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중 플레이, 그리고 가능성 높은 나쁜 시나리오
미국의 이중 플레이, 그리고 가능성 높은 나쁜 시나리오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09.13 15: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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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지대] 고차원의 '핵' 방정식, 어떻게 풀 것인가? 
  

안 그래도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전망이 어두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남한의 핵실험 의혹까지 겹치면서 한반도의 정세가 극도의 불확실성에 휩싸이고 있다. 예상했던 것처럼 북한은 미국의 '이중기준'을 문제삼으면서 남한의 우라늄 농축 실험을 쟁점화하고 있다. 4차 6자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부시 행정부는 남한을 상대로 '이중게임'(two level game)을 벌이고 있다. 우라늄 농축 실험 문제가 불거졌을 때 크게 우려할 사안이 아니다는 공식 반응을 보였던 미국은 최근 들어 20여년전에 있었던 플루토늄 추출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가 하면, 남한의 핵실험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다는 입장까지 거론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게임이 치밀한 계산하에 의도를 가지고 전개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강온파 사이의 입장 차이가 '따로따로' 나오고 있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초기에 있었던 문제를 느닷없이 끄집어 낸 것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입장 정리도 되기 전에 남한을 안보리에 회부할 수 있다는 입장을 흘리는 것은 남한을 궁지에 모는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 핵문제는 기존의 북핵 문제에다가, 남한 정부의 안일한 대처와 북한의 과도한 반응, 그리고 미국의 이중게임까지 얽히고 설키면서 대단히 복잡한 고차 방정식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과민반응까지 겹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의 의도는 무엇인가?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중게임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의도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이 치밀한 계산을 세우고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강온파 사이의 '개인 플레이'인지는 불확실하다. 확실한 것은 미국의 이와 같은 이중 플레이가 한국을 궁지로 몰고 있다는 점이다.

우라늄 농축 문제에 대해 과민반응을 보였던 해외 언론은 남한 정부의 잇따를 해명을 통해 의혹 제기의 수위를 낮추는 듯 했다. 바로 이 시기에 미국 관리는 1982년 남한이 플루토늄 분리 실험을 했다는 정보를 흘림으로써 남한의 핵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혹을 부채질했다.

또한 미국이 유엔 안보리 회부를 운운한 것 역시 "별 문제 있겠느냐"며 자위하고 있는 남한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한 것이다. 비확산체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안보리 회부 여부의 결정적인 변수이다. 비록 안보리에서 남한에 대한 제재를 결정하지 않더라도, 의장의 '경고' 한마디만으로도 남한은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추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 정부, 혹은 미국 강경파의 의도는 무엇일까? 전체적인 맥락에서 남한 길들이기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남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문제는 수개월이 소요되는 사안이다. 이 사이에 남한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외교적인 노력을 경주할 수밖에 없고, 그 외교력은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을 설득하는데 상당 부분 투입될 것이다.

문제는 안 그래도 대미 협상력이 약하고 자기검열이 강한 남한 정부가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한미간에는 이라크 파병 연장, 6자회담, 주한미군 재배치,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및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미국제 무기 도입 문제 등 중대한 현안들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의도했던 그렇지 않던 남한 핵개발 의혹을 잇따라 흘리고 유엔 안보리 회부를 운운하는 것은 이와 같은 현안들을 다루는데 있어서 남한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서의 성격을 갖는다. 미국 역시 이러한 효과를 노리고 이중 플레이를 하고 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남북한, 유엔 안보리로 함께 가나?

우리의 입장에서는 "설마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겠느냐"는 생각을 가질 법도 하지만, 핵비확산체제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미국은 세계전략의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만약 미국이 남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미국의 '이중잣대'는 도마 위에 오를 수밖에 없다. 핵비확산체제를 주도해온 미국은 친미, 반미의 여부에 따라 핵문제를 차별적으로 다뤄왔다. 이스라엘, 일본, 인도 등 친미성향의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관대한 입장을 보여온 반면에, 북한, 이라크, 이란 등 적대국가들의 핵개발 문제는 조금만 의혹이 있어도 혹은 없는 증거를 만들면서까지 문제삼아왔다. 이는 미국 주도의 비확산체제의 도덕성과 형평성에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오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이 남한을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남한의 핵개발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면, 그동안 제기되어왔던 '이중잣대'에 대한 비판을 희석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를 근거로 삼아 북한, 이란 등 미국이 정말로 유엔 안보리에 회부시키고 싶은 나라들을 압박할 수 있게 된다.

이럴 경우 남북한이 함께 유엔 안보리에 회부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6자회담이 무산되면 미국은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남북한, 자충수 피해야

또 한가지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남북관계를 포함한 한반도의 정세가 계속 악화되는 것이다. 남한의 우라늄 농축 실험에 대해 북한은 외교관들의 입을 통해, "동북아의 안전을 헤치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과 함께 미국의 이중잣대을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다. '왜 있지도 않은 자신들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물고늘어지면서 실험까지 한 남한에 대해서는 문제삼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반응에 대해 남측 정부는 "할 말이 있으면, 6자회담 장에 나와서 하라"며 다소 감정 섞인 대응을 하고 있다. '왜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트집을 잡느냐'는 섭섭함과 짜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남북한의 이와 같은 반응이 남북 양측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북한이 남한의 우라늄 농축 실험을 쟁점화하려는 것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문제삼으면서 미국을 압박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와 같은 접근은 남한에게는 '트집잡기'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이와 함께 남북한이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상대방의 핵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려고 하는 움직임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북한은 미국의 이중잣대를 강력하게 문제삼기 위해서 남한의 핵개발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려고 할 공산이 크다. 반대로 남한은 우라늄과 플루토늄 추출이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북핵 문제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마치 냉전 시대에 국제무대에서 체제선전 경쟁을 벌였던 것과 흡사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 사이의 불신은 커질 수밖에 없고, 핵문제를 포함한 각종 현안을 풀 수 있는 환경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미국의 강경파들이 원하는 시나리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남북한에게로 돌아오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남북한의 지혜와 직접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핵무기 개발'과는 한참 거리가 먼 남한의 핵실험을 미국의 이중잣대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북한의 의도는 충족될 수가 없다. 오히려 "북한의 의도는 핵무기 개발에 있다"는 의혹을 부채질하면서 미국의 강경정책의 빌미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마찬가지로 남한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기 위해 북핵 문제와의 차별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경우 남북관계는 계속 악화되면서 미국의 강경정책에 포섭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최악의, 그러나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인 것이다.

이제 남한의 외교력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우선 남한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IAEA의 이사회 선에서 이 문제가 마무리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제기된 의혹을 충분히 해명하고, 핵관련 활동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특사파견 등을 통해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추진해야 한다. 현재 핵문제의 대화 틀은 대단히 기형적이다. 남한은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수시로 접촉하면서 6자회담 전략을 짜고 있는데, 유독 북한과의 대화채널은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우리의 입장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함께 '우라늄 의혹' 털면서 돌파구 열어야

발상을 전환해보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의혹은 북미 대결의 해소를 가장 어렵게 하는 난제 중의 난제이다. 미국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에 대해 "분명히 있고, 북한도 이를 시인했다"고 주장하고 있고, 북한은 "미국이 날조했다"고 맞서고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북미 양측 모두의 체면을 살려주면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아야 한다. 그 묘책이란 남한의 우라늄 농축 실험과 비슷한 맥락으로 북한 역시 연구개발(R&D) 수준에서 우라늄 농축을 시도했다는 가정을 세우는 것에서 출발할 수 있다.

북한이 '우라늄 농축 의혹'을 R&D의 맥락에서 접근하게 되면, 북한은 '평화적 핵활동'의 일환으로 우라늄 농축 기술 확보를 시도한 것이기 때문에 핵무기 제조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긴다. 반면에 미국의 입장에서는 어쨌든 북한이 우라늄 농축 기술 보유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라늄 농축 기술은 근본적으로 '이중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의 제안은 더욱 현실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우라늄 235를 90% 이상으로 농축하면 핵무기 제조로 사용할 수 있고, 저농축 우라늄은 경수로의 원료나 농업용, 의학용으로도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남한이 향후 핵연료 제조 기술의 확보를 위해 R&D 수준에서 우라늄 농축 실험을 했다는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북한이 향후 경수로에 사용될 핵연료를 마련하기 위해 우라늄 농축 기술 확보를 시도했다고 정리하면, 북핵 문제는 의외의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이러한 접근법을 바탕으로 북한은 우라늄 농축 관련 활동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IAEA와의 대화를 개시하고, 미국은 이와 동시에 북한이 제안한 '동결 대 보상'을 본격적으로 이행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정부는 외교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꽉 막혀 있는 남북한 사이의 대화채널을 여는데 있다.

 2004-09-10  정욱식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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