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 仁悟日記抄(8)
9호> 仁悟日記抄(8)
  • 인오
  • 승인 2004.12.03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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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27일(월)

  마음이 바쁘다.
  신정훈 선생을 만났는데도 단 몇 분을 차분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듯 분주하기 만하다. 괜히 아이와 집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밀린 풍경소리 편집을 위해 학교에 오니 3개교 교사 합동수련회를 위한 청소를 한단다. 피 바가지를 쓴 기분이다. 울며겨자먹기로 청소를 하며 휘둘려 살고 있는 나를 본다.
  선생님 편지에서 위산영우潙山靈祐스님의 말씀이 간절해 되새김질 해본다.

  이제 겨우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자가 벌써부터 대비구大比丘로 행세함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그대는 배운 것을 실천에 옮기는 일이 거의 없소. 제법 거룩하게 행동하지만, 절에 처음 들어오던 때에 견주어 별로 나아진 구석이 없는 게 그대요. 그대의 습기習氣가 그대를 여전히 세속의 길로 끌어 당기고 있소. 도반道伴 하나가 그대에게 와서 도움을 받으려 할 때, 그는 마치 담벼락 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뿐이오. 그를 어떻게 도와야 할는지 그대는 도무지 모르고 있소. 그러면서도 그대보다 나이 어린 수도승들이 그대 말을 듣지 않으면 선배를 존경하지 않는다느니 하면서 그들을 책망까지 하는구려.
  깊게 보시오. 한 때 그대가 되고 싶어했던 그 아름다운 수도승의 모습은 어디에 있소?
  부지런히 수련하되 스스로 뽐내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그대 자신을 온전히 명상meditation에 내어 맡기시오. 거죽을 넘어 그대 마음을 깊고 놀라운 실재reality에 조화시키시오. 지혜로운 노인들을 가까이 하시오. 스승과 함께 법(다르마)을 얘기하시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눈여겨 살피고 일상생활에서 진리를 깨닫도록 하시오.
  시간은 값진 것이오. 그대에게 주어진 것들을 잘못 쓰지 마시오. 고마운 마음을 표시할 기회를 놓치지 마시오. 필요치 않은 재물을 모으지 마시오. 그대가 바르게 수행하지 않으면 한 평생 장애물과 싸워야 할 것이오. 그러나 자신을 얕잡아 보지도 마시오. 장부답게 수행정진修行精進하시오. 포기하지 마시오. 그대의 보리심을(菩提心, bodhichitta,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을 움켜 잡으시오. 그리고 그대의 운명을 다른 누구에게도 맡기지 마시오. 마음을 고요히하고, 그릇된 인식認識을 멈추고, 집중하되 감각의 대상을 좇아 달려가지 마시오. 그대 마음이 바라보아야 할 유일하고 참된 대상은 궁극窮極의 여여如如 또는 열반nirvana일 뿐이오.
  이 글을 읽고 또 읽으시오. 날마다 그것들을 마음에 되새기시오. 습기習氣에 끌려다니지 마시오. 습기에 끌려다니면 결국 재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철수형이 달력을 보내 왔다. 붙이고 싸매어 보내주신 손길, 고맙고 고맙다. 동료교사들이 구경을 하자며 펼치는데 우쭐한 마음이 일어 꽤 오랜 시간 머물다 간다.     

     1월 3일(월)

  정진모임 첫 날.
  “눈을 떠 온 누리에 평화가 깃든 모습을 보게 하소서” 기도하며 이번이 정진모임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시작하다. 한 해 동안 정진했던 순간들을 밤늦도록 이야기하며 순구의 중장비기사가 되는 작은 소망, 미나의 아이 갖고 싶은 꿈들을 들을 땐 가슴 뭉클해지다. 기도해야지.

     1월 5일(수)

  정진 셋째 날.
  틱 나트 한 스님의 글을 함께 읽은 후, 선생님께서 “최선을 다 해 살게 하소서” 간절히 기도하시며 우신다. 장일순 선생님 말씀을 하시면서도 애써 눈물을 감추신다. 왜, 자꾸 우실까.

     1월 6일(목)

  ‘修行은 산행하는 것과 같다. 앞 선 사람, 뒤에 오는 사람, 정상에 있는 사람, 무엇이 다른가? 지금 산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즐거운 일 아닌가? 그래, 정상에 오르지 못하면 어떠리. 꼭 정상에 올라야 무슨 맛을 아는가. 시방 正念으로 산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정념으로 깊이 바라보는 것이 모든 것이다’라는 느낌이 들며 참 평안해진다.
  선생님의 죽음을 연습할 때 愚眞이의 죽음이 떠오르다. 광주에도 목사하나 만들라고 그러시나봐 하셨던 선생님의 말씀이 새롭게 살아 나를 덮친다.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십시오. 할 수 있는대로 따뜻하게 대하며 사십시오.”

     1월 7일(금)

  정진 마지막 날.
  말씀을 앞에 놓고 묵상, 멋있는 깡패(?)의 모습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이제부터 나의 목숨은 내 것이 아니다. 오직 그 분의 말씀에 죽고 그 분의 말씀에 산다.
 
  1) 가까운 사람(아내·가족)부터 사랑하고
  2) 나누고
  3) 그 분 말씀에 오로지 순종하는 사람 - 웃음, 수행에 최선을 다하라.
 
  사모님께서 손을 꼬옥 잡으시며 고맙고 감사하고 그리고 사랑해요 하신다. 전일이와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   

     1월 9일(일)

  교직원 수련회를 마치고 모처럼 기분이 좋다. 예전처럼 이러쿵저러쿵하며 마음 상함이 없어 좋다. 분별지分別智의 경계가 누그러져서일까, 올해는 신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해야지 다짐한다.
 
    1월 13일(목)

  <마법사의 길>이 나왔다. 군데군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지막 편집과정을 마무리하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감사해야지, 얼마나 어렵게 어렵게 나온 책인가.
  老子 첫 모임, 오늘은 ‘자리’라는 말씀이 귀에 쏙 들어온다.

  ‘보는 자리’가 중요하거든. 대립물對立物의 자기동일自己同一, 모순통일矛盾統一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들여다 보라는거 아닌가? 그러니까 뭐냐하면 언제나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다가도 그 ‘자리’로 돌아가라는 거야. 부처님의 자리로 돌아가, 돌아가서 행하고, 사물을 보되 그 자리에 비추어서 보자는 그런 말씀이지. 그래서 그이는 가는 곳마다 제자리요 행하는 것마다 하느님이 행하시는 것이라, 행동거지가 그 ‘자리’로부터 분리되지를 않지.
  색色이 공空이고 공空이 색色임을 보는 불안佛眼의 세계에서는,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의 차별이 없어지니까 주主와 객客이 따로 없는 그런 세계(모두 같은 것인데 일컬어 신비[同謂之玄])라는 말씀이야. 깨달은 사람의 눈에는 일체 중생이 곧 나요 내가 곧 일체 중생이라, 말하자면 대자대비大慈大悲함이 모든 것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어야 하는 거지. 

     1월 15일(토)

  자동차 검사장에서 하늘같은 사람을 만나다. 검사도중 문제되는 차량을 직접 수리하여 검사를 하는 검사원. 당연히 해야 되는 일처럼 자연스럽게, 추위에 아랑곳없이 일을 한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내내 나는 행복했다. 지금도 그이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1월 17일(월)
  
늘어지게 뒹굴며 지내는 하루, 아내는 결혼 기념일이라며 땡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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