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의 궤.도.이,탈.] 복날, 마을잔치 
[별똥별의 궤.도.이,탈.] 복날, 마을잔치 
  • 별똥 이영신 <볕드는 창>
  • 승인 2023.07.26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학교, 구름산자연학교는 노온사동 마을 안에서도 백 년은 되었음 직한 기와집이다. 오른쪽으로 옆집은 우리 학교버스를 주차할 수 있도록 내내 배려해주고 있는 최씨 할아버지네(20여년 전에는 최씨 아저씨였다)고, 왼쪽으로 옆집은 슈퍼 할머니 할아버지네, 그 옆으로는 염소 할머니네와 그 옆 불 아저씨네, 또 그 옆으로는 송이 할머니네....  

그렇게 그 옆으로 옆으로 계속 가다 보면 아래 윗마을을 가로지르는 길이 나오고, 아랫마을 안으로 난 길을 따라 가다 보면 넓게 미나리논이 펼쳐져 있었다. 그 논을 둘레둘레 걸어서 혹은 뛰어서 가다 보면 밤나무 숲도 나오고 소나무 숲도 나오는 앞산이다. 그러나, 몇 해 전부터는 고속도로가 난다고 아랫마을 미나리논은 다 없어지고 마을 너머 구름산까지 이어지던 길은 뚝 끊어지고 터널이 들어서고 있다. 

구름산자연학교 아이들이 들판으로 숲 속으로 나들이를 갈 때면 골목 골목에서 만나는 분들. 위에서 언급한 누구네 누구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물론 집집마다 왕왕 짖어대는 개들과 때 되면 꽃 피고 꽃 지는 감나무, 대추나무들도 늘 그 자리에 있다.   

학교가 열리고 처음 몇 해 동안에는 마을길을 지날 때마다 어르신들 눈치가 보였다. 어르신들도 우릴 보는 시선이 어쩐지 곱지만은 않았다. 워낙 요란하게 노는 자연학교 아이들이 행여 타작해서 널어놓은 콩을 밟지는 않을까, 강아지 고양이들에게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산으로 들로 다니며 조용하던 마을을 소란스럽게 하니 말이다.  

구름산자연학교 복날, 마을잔치 2019년
구름산자연학교 복날, 마을잔치 2019년

“닭이다!” 고민 끝에 찾은 해법이다. 생각해 낸 것이 초복에 닭을 삶아 동네 어르신들께 대접하자는 것이었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이끌고 들판으로 나간 틈에 부모조합원들이 닭을 삶고 부침개를 부쳤다. 그러고 나면 이장님의 목소리가 커다란 스피커를 타고 마을을 울린다. 마을방송을 타고 어르신들이 한 분 두 분 학교로 오시고, 아이들도 나들이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왔다. 삼계탕 드시는 어르신들을 더 기쁘게 할 요량으로 아이들은 큰방 윗목에 나란히 나란히 서서 송알송알 노래를 불렀다.  

‘뭔 학교를 요런 동네서 한다고 요란을 떠냐’는 식으로 쳐다보셨지만 초대받은 어르신들은 모두 평소 보여주시던 일복차림이 아닌 깔끔한 외출복 차림이다. 5살 6살 7살들이 부르는 노래들을 를 어여삐, 한없이 어여삐 보아주시곤 했다.  

삼계탕 행사는 언제부턴가 마을행사로 자리잡아 몇 해 전부턴 마을회관에서 초복잔치를 하게 되었고 우리도 어엿한 마을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처음에 그 곱지 않던 시선은 어느새 다 거두시고 아이들 지나는 길목에서 마주칠라치면 "안녕하세요~", "아이고~ 예삐들~"서로 인사하느라 갈 길을 잊을 정도다.  

그렇게 스무 해.! 마을회관 가득 환하게 웃어 주셨던 어르신들이 많이 떠나셨다. 50~60 마리 닭을 삶아도 부족할까봐 발을 동동거렸는데 이젠 30마리만 해도 남는다. 어르신들도 한 걱정이시다. 조잘조잘 온 동네를 누비던 그 많던 아이들이 이제 너무 적어 어쩌냐고. 

올해도 마을회관에서 어르신들께 대접하며 아이들과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난 아이들이 다같이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 하고 큰 소리로 합창을 했다. 나도 속으로 외쳤다. ‘어르신들, 내년에도 이 자리에서 꼭 뵈어요!’ 


별똥
별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