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대북정책, 왜 변하고 있나?
부시의 대북정책, 왜 변하고 있나?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07.05 16: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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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대북정책, 왜 변하고 있나?


대북한 강경책과 비타협주의로 일관해온 부시 행정부가 최근, 미묘한, 그러나 심상치 않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지난 6월말 베이징에서 열린 3차 6자회담에서 CVID 표현을 사실상 철회하고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CVID'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폐기"를 의미하는 것으로써, 부시 행정부는 이를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원칙으로 삼아왔고, 북한은 이에 대해 패전국에게나 적용되는 표현이라며 수용을 거부했었다. 그러나 3차 6자회담에서는 이러한 논쟁이 재연되지 않았다.

또한 7월 2일에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백남순 북한 외무성을 만나 대북 공격 의사가 없다는 것을 재확인하고는, "이념과 체제가 다르더라도 중요한 분야에서 협조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는 부시 행정부가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정권 교체(regime change)'의 대상으로 언급해온 북한과의 '공존'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으로서는 귀가 솔깃해지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와 같은 부시 행정부의 변화는 좀 더 시간을 두고 검증할 필요가 있다. 3차 6자회담에서 제안된 해법은 여전히 까다롭게 일방적인 내용이 많을뿐더러, 대북정책의 변화가 이른바 '네오콘' 등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도 동의한 것인지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부시의 대북정책 변화는 재선 전략의 일환

그러나 이라크 수렁에 빠져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부시 행정부가 재선 전략의 일환으로 대북정책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라크 침공을 비롯한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으로 궁지에 몰린 부시 행정부로서는 대선에서의 득실관계를 기준으로 북핵 문제를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정신이 팔려 정작 중요한 북핵 문제를 소홀히 하고 있다는 미국 내부의 비판도 거세지고 있는 데다가, 부시의 무성의한 대북정책에 대한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불만도 커져왔다는 것도 부시로서는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오죽하면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까지 나서서 부시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권유했겠는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부시 행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 역시 중요하다. 대선을 앞두고 이라크 수렁에 빠진 상황에서 북한에 무력 사용을 추진한다는 것은 정치적 자살 행위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북한에 대해 경제적, 정치적 제재와 봉쇄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북한이 이에 굴복할 리도 없지만, 한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이에 대해 동참하기는커녕 강력히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본마저도 부시 행정부 주도의 대북 압박 노선에서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월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이후 북일관계는 꾸준히 개선되고 있고, 고이즈미 총리는 2년 이내에 북한과 수교협상을 마무리하고 싶다는 의사까지 피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무력사용이나 제재 및 봉쇄 강화를 추진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북핵 문제를 대선 때까지 방치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한 '원죄'로 이라크 정책에 있어서 큰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존 케리 민주당 대선 후보는 부시의 외교정책의 핵심적인 공격 대상을 대북정책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선 전에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이른바 '깡패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막는 것을 최우선적인 외교정책의 목표로 삼아온 부시 행정부는 더욱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이는 반대로 부시 행정부가 대선 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면, 박빙의 승부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인들이 세계 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국가로 북한을 뽑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무기 포기는 분명 부시의 득표 전략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이는 세 가지 차원에서 그 근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케리 진영의 '공세의 예봉'을 무디게 할 수 있다. 부시의 대북정책을 공세의 주요 포인트로 삼아온 케리로서는, 대선 직전에 북핵 문제가 해결 가닥을 잡으면 김빠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를 최우선적인 외교정책으로 내세워온 부시 행정부로서는 자신의 치적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북핵 문제의 해결이 6자회담을 통해 이뤄질 경우, 부시는 '자신의 외교정책이 결코 일방주의가 아니다'라는 근거로 이를 내세우려고 할 것이다.

셋째는, 부시는 북핵 문제 해결을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작년 말에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했을 때, 부시 행정부는 이를 '이라크 효과'라고 선전한 바 있다. 즉 이라크에서 '미국의 힘'을 보여줌으로써,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부시는 북한의 핵개발 포기 역시 '이라크 효과'가 나타난 것이라며, 이라크 전쟁을 통해 이라크에는 '후세인이 없는 민주주의'를, 그리고 국제사회에는 리비아에 이어 북한의 핵무장까지 저지해 '더 안전한 세계'를 선사하게 되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만약 부시 행정부가 11월 대선 이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자신의 재선에 유리하다고 판단해 북한과의 타협을 시도한다면, 북한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여전히 부시 행정부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케리와 상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자신의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는 한 부시 행정부와의 타협을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국의 대선 이전에 핵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시의 재선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북한으로서는 부시의 대선 전략에 쉽게 호응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부시의 대북정책이 '재선'이라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변화된 것이라면, 부시가 재선된 이후에 대북정책을 또 어떻게 바꿀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재선'이라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북한과의 타협을 시도할 경우, 북한 역시 이를 자신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관철시킬 수 있는 기회로 보고 대선 전에 타협을 모색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북한이 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의 제안에 대해 흥미를 보이면서 "인내심과 유연성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 볼 때, 북한은 부시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자신들이 요구사항을 최대한으로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는 한편, 어떠한 형태로든 '합의의 담보물'을 받아내려고 할 것이다. 부시가 재선된 이후에도 합의 사항을 뒤집지 않겠다는 담보물이 있지 않으면, 북한으로서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궁지에 몰린 부시는 재선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상황을 만들 수 위해서는 자신이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북한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다. 반면에, 북한은 부시의 제안을 수용해 핵무기를 포기하면, 철천지원수로 여겨온 부시의 재선을 돕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안 그래도 복잡한 '북핵 함수'에 미국 대선까지 더해져 더욱 흥미로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정욱식/ 2004년 7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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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 2004-07-05 16:13:31
늘 반갑게 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