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창조적인 작가란?
진정 창조적인 작가란?
  • 김경미
  • 승인 2004.01.26 13:4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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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창조적인 작가란?


얼마 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이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자신은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 지망생인데 최근 자신이 활동하는 사이트에 시놉시스를 올렸더니 누군가가 아주 오래 전 티비에서 방송을 한 드라마와 흡사하다는 지적을 했고, 표절에 대한 의혹을 받게 되자 이 작가는 사방팔방 뛰어 다니며 혹은 인터넷을 뒤지며 결국 그 드라마의 제목과 작가를 찾아내게 되었는데, 그 제목은 ‘석세스 클럽에 간 사나이’란 단막극이었고, 그 단막극을 쓴 작가가 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시놉을 간략히 적어놓은 후, 정말 내가 쓴 단막극과 유사한 지, 내 대본을 볼 수는 없는 지 알고 싶다는 글이었다.
사실 그 사람으로서는 애써 뭔가를 생각해서 영화화 할 기회가 생겼는데 누군가가 표절의혹을 제기하니 정말 속이 탔을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나 같은 동료들에게 표절이 아니란 결백을 증명하고 싶은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곰곰이 시놉을 읽고, 옛날 내 드라마를 떠올리며 생각을 해봤지만 내가 함부로 표절이네 아니네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썼다.


님의 간략한 시놉은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더군요.^^
글쎄..감히 제가 님의 시놉을 가지고 비슷하다 다르다 판단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일 듯 합니다.
님께서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것이 가장 좋을듯한데..
참고가 될까 하고 대본을 찾아보았으나 대본 찾기가 쉽지 않네요.
(워낙 좁은 집에 이사 해 제 대본들은 다 창고에서 고생 중이거든요^^;)
그래서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라도 드리고 싶은데
이 또한 어느 감독님께서 빌려 가신 후 돌려주지 않아 ^^;;;

그래서 저도 간략히 제 글에 대해 전할 수밖에 없겠습니다.
(중간 생략)
같은 시대, 같은 자극을 받고 살아가다 보면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드라마란 틀을 갖게 되면 더욱 비슷한 방식으로 다듬어 질 것이구요.
그래서 베낀 것이 아니라 우연히 같을 수 있구요,
또 영향을 받아 비슷한 것들이 생산 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님께서는 비슷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 애써 저를 찾아내기까지 한 걸로 보아서
우연히 같은 부분이 있었고, 확인하고 싶으셨던 것 같군요.^^
(그것도 그 당시 본명인 김 경미를 쓰다가 -청소년 드라마 "나"를 할 때까지만 썼지요. 그 후에 김 윤영이란 필명으로 바꿨는데 저를 찾아내시고 멜까지 보내신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답니다.^^;;;;)

제가 처음 드라마 작가의 길로 들어서고 기성작가의 보조작가를 하면서 그 작가가 어찌나 영화에서 낯뜨겁게 상황을 베끼는지..그것도 이름말하면 모두가 알만한 분인데..
정말 갈등을 겪다가 어느 날 귀한 말 한마디를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고 그래, 이거다! 생각한 구절이 있었습니다.

"진정 창조적인 작가는 남의 것을 베끼지 않는 작가가 아니라 남이 도저히 베낄 수 없는 것을 창조해내는 사람이다."

뭐, 이런 구절이었던 것 같은데요...

그 당시로서 저에게 많은 느낌을 주었지요.
남의 것을 베끼지 않는 것은 기본이지만 따져보면 이 세상에 서로 닮지 않은 작품이 몇이나 있을까요?
특히 형식이나 기본적인 구조, 줄거리 등이 비슷한 건 참 많지 않습니까?

베낄 수 없는 것, 흉내낼 수 없는 것은 기본적인 줄거리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작가만의 마음이나 생각이 느껴지는 글의'진정성' 일 것입니다.

그러니 비슷하다는 것에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님이 그 시놉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님의 마음을 시나리오로 잘 표현하는 데만 애를 쓰세요.
그러면 저의 대본이랑은 결코 같지 않을 겁니다.^^

(중간 생략)

님은 아마도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하시겠지요.
그러면 된 겁니다.^^

좋은 글 많이 쓰세요.

작가란 처음에는 주변의 같은 동료와 경쟁할 수도 있지만 걸어갈수록 '자기 열등감'과 '자만', '나태' 란 내 자신 속의 괴물들과 외롭게 싸워야 하는 '벌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선배거나 동료거나 후배거나 간에 작가란 사람들에 대해 연민을 많이 느낍니다.
함께 공부하고 도움 주는 동료들과 오래오래 아끼면서 바른 작가로 함께 나아가시길 빕니다.

그렇게 가다보면
어쩌면
작가란 힘든 길이지만 아름다운 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건필하시구요,

살다가 좋은 모습으로 혹 일하는 동료로 보게 된다면 참으로 반갑겠습니다.^^


이렇게 메일을 보내고 다시 그 작가의 감사하다는 답글을 받고 하면서 나는 오랜만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진정 창조적인 작가인가?
내 마음을 닦고, 좋은 글을 토해내기 위해 얼마만큼의 정성으로 글을 쓰며 살았던가?
나태와 자만, 자기열등감이란 괴물에 지고만 사는 건 아닌가?
순간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평소 신년이라고 특별히 계획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던 나이지만 이번만은 나를 더욱 벼르고 닦아서 올 한 해는 내 마음 속의 괴물을 똑바로 보고, 때로는 씨름을 하기도 하겠지만, 또 때로는 어울렁 더울렁 화해의 춤도 춰가며 내 속의 신명으로 내 속의 괴물을 다스리는 법을 터득해보는 한 해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혹 여러분 속에도 그런 괴물이 숨어 있다면 올 한 해는 그 괴물과 신나게 맞짱도 뜨고, 화해도 하는 흥미진진한 한 해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그러고보니 정말 내 속의 그 괴물이 어떻게 생긴 놈인지 참으로 흥미가 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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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께 2004-01-26 13:46:39
작가로서 신명난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대됩니다.

이쁜 이 에게 2004-01-26 13:46:39
이런면이 경미님의 물리지 않는 매력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