 한 개인의 잘못된 사고를 지적한다는 것이 그리 의미있는 일인 것 같지는 않기에 넘어가더라도 적어도 한 가지, 작가와 시청자 간의 의사소통의 길 찾기에 대한 고민은 임성한씨가 한번 쯤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한때 인터넷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또 ‘작가가 글로서 말해야지, 제 쓴 것을 가지고 스스로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건 너무 민망하고 변명같잖아.’ 하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다. 사실은 지금도 내 글에 대해 혹은 내 처지에 대해인터넷상에 떠들어 대는 것에 대해 그리 자유로운 생각을 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시청자 혹은 네티즌이 얼마나 대화하기를 갈구하는지 알고 또 나 또한 인터넷상에서도 스스로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면 진정성을 담보한 대화가 가능하리라 믿기에 그런 대화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돌아보면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다. 학교2를 쓸 땐데, 김민희가 ‘그냥 힘들어서 하기 싫다’는 이유로 도중하차를 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난감했지만 말릴 수 없는 상황이란 판단에서 새로운 배우를 물색 중에 감독이 이요원을 캐스팅 하고 싶은데 요원이가 청소년드라마는 안하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내 인생 처음으로 (난 캐스팅에 발 벗고 나는 적극적 캐릭터의 작가가 못된다)과거 내가 쓴 일일극에 이요원이 출연했었고, 조금 아는 사이란 이유로 메니저에게 부탁을 하는 입장으로 요원이를 ‘겨우’ 캐스팅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가자 민희가 사라진 자리에 요원이가 들어온 그 회의 작가인 내가 갑자기 민희를 도중하차시킨 ‘힘 있는 작가’가 되어 있었고, 사이버상에서 작가면 다냐 식의 글들이 올라왔다. 힘있는 작가라니...김민희가 나가는 것도 못 잡고, 요원이도 겨우 캐스팅했는데...답답한 일이었지만 그런 것을 변명하는 글을 올리는 것도 구차한 것 같고, 그저...작가는 열심히 쓰면 되는 거지...하고 생각했다. 그 뒤에도 또 하필 내가 쓰는 회에서 한 배우가 방송펑크를 냈고, 제작진의 사정을 들어보니 한 두 번이 아닌 잘못이어서 결국 도중하차 시켜야 할 상황이라 나로서는 실컷 주인공으로 쓴 한 회를 거의 새로 쓰다시피 하여 겨우 방송을 했는데, 또 네티즌들은 그 배우를 내가 내보냈다고 항의를 하니 답답한 마음이 안 들 수 없었다. 그러자 애초에 도중하차를 주장했던 조연출이 그간의 사정을 간략히 올리며 오해를 풀었고 모든 것은 새로 들어온 배우가 인기인으로 성장하면서 잠잠해져갔다. 하지만 그 후에도, 침묵이 옳은 것이란 애초의 내 생각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방송일 때문이 아니라, 전혀 다른 상황, 내가 개혁당의 당원으로서 살면서였다. 한 때유시민씨가 범개혁세력의 신당론을 언론에 발표해버린 후, 일부 당원들은 신당논의 이전에 당원의 의사를 물어보지 않은 그 절차를 놓고 상처받아 하고, 나 또한 그런 당원들의 글을 읽으며 작은 절차도 중요시하며 한 발 한 발 민주적이고 상향식인 진정한 정당의 모델을 만들어 보고자 하는 당원들의마음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그 동안 어쩌면 정말 참여하지 못해 답답하고 그래서 대화하고 싶은 시청자 혹은 네티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거나 가볍게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도 겸손한 척해도작가입네 하며시청자의 마음을 헤어리는 데 부족했고, ‘개미 네티즌’의 입장이 되어서야 개미 네티즌의 마음을 제대로 깨닫게 된 것이다.

요즘은 인터넷이 확산되면서 대화의 창구들도 늘어나고 대화하고 싶은 욕구의 분출도 폭발적이다. 또한 양적인 변화 뿐 아니라 질적인 변화도 생겨나서 한국방송가 초유의 사태인 ‘안티 임성한 정정당당’이라는 작가에 대한 안티 사이트가 생겨나, 방송 전후 CM 제품에 대한 불매 운동과 드라마 모니터링 전문 단체로 발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 동안제대로 된 드라마 모니터링 그룹, 올바르고 다양한 평가제도 없이, 그저 시청률로만 드라마의 가치를 평가 하는 현실에 대해 내가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를 생각하면 이런 사이트의 등장은 고무적이고,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우리나라 방송역사에도 좋은 일로 기록될듯하다. 하지만 적어도 그 발전과정에서 개인 비방이나 감정적 글쓰기를 통해 상처를 주기보다는 발전적 대안을 고민하고 상대의 입장도 고려한 글쓰기, 솔직하게 대화하고, 권위나 힘으로 협박하기 보다는 서로 다른 것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대화와 사고방식이 존중받는..인터넷 대화의 예의를 성숙시키는문화 또한 정정당당 사이트에서 함께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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讀者 2003-06-17 22:32:11
疏通... 정말 중요한 화두입니다. 서로 上昇하는 길이겠지요.

나도 讀者 2003-06-17 22:32:11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한 글쓰기가 필요하다는 말, 공감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