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 개인전 <감자설화>, 철산4동의 환대가 싹을 띄웠다
김진 개인전 <감자설화>, 철산4동의 환대가 싹을 띄웠다
  • 광명시민신문
  • 승인 2023.10.3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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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진의 세 번째 개인전 <감자설화>가 11월 4일 부터 26일까지 광명시 ‘오분의일’에서 열린다.

김진 작가는 개인의 미시적 서사에 관심을 두고 이를 신화 및 민담과 연결해 집단 서사 기억을 다시 쓰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감자설화> 전시는 재개발 지역 철산4동 주민들로부터 받은 환대 경험에서 설화가 창작 되었다. 문자 이전에 세대와 세대를 이어 노래와 이야기로 구전되는 설화에 단초를 얻어, 작가의 지인들(최미자, 성지은, 이필, Elizabeth Laplace, 김도경)을 <감자설화> 이어 쓰기에 초대하였다.

<감자설화>는 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에서 시작된 오늘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다. 유년 시절부터 30년째 철산4동 바로 옆 동네인 하안1동에 거주하고 있는 김진 작가는 지금은 재개발로 빈 집만 남은 마을에서 사라진 이야기를 채록하고 있다.

작가의 추억이 어린 장소에 뜨개질 모임에 갈 때마다 주민들은 그에게 삶은 감자를 내놓고는 했다. 그때부터 김진은 손 안에 감자알을 꼬옥 쥐고 아주 먼, 먼지 없는 행성의 말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그 컴컴하고 척박한 땅속에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의 알이 묻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기시감과 함께 어느 날 김진은 콘크리트 건물 난간에 씨감자를 심었다.

경기도 광명시 철산4동 콘크리트 건물 난간에 씨감자를 심는 김진 작가(2023년 4월)

포클레인으로 밀어버린다고 해서 철산4동의 이 모든 이야기가 사라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정주해 살기 이전, 태초에 이 산동네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곧 개발을 해도 몇 십 년 지나면 또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을 텐데, 그럼에도 변치 않는 무언가 이 땅에 남아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밑도 끝도 없는 질문들을 던지던 중에 문득, 발 딛고 서 있는 콘크리트 아래로부터 ‘땅의 감각’이 전해졌다.

김진은 그 감각에 점점 또렷이 집중했다. 그것은 마치 모든 것이 땅속으로 숨어든, 여신들이 절멸한 그곳에서 찾는 원형의 실오라기 같았다. 감자는 땅속 깊이 잠들어 있다. 무딘 손의 감각으로 흙을 파들어가는 감자 수확은 일종의 존재와의 접촉이다. 끊임없이 무너지고 세워지는 지표면과 다르게, 땅속 저 깊이에 영원한 불씨처럼 묻혀 있는 감자.

감자꽃을 따는 김진 작가. 감자는 꽃이 피면 보다 더 큰 감자알을 만나기 위해 꽃을 따줘야 한다. (2023년 6월)

지난해 11월, 철산4동의 철거와 이주 날짜가 확정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동안 먹먹했다. 서울에서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저녁, 얼굴을 감싸 안듯 마주 바라본 철산4동 산등성이에서 어떤 고요가 불어왔다. 그 고요의 숨결에는 더 이상 작별의 슬픔이나 아쉬움만 실려 있지는 않다. 오랜 시간 주민들과 주고받은 인간다운 삶과 애정,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있다.

헤어진 뒤에 다시 이어지는 낯선 기쁨이 공존한다. 폐허에는 상실의 힘이 있다는 것을 서서히 알아가는 중이다. 전시가 종료되면 <감자설화>는 <이동하는 전시장>으로 바뀐다. <감자설화>를 함께 잇고 이야기로 써준 사람들을 만나러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 갈 것이다. 이 여정엔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지, 땅속이 간지럽다.

감자를 수확하는 김진 작가와 그의 어머니. 콘크리트 건물 난간에서 자란 감자가 생각보다 알이 굵어서 놀라고 있다.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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