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혀 있는 시각’ 에 대하여
갇혀 있는 시각’ 에 대하여
  • 김경미
  • 승인 2004.03.16 03:56
  • 댓글 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갇혀 있는 시각’ 에 대하여


최근 인터넷상에는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인 안 수찬 씨의 ‘한나라당의 최후’란 글이 연재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그는 그 동안 자신이 한나라당 출입기자를 몇 년간 하면서 자신의 몸을 그리고 영혼의 일부를 팔았다고 고백하며, 기사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자신이 한 몇 번의 오판에 대해 술회하고 있다. 그런데 그의 고백 중에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이 오판은 내가 ‘한나라당의 시각’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한나라당의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면, 시민사회는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때 거대하게 역동하는 시민사회의 흐름을 놓쳤다.’

한나라당과 가까이 하다보니 그들의 시각에 갇혀 버렸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처럼 대선 때는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거라 믿었고, 한나라당 대표 경선에는 서청원이 될 거라 믿었다한다.
내가 보기에 그는 확실한 ‘한나라당’의 시각으로 체화 되기에는 양심과 상식이 있었고, 그들의 본질을 꽤 뚫기에는 날카로운 역사의식이 부족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최병렬이 대표가 되고 나서야 한나라당이 '이회창당'이 아니라 '민정당'이라는 수구골통정당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고, 3・12 쿠데타라는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고 나서야 ‘상식과 양심’은 그들을 제어할 수 없으며, 그들은 '탐욕스런 권력'이란 마약에 빠진 '미치광이 환자'란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탄핵정국을 맞은 지금에야 자신이 잘못 생각했는지 알았으니 ‘갇혀 있는 시각’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지 깨닫게 해주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갇혀있는 시각의 심각성은 권력욕의 노예가 된 국회의원이나, 그런 국회의원들 가까이서 취재하는 기자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들이야 기득권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들의 불타는 권력욕에 미쳐서, 대통령을 탄핵하고, 기쁨에 넘쳐 대한민국 만세를 외쳤다보면 된다. 그런데 별 기득권을 잃을 것도 없는 일부 국민들 중에서도 탄핵이 타당하다 보는 이가 있으니 그들은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바로 ‘갇혀있는 시각’ 때문이다. 오랜 세월 친일파에 의해 역사가 조작되고, 쿠데타의 범인들이 정권을 쥐고는 반공을 내세우며 겁주고는 국민의 눈과 귀, 입을 틀어막았던 그런 시절,
그때 그 조작된 시각에 고정된 이들에게는 탄핵무효를 외치며 촛불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노사모거나 우리당이며 결국 간첩과 내통하는 무리들일 뿐이다.

그러나 ‘갇혀있는 시각’의 경계는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나는 최근에 팔자에 없는 열린 우리당 경선 선관위원이 되어 몇 주를 보냈는데, 양측 후보가 모두 만족할 만한 경선 합의는 쉽지 않았고 경선이 깨질 위기도 수없이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편파적이란 오해를 양측 후보에게서 모두 받아야했다.
그렇게 선관위원으로서 중립에 서고 공정하게 하기 위한 과정은 쉽지 않았다.
과거에는, 혹은 다른 당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위반인데, 우리당 선관위는 별 거 아닌 것을 꼬투리 잡아 너무 가혹한 벌칙을 준다고 항의하는 후보도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가 '또 다른갇혀 있는 시각’으로 후보를 불편하게 한 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말하자면 내가 순진한 정치 아마추어랄까, 선거 판의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친 순결주의로 후보를 가둬놓고 몰아붙이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은 선관위의 입장이 ‘어느 후보의 입장’이라는 갇힌 시각에 서서는 아무런 결론이 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말하자면 경선 방법에 대한 합의에서 어느 한 후보에게 유리한 방법은 다른 후보에게 불리할 수도 있는데, 경선의 방식 도출은 후보 양측에게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하되, 결론이 안 날 때는 한 후보에 대한 유불리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 아닌, 우리당의 기본 정신에, 혹은 정치개혁이란 과제를 안고 있는 역사의식에 입각해서 결정해야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랬다. ‘갇혀 있는 시각’은 단지 어느 편에 서서 보았기 때문이 아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거나, 지금 내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민의을 돌아볼 생각이 없다면 스스로 ‘갇혀 있는 시각’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할 것이다.
그런 결론을 내린 후, 나는 선관위의 결론이 최선은 아닐지언정 결코 잘못된 것은 아니란 확신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선관위원들이 내린 결론은 구체적인 상황의 합리성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구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스스로를 가혹하리 만치 엄한 잣대로 검증하는 과정 없이는 결코 지긋지긋한 구태 정치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인식이었고, 이는 어느 한 후보를 위한 이해득실이 아닌,시대가 요구하는, 시대가 가야할 정치개혁이란 대 명제가 기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 위에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가 어찌되었건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가야할 길은 가야하는 것이므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8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김성현 2004-03-16 03:56:43
구구절절이 공감합니다. 무엇보다 갇힌 시각의 위험이 얼마나 큰 것인지 새삼 느낍니다. 우리가 너무 가혹하다거나 너무 엄하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은 엄하기보다 상식을 떠올리고 싶었던 것인데 말입니다. 사회법보다 더 우위에 열린우리당의 정신과 도덕성이 놓여있기를 소망하며 추진해 나간 과정은 시대가 요청하는 필연이라 믿습니다. 애 쓰셨습니다.

여울목 2004-03-16 03:56:43
진진한 성찰의 글 ~~잘 보았습니다.

김두영 2004-03-16 03:56:43
정말 어려운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수고 하셨어요 (결론이 최선은 아닐지언정 잘못된것은 아니다 )이 이상 정답은 없다고 생각 합니다 이젠 더이상 먹다버린 능금같은 그런사람 그런정치인은 눈에 보이지 않게 합시다

김경미 2004-03-16 03:56:43
허걱..먹다버린 능금..어디서 많이 듣던 영화제목이군요. ㅎㅎ.. 잘 지내시나요? 얼굴 뵌 지 오랜데 얼굴 좀 뵈어여~.

김주열 2004-03-16 03:56:43
이렇게 많은 글이 있을줄이야.양후보님 토론 자료준비하려고 시민신문자료 검색중에 들어왔습니다.선거끝나고 모두 읽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