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작가의 선거
방송작가의 선거
  • 김경미
  • 승인 2004.02.21 21:13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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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의 선거


최근 한국방송작가협회에는 새로운 이사장을 뽑는 잔치가 있었다. 하지만 말이 잔치지 기성 정치인들의 선거와 다를 바 없는 후보들 간의 선거전이 불꽃 튀었다. 양측을 각각 지지하는, 말하자면 각 후보 ‘라인’의 사람들이 각 후보들을 찍어달라며 전화를 걸어오고, 나에게도 그런 전화작업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로서는 6년을 이사장으로 지내신 이 희우 님(덕이, 오남매 집필)과 몇 년 전 작가들로부터 이사장 후보 추천을 받았지만 사양했던 박정란 님(곰탕, 노란손수건 집필) 중 딱히 어느 한 라인에 서서 전화를 하는 것에는 마음이 불편했다. 왜냐하면 그런 전화는 신념이 있어야하는 것인데 내가 어느 편에 설 만큼 명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한 작가들과 통화하며 그들의 생각이 어떤 지를 들어보고 협회 총회에 참여해줄 것만 부탁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그 사이 후보들의 공약과 소개가 담긴 우편물도 받아보았고 총회 날이 되어, 새 이사장을 뽑는 시간이 왔다. 두 후보의 연설이 있었다.
이 희우 님은 협회가 거대해져 경험 있는 자가 맡아야 협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시 출마를 하신 것이라 하고, 박 정란 님은 아무리 잘해왔어도 이제 임기가 4년이어서 이번에 다시 뽑히면 10년 장기독재인데, 물이 흐르지 않으면 썩는 것처럼, 장기독재는 부패를 낳기에 그것을 막기 위해 출마를 하셨단다.
사실 두 분 모두 품이 넉넉하고 작가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분들이기에 사람으로 보면 어느 분이 해도 좋을 일이지만 작가협회를 4년 간 이끌 분으로서 바라보니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기에 많은 고민을 했고 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결정을 했다.
또한 현 집행부의 선거 운용의 공정성, 해마다의 예산 운영에 대한 적절성이나 투명성이 있었는지도 중요한 결정 요인이 되었다. 많은 분들이 그런 과정을 살피는 때마다 예민하게 질의하고 질타를 하셨다. 이는 굉장한 변화였다.
그리고 투표를 마치고, (선관위까지 꾸려서 진행된 대규모 선거였다) 결과가 나왔다. 방송작가들은 그 간 6년을 맡아 오신 이 희우 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젠 새로운 분에게 맡기겠다는 의지를 보여 박 정란 님께서 새로운 이사장이 되었다.
박 정란 님은 드라마 작가이지만 비 드라마인 교양 다큐의 구성작가들의 요구도 들어보고 그들에게도 힘이 되어주는 그런 협회가 되겠다고 하셨다. 당연하지만 고마운 생각이었다. 사실 방송 작가의 세계도 다양한 층위가 있다. 그 층위를 이해하고 나와 다른 처지의 작가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는 협회가 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사실 나조차도 같은 방송작가란 이름으로 불리긴 하지만 교양 파트의 구성작가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그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무엇이 문제인지 잘 모른다. 이제라도 함께 가야한다는 생각에서 환영할 일이었다.
또한 협회의 문화를 바꾸겠다고 하셨다. 이도 좋은 일이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 그간 협회에는 여성작가의 수가 훨씬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장님과 집행부 구성원들이 남성이다 보니 모든 행사 문화가 남성적 사고에 의한 것들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젠 좀 더 여성성의 장점을 살린 꼼꼼하고 건강한 문화로 전환되겠구나 기대를 한다.
그런데 요 며칠 사이, 선출된 후에도 기존의 집행부와 인수인계의 과정에서 이런 저런 마찰이 있다는 소문이 들려 한편 참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우리나라 정치판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선거과정도 그리고 선거 후 정권을 넘겨받는 과정도.
하지만 이젠 이런 일들을 보고 들어도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지금의 정국도 새로운 시스템으로 만들기 위한 진통을 겪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낡고 부패한 정치문화는 가고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문화로 자리 잡을 거라 믿는다. 왜냐하면 단지 사람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시스템을 바꾸는 진통을 지금 겪고 있고, 이런 시스템의 변화가 작가협회의 선거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이런 것을 '물갈이'가 아닌 '판갈이'를 하는 선거라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그런데 시스템의 변화란 것은 거대한 것이 바뀌는 건데, 이를 어떻게 알 수 있는걸까?
시스템이 견고할때는 시스템을 유지시켜온 기득권에 대해 반기를 드는 일이 거의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그래서 시스템에 혹은 체제 유지자에 대해 저항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래봐야 나만 손해지..하는 마음으로 꾸욱 눌러 참고 사는 것이 이 때의 대개의 사람들 생각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무너지고, 새로운 시스템이 구축되어가는 때는 다르다. 물론 어떤 이는 그래봤자, 부정부패가 금방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 똑같은 놈들이지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요즘은 옳은 것을 옳다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 말해도 바보란 소리를 안듣는 시대가 되었고, 경선에 떨어져도 아름다운 승복을 한 사람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내는 시대, 곧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기 보다는 아름답게 지는 것을 진실로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시대가 된 것이다. 검찰이 힘있는 놈의 잘못도 잘못이라 말할 수 있고, 심지어 정권 초기인 대통령의 측근비리도 캘 수 있는 그런 시대가 된 것이다.
나는 작가협회의 선거도 이런 시스템의 변화 속에서, 그 영향 아래서 이루어졌음을 실감하면서 이 시대의 희망을 보았다.
이제 곧 4월 총선이다. 이젠 그저 사람만 바꾸는 것이 아닌 시스템을 바꾸는 선거가 되어야할 것이다. 그러려면 우선 유권자 스스로가 지역주의, 인맥, 금권에 휘둘리지 않고 진정한 정치개혁을 실천해야한다. 정치개혁은 정치인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올바른 인식과 권리 행사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작가협회의 총회는 그 어느 때 보다 많은 작가들이 참여했고, 모두가 공정한 선거를 지향하고 노력했기에 아름답게 마무리되었고, 이런 모습 속에서 내가 희망을 보았듯이, 이번 4월총선에서도 그런 모습이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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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 2004-02-21 21:13:19
선거는 사람을 지치게도 하고 힘겹게도 하지만 새롭게 하는 힘이 있어 소중합니다. 변화의 물길이 열리는 시작이기도 하지요. 사람사는 세상의 일들은 늘 그렇게 교훈도 줍니다. 느낌있게 잘 읽었습니다

신정원 2004-02-21 21:13:19
나라님~건겅하시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나라 2004-02-21 21:13:19
예..잘 지냅니다. 답글 감사하구요, 조만간 함 봐여.

도명 2004-02-21 21:13:19
곧곧에서 변화의 기운이, 바람이 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개혁과 진보의 층위가 넓어졌으면 합니다. 그래서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문화대국으로 가는...

해왕성지기 2004-02-21 21:13:19
김경미님의 고운 뜻이 꼭 이루어지시길 멀리서나마 기원할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