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6동 ‘王회장님’ 황옥순 씨
광명6동 ‘王회장님’ 황옥순 씨
  • 이재길기자
  • 승인 2005.03.02 12:02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범한 가정 이력

세상이 날로 험해지고 인정이 메말라 간다고 하지만 좋은 사람도 많다. 황옥순(55세) 씨도 참 좋은 사람이다. 인상부터 후덕하고, 인자해 보인다. 광명사람으로 35년을 살았고, 결혼도 광명에서 했다. 
파주가 고향인 옥순 씨는 충청도 남자인 남편을 중매로 만나 1973년에 결혼 해 2녀 1남을 낳았다. 자녀들은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잘 자라주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고 한다. 
큰 딸은 결혼 해 안양에서 산다.  엄마를 닮아서인지 봉사를 통해 도지사(道知事)상도 받고 시장(市長)상도 받았다고 한다. 둘째 딸은 미국에 유학 가 있다. 아들은 군대 다녀온 후 대학 4학년으로 복학했다. 남편은 대기업에 다니다가 작년에 정년퇴임 해 현재 통장을 맡고 있으며, 산불 감시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내 몸이 아프지만

황옥순 씨는 38세부터 심장협심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수술을 마음먹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은 최후 수단이라면서 약을 처방해 주시곤 합니다. 그 약을 수십 년 간 복용해오고 있습니다.” 
사람은 내 몸이 아프면 만사가 귀찮고 힘든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몸으로 남을 위해 봉사할 수 있을까? 
“저는 나누고 베푸는 좋은 일을 해야 편합니다. 봉사를 하면 몸도 덜 아프고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마치 신이 인간을 부르는 방편으로 삼는다는 무병(巫病), 신병(神病) 같다.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한다는 내림굿이 봉사로 대체된 듯한 느낌이 든다. 팽이를 세우려면 계속해서 내쳐야 하듯, 옥순 씨에겐 봉사야 말로 삶의 원동력이자 사명이다.

광명 6동 왕회장
 
광명6동에 자리 한지 30년. 부녀회와 인연은 1985년에 맺었다. 
“집이 동사무소와 가까이 있어서 당시 부녀회장님이 부녀회 활동을 권장하시는 거예요. 망설이자 제 딸이 적극적으로 밀더군요. 그래서 86년에 가입해서 활동하게 됐는데 20년 가까이 할지 몰랐지요.” 
시작하면 불도저가 되는 성격상 열심히 하다 보니 몇 년 후 총무가 되고, 이후 회장이 되었다. 1997년엔 뜻하지 않게 ‘시민봉사 대상’을 수상하였다. 그리고 사임하려 했으나 회원들의 강청으로 지난 2004년에야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이제 고문이지만 부녀회의 모든 사람들이 ‘왕회장’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봉사의 정점은 노인 섬기기

옥순 씨가 활동을 시작한 당시 부녀회는 주로 폐품 수집, 꽃길 가꾸기, 벽보 제거하기 등, 노동력이 필요한 일을 했다. 당시엔 부녀회에 정부지원이 없어서 부녀회원들이 개인적으로 재원을 감당했다고 한다. 
“저는 유지들의 찬조 받는 것을 너무 싫어했습니다. 제가 부녀회장으로 있는 동안 찬조를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익 사업을 활발히 했어요. 떡, 미역, 액젖 등을 시장가로 팔아 재원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마련한 수익금은 모두 더 낮은 곳으로 흘러갔다. 
“환경미화원들께 매달 식사대접을 하기 시작했어요. 후에 자체 식당이 생겨서 고민하다가 2-3개월에 돼지 한 마리를 잡아 대접해드렸는데, 현재까지 10년째 해오고 있습니다.”

마을 독거노인들은 부녀회원 20명이 1인1명을 돕는 방식으로 봉사해 왔다고 한다. 
“고추장, 된장, 김치 등을 담아드리고 집안 청소 같은 허드렛일을 해드렸는데 지금은 부녀회원 20명이 노인 30분을 돌봐 드리고 있습니다.” 
부녀회는 장애우들을 돕기도 하지만 ‘왕회장’에겐 노인들을 위한 봉사가 각별하다. 시부모가 3년 전 별세하기 전까지 봉양했고, 독거노인 돌보기 일환으로 매년 100집을 선정해 김장을 해주고 있다. 
‘왕회장’은 “제가 새마을 시장에 소유하고 있는 식당의 수익금을 노인 분들 점심식사 제공하는데 사용하려고 하는데요. 뜻을 같이하는 분을 이미 고용 하였어요”하고 말하는 어조에 기대감이 넘친다. 이뿐만이 아니다. “저희 가정이 옥길동에 주말농장을 000평 경작하고 있습니다. 작년엔 고구마를 심어 수확했어요. 대부분을 노인정에 공급해 드리고, 6동에서 매년 실시하는 노인관광 때 고구마를 쪄서 나누어 대접했어요. 너무 좋아하시더라구요.” 
관광도 하고 목욕도 시켜주는 이 행사는 매년 호응이 커져서 작년엔 관광버스 6대를 동원했다고 한다. 고구마를 심고, 캐는 일도 쉽지 않지만 그 많은 양을 찌는 것은 여간 수고로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그런데 정작 옥순 씨 가정은 고구마를 사다 먹는다고 한다.

집 임대를 통한 봉사와 청소년 선도에서 얻은 희열

자택은 다가구 주택 2층집인데, 1층은 세 집에 임대했다. 신00는 외할머니와 동거 중이던 7년 전, 중학생 재학 시절에 모 방송국에 소개되었다. ‘왕회장’의 노력 덕분이다. 그 후 각지에서 보내준 성금이 전세금이 되었다. 신00는 올 2월에 고교를 졸업 하고 취업 준비 중이라고 한다. 
신00 옆집엔 경기도가 인정한 시각장애인이 10년째 살고 있다. 시청에서 전세금을 대주지만 세금과 청소는 부녀회에서 도맡아 해 준다고 한다. 이00 씨는 3년 전 위암 수술을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돌보는 이 없어 왕회장이 거의 돌보는 형편이라고 한다. 같이 살다보니 ‘왕회장’의 봉사가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도움이 필요한 대상은 주로 동사무소 사회복지사의 협조를 받지만 ‘왕회장’은 대부분 발로 뛰어 개발했다고 한다. 
그 중에 김00의 경우는 청소년 선도 사례로 지금도 가슴 뿌듯하다고 한다. 
“00가 중학교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그 착하던 아이가 00고교 진학 후 가출했어요. 엄마가 바빠서 제가 엄마를 대행 해 경찰차 타고 사방을 뒤졌어요. 15일 만에 자퇴 처리되었는데, 20일 뒤에 공장에서 00를 찾아냈어요. 제가 학교에서 어머니회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되어 알고 지내던 선생님께서 도와 00 소재 공고에 원서를 접수했어요. 그것도 접수마감 마지막 날에 선생님이 아버지 역할 하시고, 제가 엄마 역을 해서 말이예요. 1년이 늦다보니 00가 매우 망설이고 주저하더니 결단하더라구요. 공부는 잘했어요. 가장 센 기계과를 입학 해 졸업한 뒤 00대학을 졸업 했고, 서울00대학에 편입학 해 올해 졸업했어요. 이제 취직 시켜주는 일이 꿈이지요.” 
 
‘왕회장’의 임기는 진행 중

20년 전 폐지수거, 꽃길 가꾸기 등 노동력을 통한 봉사가 주류였던 부녀회 봉사도 세월이 흘러 변했다. 현재는 체육대회, 보름 행사, 노인관광 등을 준비하거나 실행하는 일이 주류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사회 전반적으로 봉사의 수준이나 확대가 진행 되면서 봉사 자체가 훨씬 편해졌다. 그렇지만 ‘왕회장’의 봉사는 끝나지 않았다. 
‘왕회장’은 현재, 광명6동 동정 자문위원, 새마을지회가 운영하는 새마을 문고 부회장, 새마을 운영위원회, 부녀회 고문, 청소년선도위원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부녀회 동회장을 지낸 동료들 10명과 정부 지원이 없는 새로운 봉사활동을 하자고 의견을 모은 상태라고 한다. 
이토록 다양한 봉사를 할 수 있었던 배경의 1등 공신은 남편이다. 성실하게 가정을 이끌어준 남편에게 늘 감사한다고 한다. 
“남편의 이해와 수입이 없었다면 제가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일은 어려웠을 거예요. 남편도 정년퇴임한 후 늘 ‘봉사할 곳 없나’ 하며 관심이 지대하지요.” 
부부에게 삶의 철학이 일치하는 것은 행복이다. 금슬이 너무 좋아 보인다.
 
인터뷰 부언

기자가 ‘왕회장’ 집에 들어섰을 때, 개 두 마리가 반겼다. 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기자가 진돗개냐고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똥갠데요. 이 추운 날씨에 살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방에서 같이 살아요.” 
남다른 측은지심이다. ‘왕회장’의 자비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헤아리시리라 여긴다. 기자가 지방에 급히 갈 일이 아니었다면 감자 캘 때처럼 줄줄이 엮어 나오는 봉사의 이력이 더 진솔하게 드러났을 텐데, 아직도 묻혀있는 감자가 있음을 알고도 땅을 덮는 농부의 심정처럼 아쉬움이 크다.

 2005. 2, 28. 황옥순 씨 자택에서 

2005. 3. 2  /  이재길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오버란 2005-03-11 09:42:33
넘, 아름다운 삶이네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이가 누구이든지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면 달려가시네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진한 감동을 줍니다.. **

동백 2005-03-08 08:19:33
잘 보았습니다.앞으로도 열심히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