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 제2장 적색사랑(6)
18회> 제2장 적색사랑(6)
  • 정호영
  • 승인 2004.12.03 1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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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 출근하기 전 샤워를 했다. 거울 속에 비추어진 물기가 방울방울 고여 있는 내 몸은 꽤 아름다워 보였다. 아줌마의 몸매치고는 훌륭하다고 생각됐다. 
비록 결혼 전 한참 때의 몸무게인 48kg보다는 몇 키로 더 몸이 불었지만 여성으로서 결코 작은 편이 아닌 165cm의 키에 이 정도면 날씬한 편이라고 스스로에게 찬사를 보냈다.
처녀시절 난 주위로부터 미인이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대학교 캠퍼스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사귀는 중에도 처음 보는 남자들의 플로포즈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때는 미인이라는 소릴 듣는 것조차가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그렇게 난 한남자만을 만나 결혼을 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되었다. 물론 결혼을 해서도 가끔씩  미인 소릴 들은 적도 있지만 그래봤자 아줌마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거울 앞의 난 또 달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알몸의 내 모습에서 나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이제 비로소 내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었다. 잃었던 내 모습을 되찾으며 어느덧 자신감도 생겼다.
그것은 분명 결혼 후 처음으로 생겨난 변화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남편이 아닌 또 다른 남자,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미지의 한 사람에 의해 일어났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그는 분명 바람 같은 존재였다. 실체가 없는, 그래서 어느 날 아무 일도 없듯이 사라질 수 있는 신기루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내게 뜨거운 감정을 불어 넣어 주었다. 나는 그에 의해 다시 태어난 셈이었다. 때문에 그런 그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가 갑자기 사라지기 전에 실체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를 만나려는 것이라고 내 자신을 합리화했다. 
그를 만나기로 한 약속일이 점점 다가오자 내 가슴은 매일 매일 숨쉬기조차 벅찬 듯 방망이질을 했다. 사춘기 시절로 다시 되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학원동료인 김미정 선생이 꿰뚫어 보는 것 같아 여간 불안하지가 않았다.
그를 만나기 이틀 전, 학원 창구에 앉아있는 날 김 선생이 툭 어깨를 쳤다.
“선생님!”
“넷?”
“몇 번을 불렀는데도 대답이 없으시네요. 무슨 일이 있나요?”
“아, 아니요. 절 부르셨나요? 죄송해요. 듣지를 못했어요. 그리고 저 아무 일도 없어요.”
난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다행히 학원에는 나와 김 선생밖에 없었지만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음. 이 선생님 요즘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제가요? 어떻게요?”
“요즘 많이 예뻐지셨어요. 그리고 또…” 
“넷, 또 뭐가 있나요?”
그녀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희미한 미소를 흘렸다.
“선생님, 지금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맞죠?”
“아, 아니에요. 제가 왜.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거죠”
“틀림없어요. 여자의 직감은 속이지를 못해요. 선생님 얼굴에 써있는데요. 뭘.”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더 이상 변명하지 못했다. 그녀는 확신을 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불륜의 관계는 가능하면 초기에 잘 정리해야 해요. 그건 제가 경험을 해봐서 잘 알아요. 아셨죠?”
그녀는 내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일방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돌아섰다. 난 멍한 심정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봐야만 했다.
마음이 복잡했다. 김 선생의 말이 하루 종일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무슨 뜻일까? 그녀가 내 속 감정을 정말 알고 있는 지 궁금했다. 마음 같아선 그녀에게 솔직히 내 상황을 설명하고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퇴근 무렵, 그녀가 또 다시 내게 다가와 은밀한 목소리로 지나치듯 한마디를 던졌다.
“원장선생님도 아시나요?”
“넷?”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 무슨 뜻으로 이야기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쩌면 그녀는 나를 오해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죠? 원장선생님 바람둥이라는 거.”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잘못 아셨어요, 김 선생님.”
나는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괜한 걱정을 한 셈이었다. 그녀는 나의 말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해프닝이었다. 그렇지만 그를 향한 나의 속 감정이 주위에 얼마든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다. 문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필요한 오해를 사서 좋을 일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향한 내 감정은 점점 깊어만 갔다.  녹색사랑, 그와의 실제 만남은 이제 하루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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