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을 욕되게 하지 마라
'남북정상회담'을 욕되게 하지 마라
  • 정욱식대표
  • 승인 2004.11.10 1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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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가 재선에 성공한 가운데, 정부와 여당이 계속 '헛발질'을 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한반도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유력한 카드'로 일컬어지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정부와 여당 사이에, 또는 여당 내부에서 상반된 발언을 잇따라 내놓으면서 정상회담 가능성을 스스로 위축시키고 있는 악수를 두고 있다.

최근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정부·여당의 발언을 보면, 이부영 의장과 몇몇 의원들이 필요성을 제기하면, 정부가 이를 부인하는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치열한 고민과 전략적 사고를 바탕으로 당정간에 협의를 통해 추진해도 될까말까한 문제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미국 대선 직후에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여당 내부에서조차 이견이 표출되고 있다. 먼저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꺼낸 사람은 역시 이부영 의장이다. 그는 4일 오전 주한외국경제인과의 간담회에서 "코리아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해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한 정치적 요건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남북정상회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부영 의장 외에도 천정배 원내대표, 정봉주·최성 의원 등도 정상회담 필요성을 피력해왔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대표적인 386출신 의원인 송영길 의원은 "북미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관계를 뚫을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 기조와 속도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은 매우 부담스럽다"고 말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고 <프레시안>이 4일 보도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정상회담 발언

남북정상회담의 현실성과 타당성에 대한 논의는 일단 뒤로 미루더라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일부 의원들이 거론하고 있는 정상회담 추진이나 대북특사 파견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열린우리당이 진정 남북정상회담과 이에 앞선 대북특사 파견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국민들에게 말하기에 앞서 정부와 당내에서 논의를 거치는 게 순서이다.

또한 정상회담이라는 '비약'에 앞서 안팎의 환경 조성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상회담 문제를 놓고 정부와 여당이 진지한 논의를 한 적도 없고, 경색된 남북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정부와 여당의 진지한 노력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든, 대북특사 파견도 마찬가지이다. 정작 노무현 정부는 '현 시점'에서 대북특사를 파견할 의사가 없다고 말하는데, 열린우리당이 본인들의 의사도 제대로 묻지 않고 북한에 특사로 다녀와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는 본말이 전도된 접근이다.

오죽했으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현직의 대통령이 중요하다"며 정부와 여당에게 일침을 놓았겠는가? 정부와 여당이 제 할 일을 열심히 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부담을 자신에게 지우는 듯한 태도에 실망을 토로한 것이 아니겠는가?

당정 협의부터 거쳐야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의 혼선이 정작 남북정상회담 추진 가능성을 저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정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고 마치 무슨 일이 진행되는 것처럼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정부는 서둘러 이를 부인하는 행태가 계속 반복되면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정부가 대북 특사파견이나 남북정상회담 추진 계획이 없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가까운 미래에 이들을 추진하기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계속 부인한 상황에서 이들을 추진할 경우, "국민들을 속이고 북한과 뒷거래를 하고 있었다"는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의 정치 공세가 거세질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예고하듯 <동아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정상회담과 관련된 정부와 여당의 행태를 비난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남북정상회담의 유용성(有用性)을 부인하자는 게 아니다"면서,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비밀리에 준비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상회담이 추진될 경우 보수진영의 반발을 예고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 문제와 관련해서는 수 차례의 당정 협의를 가지면서 '찰떡궁합'을 과시(!)했던 정부와 여당이 민족의 장래에 대단히 중요한 방책이라고 할 수 있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정작 자충수를 두고 있는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한미공조'에 올인하다시피 하면서 남북정상회담에 필요한 기본적인 환경 조성에도 소홀해왔다. 남북정상회담을 주창해온 열린우리당은 정작 정부와 제대로 된 협의조차도 거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의 이와 같은 엇갈린 행보가 정작 정상회담의 성사를 어렵게 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욱식/ 2004년 11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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