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똥별의 궤.도.이,탈.] 사랑하는 법
[별똥별의 궤.도.이,탈.] 사랑하는 법
  • 별똥 이영신 <볕드는 창>
  • 승인 2023.11.09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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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바닷새가 노나라 수도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나라 임금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해 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 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장자의 <지락至樂> 편에 나오는 바닷새 이야기이다. 장자는 타자를 사랑하는 방법을 고민했던 철학자로 이 바닷새 이야기도 그러기에 인용된다.

스무 해 전, 내가 구름산자연학교의 교사로 입문할 즈음, 지금은 기억도 가물한 선배 교사가 나에게 처음 이 바닷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선배는 이 이야기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또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그저,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가 죽고 난 뒤 어떻게 되었을까’라며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얼마 뒤 나는 아이들과 점심 식사를 하던 중, 버섯은 죽어도 못 먹겠다는 일곱 살 아이에게 어떻게든 한 조각이라도 먹여보려 애쓰는 내 모습을 마주하며 덜컥 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제서야 나는 바닷새 이야기를 좀 더 들여다보았다. 장자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으며, 이후 줄곧 이 이야기는 나의 학교인 구름산자연학교에서 나와 아이들 사이를 맴돌았다.

또한 교사인 내가 아이들을 잘 이해하려면 그 부모와도 몹시 긴밀해야 했다. 아이들을 향한 나의 사랑이 노나라 임금의 사랑이 되어 종종 작은 아이들을 어리둥절해하고 슬퍼하는 바닷새로 만들지 않으려면, 아이들의 엄마들과 아빠들의 참여가 반드시 필요했다. 함께 텃밭을 꾸리고 함께 산행도 다니며 여럿이 함께 아이들의 놀이와 놀이터를 고민해야 했다.

함께 살림을 꾸린다는 일은 의견 충돌 또한 늘 함께 한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서로 충돌한 의견들이 퍼즐처럼 자리를 찾아갈 때면 마음 깊은 곳에서 어떤 뜨끈함이 샘솟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면 나는 또 머리를 맞은 듯 바닷새 이야기가 떠올랐다. 부모들과의 소통에 더 많은 어휘를 담고도, 부모들을 읽는 법은 아이들을 읽는 법만큼 여전히 어렵다.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를 보고 그야말로 첫눈에 반해서 자기가 사는 곳으로 데려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만 대접한다. 하지만 바닷새는 슬퍼하다 사흘 뒤에 죽고 만다. 노나라 임금의 지극한 사랑법에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이쯤 되면 나도 사랑 고백을 좀 해야겠다. 구름산자연학교에서 내가 만난 아이들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8~9년을 콩닥콩닥 거리며 지낸다. 아이들과 그 정도면 그 부모들과도 그만큼의 시간을 아롱다롱 거리며 지내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아이들이 왔다 가고, 그 부모들이 왔다 갔을 때, 나와 함께 그들을 지켜보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냥 동료라 부르기엔 너무 가벼워 거기에 친구든 동지든 덧붙이고 싶은 사람들이다. 그들을 20년 사랑했으니 노나라 임금의 사흘은 참말로 껌이다. 노나라 임금과 경쟁해도 하나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나는 그들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나누었다. 우리는 때론 학교를 위하는 일이라면 서로 뒤질세라 앞장서기도 하고, 또 서로를 북돋우기 위하여 쓴소리도 마다않는 사이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만큼 좋은 일이 있을까? 그러나 어느 순간, 동료의 기쁨을 위해 내가 내려놓아야 했을 때, 나의 기쁨을 위해 동료가 물러서야 했을 때. 아차! 바닷새 이야기!! 노나라 임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가 아니라 나를 송두리째 버리는 것이 사랑이라니! 하마터면 내 동료들이 바닷새가 될 뻔하지 않았는가.

나는 오늘도 바닷새 이야기를 다시 떠올리며 내가 만나는 아이들을, 그 부모를, 그리고 앞으로도 이 곳에서 오롯이 서 있을 내 동료들, 그들을 사랑하는 법을 만나러 가야겠다.


별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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