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의 새 대북제안은 '양날의 칼'
부시의 새 대북제안은 '양날의 칼'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07.1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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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새 대북제안은 '양날의 칼'


지난 6월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3차 6자회담을 계기로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대북 강경책을 고수해왔던 부시 행정부가 최근 새로운 제안을 내놓는 등 한층 유연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주 한국을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이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얼마나 많은 것이 가능할지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라고 말해, 기대감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의 새로운 대북 제안은 한마디로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입장에 비해 유연해졌다는 점에서 핵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열 수도 있지만, 반대로 북한이 거부할 경우 북한에 대한 압박을 높이는 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미국의 제안이 북한이 수용할 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느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의 제안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져 있다. 첫 단계는 핵폐기를 위한 준비단계에 필요한 북한의 조치로 (1)모든 핵 프로그램 폐기 약속 (2)모든 핵 프로그램의 신고 (3)핵시설과 물질에 대한 운용 중단 및 봉인 (4)핵무기 및 부품의 사용 불능 조치 (5)국제 사찰 및 감시 수용 등이다.

이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는 (1)미국을 제외한 한국, 중국, 러시아, 일본의 대북 중유 제공 (2)잠정적 다자안전보장 제공 (3)북한 에너지 수요 및 비원자력 프로그램을 통한 수요 충족 방안 연구 (4)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및 경제제재 해제 문제 협의 개시 (5)북한의 핵관련 과학자·기술자 재교육 및 핵폐기 과정에서의 기술적·재정적 지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번째는 핵폐기 단계로 북한의 모든 핵 프로그램의 폐기가 완료되면 미국은 북한에게 항구적 안전보장을 제공하고 관계정상화 및 경제협력 장애를 해소한다는 것이다.

삼키기에는 쓴 미국의 제안

이러한 미국의 제안은 첫째 북한이 강력하게 반발해온 'CVID'란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고, 둘째 북한이 핵폐기를 전제로 한 핵동결 조치에 들어가면 상응조치를 취할 수 있으며, 셋째 비교적 구체적으로 협상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측면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제안은 북한이 수용하기에는 대단히 까다로운 내용들이 많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미국은 북한이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고농축 우라늄(HEU)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본격적인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이 HEU의 존재를 시인하고 폐기를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북한은 HEU 주장이 날조된 것이라고 맞서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미국은 북한의 평화적 핵활동을 허용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핵포기 대상을 핵무기 프로그램에 한정시키면서 평화적 핵활동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민수용, 평화적 핵활동도 모두 폐기되어야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셋째,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핵폐기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마지노선으로 긋고 있는 '동시 행동 원칙'과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자신이 먼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하면, 미국의 약속 이행을 담보 받을 수 있는 지렛대를 상실할 수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먼저 핵폐기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넷째, 핵폐기의 준비기간으로 설정된 3개월이라는 시간 자체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폐기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북한이 모든 핵 시설 및 물질을 신고하고 사찰을 통해 이를 검증 받아야 하는데, 이는 상당한 시간을 요한다. 일례로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1990년을 전후해 추출한 플루토늄의 정확성을 확인하는데 3년 안팎의 시간이 걸린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이후 실무회의와 9월 말로 예정된 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그리고 이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모아지고 있다.

북한은 삼키기에 쓰다고 해서 미국의 제안을 내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즉, '동시 행동'이라는 원칙을 최대한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면서도,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으면서 미국 대선 결과를 기다리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만약 북한이 사실상 미국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 미국은 어떻게 나올까?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것은 숨죽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 내의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북한의 거부를 본격적인 강경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로 보고, 여러 가지 강경책을 주문하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무부의 대표적인 강경파인 존 볼튼 차관이 7월 18일부터 한국, 일본, 중국을 방문해 향후 대책을 논의하기로 한 것은 이러한 기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수렁에 빠진데다가 대선을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미국이 동원할 수 있는 대북 압박 카드가 별로 없다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따라 대선을 앞두고 부시 행정부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또 다시 강온파 사이의 분열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협상의 실패는 더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미국이 최근 내놓은 제안은 북한이 삼키기에는 쓰고 내뱉기에는 달콤한 그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결국 이 두 나라가 손을 잡고 춤을 추게 만들기 위해서는 부족한 그 무엇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나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이 눈을 크게 뜨고 보다 과감한 역할을 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욱식/2004년 7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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