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증진법' 상정의 의미와 파장
'민주주의 증진법' 상정의 의미와 파장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03.07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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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북한 6자회담 복귀 동기 약해질 듯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싸고 북한과 미국이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미국 의회가 '민주주의 증진법안'(Advance Democracy Act of 2005)을 상정해 그 파장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법안에서는 북한 등 특정국가를 적시하지 않았지만,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최악의 인권 탄압 국가' 등으로 규정해왔다는 점에서 북한 역시 직간접적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하듯, 민주주의 증진법 상정을 주도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 의원은 3일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우리 노력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또한 이 법안의 실무작업을 총괄한 것으로 알려진 마이클 호로위츠 허드슨연구소 연구원은 4일자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법안을 포함한 일련의 흐름으로 김정일 정권의 종말이 한층 더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북한 강력히 반발할 듯

북한은 이 법안이 미국의 '대북압살정책'의 일환으로 간주하고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이 법안이 상정되기 전부터 북한은 '폭정의 종식', '폭정의 전초기지',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 등으로 표현되는 부시 행정부의 2기 대외정책의 기조에 강력히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이는 6자회담의 재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월 10일 외무성 성명 등을 통해 미국이 '적대정책 철회' 의사를 밝히는 것을 6자회담 복귀에 조건으로 간주해왔는데, 미국이 이에 대해 성의를 보이기는커녕 또 다시 북한 체제를 부정하고 종식시키려는 의도를 품은 법안을 상정했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북한의 대미 인식에 미칠 영향은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분석할 수 있다. 하나는 미국의 대북정책이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에 대한 북한의 절망적인 판단이 커질 것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 대북 제재 및 봉쇄 해제와 관계정상화의 막대기(bar)를 높임으로써 북한으로서는 6자회담에 복귀해봐야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강하게 가질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이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핵 협상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법안에서는 미국 대통령이 비민주국가로 지정된 국가에 대해 중대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미국 관할권 내에 있는 자산동결 ▲국제 금융 기구에서 대출 신용 보증을 받지 못하도록 미국 대표가 반대표 행사 ▲해외민간투자기구(OPIC)와 교역개발처(TDA)의 보증, 보험, 신용 연장 불허 ▲미국 정부의 상품과 서비스의 구매 및 계약 체결 금지 ▲미국 기업의 상품과 기술 수출 허가 불허 ▲미국 공무원과 그 친척의 방문 금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는 비민주국가들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조항이 핵 협상에 미칠 영향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미국의 경제제재 및 테러지원국 해제가 절실한 상황이고, 또 이를 핵 포기의 상응조치로 강력하게 요구해왔다. 그런데 북한이 핵을 포기한 이후에도, 미국이 북한인권법과 민주주의 증진법을 근거로 북한의 인권과 정치체제를 문제삼으면서 경제제재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응할 가능성이 더욱 줄어들게 된 것이다.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이유

2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의 기조를 보면 1기 때와 사뭇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의 축' 발언과 선제공격 전략이 상징하듯, 1기 부시 행정부는 이른바 '깡패국가'들의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를 '테러와의 전쟁'과 함께 대외정책의 기조로 내세웠다. 부시가 북한, 이란, 이라크를 특정해 '악의 축'으로 규정할 때에도 가장 큰 근거로 내세운 것은 이들 국가들이 대량살상무기 보유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1기 때의 대외정책은 국내외적으로 강한 비판과 저항을 불러왔다. 이라크의 경우에는 대량살상무기 정보를 왜곡하면서까지 침공을 강행했고, 반면에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는 오히려 악화되어왔기 때문이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테러 위협을 확대재생산시켜왔다는 것 역시 부시 행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것이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부시 행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 확산을 2기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은 것은 1기 때의 대외정책 실패를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으나 폭정을 종식시키고 민주주의를 이식했다는 점을 강조해 침공과 점령을 정당화하고, 북한과 이란의 인권과 정치체제를 문제삼아 이들 국가와의 비타협주의를 정당화시키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자국 패권주의 강화와 확산의 무기로 삼게 되면, 북한, 이란 등 대상국들의 강력한 반발과 맞물려 국제 정세의 앞날은 한층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북한과 이란이 미국의 군사적·비군사적 위협에 맞서 결사항전을 다지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정욱식/2005년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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