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재선 성공…. 한반도의 운명은 어디로
부시 재선 성공…. 한반도의 운명은 어디로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11.03 1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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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미국 대선 결과가 발표되기 전 부시의 재선을 전제로 쓴 글입니다.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사상 초유의 대접전을 벌인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존 F. 케리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접전 지역에서의 재검표와 케리 측의 소송 여부가 변수로 남아 있지만, 주요 접전 지역에서 부시가 케리를 예상보다 큰 표 차이로 승리함으로써 부시의 재선은 되돌리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공화당은 의회 상하원과 주지사 선거도 '싹쓸이'함으로써 한껏 위세를 과시하게 됐다.

이로써 부시 행정부를 심판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염원은 미국 국민의 또 한차례의 잘못된 선택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고, 세계질서의 불확실성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지난 4년 동안 갈등이 증폭되어온 북미관계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태로 진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도 강경기조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고, 이에 따라 북한의 대응은 복잡한 양태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2기 부시 행정부는 바뀔 것인가?

물론 결정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부시의 재선을 곧 한반도 정세의 파국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될 것이다. 일부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2기 부시 행정부는 1기 때와는 달리 강경 자세를 누그러뜨리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협력함으로써 '한반도 냉전해체에 기여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싶어할 수도 있다.

부시 행정부가 벤치마킹하고 있는 레이건 행정부도 1기 때는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규정하고 '스타워즈' 연설을 통해 첨예한 군비경쟁을 야기하기도 했지만, 2기 때는 소련과의 군축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한 사례도 있다. 클린턴 행정부 역시 1기 때는 북한 폭격까지 추진했을 정도로 강경한 모습을 보였지만, 2기 때는 김대중 정부와 함께 대북 포용에 나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일보 직전까지 간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를 가지고 2기 부시 행정부에 낙관적인 기대를 가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레이건 행정부가 2기 때 소련과 군축협상에 적극 나서게 된 배경은 과도한 군비증강에 대한 미국 내의 비판 여론이 대단히 높아졌고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사상 유래 없는 반핵시위에 직면해야 했으며, 무엇보다도 '신사고'를 들고 나온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클린턴 행정부의 1기와 2기 때의 대북정책이 달랐다는 평가에도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1기 때의 남한 측 파트너였던 김영삼 정부와 2기 후반기 때의 파트너였던 김대중 정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굴욕외교'라는 공화당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제네바 합의에 서명한 것은 1기 때의 일이고, 2기 때에도 북한 붕괴 유도나 북폭론이 자주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은 "별일이야 있겠냐"며 희망적인 사고를 가지고 한반도의 운명을 불확실한 미래에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기 부시 행정부가 마음을 고쳐먹을 수도 있겠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검증할 수 없는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 오히려 가능성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예측하고 이를 예방하는데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이 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그렇다면 2기 부시 행정부에 직면한 한반도의 정세는 어디로 흘러갈까? 향후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핵심적인 변수는 6자회담의 성패, 2기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 이라크·이란 비롯한 중동 정세, 미국-중국간의 전략적 이해관계, 주한미군을 비롯한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의 진행 상황 및 군사력의 변화, 남북관계와 동북아 국제관계의 변화 등이 있다. 이들 변수는 대단히 복잡한 함수관계를 만들면서 한반도의 정세를 더욱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먼저 부시 행정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북한의 6자회담 참가를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만약 북한이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를 요구하면서 6자회담 참가를 미루거나 미국의 제안을 거부하면, 부시 행정부는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회부를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동시에 지속적으로 한반도 안팎의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북한인권법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PSI)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북한을 압박해 들어갈 것이다. 아울러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에게도 대북관계 속도조절 및 대북지원 축소나 중단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1차적인 관건은 북한의 4차 6자회담 참가 여부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지난 3차 6자회담에서 제안한 내용을 보다 유연하게 재조정해야 한다. 그러나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강조한 것처럼 미국은 이미 유연한 조정안을 내놓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4차 6자회담에서 '협상을 위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은 낮은 실정이다.

이에 따라 북한이 4차 6자회담을 수용할 가능성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참가하더라도 미국의 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할 수 있다.

2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향방과 관련해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외교안보팀의 인적 구성이다. 이를 둘러싸고 미국 언론들은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1기 내내 불협화음을 일으킨 콜린 파월 국무장관과 도날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교체설이 유력한 편이다.

그러나 외교안보팀의 최고실력자라고 할 수 있는 딕 체니 부통령은 계속 남게 되었고,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 루이스 리비 체니 비서실장 등은 자리 이동을 하면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2기 외교안보팀은 1기 때보다 더욱 강경해질 공산이 큰 실정이다.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팀과 관련해 가장 주목해야 할 포인트는 파월의 유임 여부이다. 외교안보팀 수뇌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네오콘'과 거리를 두어온 파월은 부시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그나마 균형추의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미국 언론의 보도처럼 그가 2기 부시 행정부에서 빠진다면, 2기 부시 행정부는 강경기조의 대북정책에 대한 '내부적 합의'에 도달할 공산이 크다.

이라크 파병, 성격 변화 요구할 가능성 커

향후 한반도의 정세와 관련해 이라크·이란 등 중동 문제도 대단히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일단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자유선거와 헌법제정을 통해 이라크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제스처를 취하면서도, 이라크의 새로운 정부가 '친미' 성향이 되도록 대규모의 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부시는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에게 추가적인 파병 요청을 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한국군의 임무 역시 미군과 함께 이라크 저항세력 및 테러집단 제거로 요청해올 가능성이 높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는 한국이 파병을 해준다는 것 자체를 중요시했지만, 재선이후에는 실질적인 도움을 고려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가 재선할 경우 한반도의 정세는 부시가 이라크, 북한과 함께 "악의 축"으로 규정한 이란에 대한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점 역시 중요하다. 이란은 2004년 초에 유럽연합과의 협상을 통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추가의정서에 서명해 핵사찰을 받았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무리한 요구와 전력생산용 핵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던 유럽연합의 약속 위반을 문제삼으면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재개할 방침을 밝히고 있다.
더구나 2004년 7월에 발표된 미국 의회의 9.11 조사위원회 보고서에서는 이란이 알-카에다와 연계를 갖고 있었다고 발표해,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라크 다음에 이란이 공격 목표물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듯 2004년 7월 미국 하원은 이란의 핵무장을 억제·좌절·예방하기 위해 필요한 "적절한 모든 수단"을 미국 정부가 사용할 수 있다는 결의안을 376대 3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고, 미국 정부 관리들은 부시가 재선할 경우 이란 내부의 폭동을 유발하는 등 이란 정권을 붕괴시키고자 하는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기 부시 행정부 때에는 "이라크냐, 북한이냐"는 논란이 2기 부시 행정부가 출범할 경우에는 "이란이냐, 북한이냐"는 것으로 바뀔 가능성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이다. 클린턴과 부시의 차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과거의 대미협상 자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북한이나, 부시의 선의를 기대하면서 외교 역량을 한미공조에 '올인'하다시피 한 남한 모두 기존 전략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정욱식/2004년 1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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