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보건소 이미라 씨
광명보건소 이미라 씨
  • 이재길기자
  • 승인 2005.03.18 10:24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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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꿈꾼다면 결혼식장에 자주 가라

드라마의 주인공은 언제나 텔레비전 화면 중심에 있다. 남과 여가 주인공이라면 한쪽은 화면 바깥에 숨어 있다. 숨어 있던 짝이 화면 중심에 동시에 서는 것이 드라마의 절정이다. 미라 씨(44세)는 녹차로 유명한 보성을 떠나 광주로 유학 간다. 거기서 여고를 졸업하고, 간호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백의의 천사가 된다. 첫 발령지는 멀리 전라남도 해남 보건소였다. 보람차게 근무하고 있을 때, 동창생이 청첩장을 보내와 식장에 갔다. 사랑은 운명처럼 다가온다. 대학에 다니며 가톨릭 청년운동을 열심히 하던 중학교 동창생을 그곳에서 만난다. 호감이 가던 차에 그 친구도 책과 신문 등을 보내며 관심을 드러냈다. 공감이 형성되고. 돈벌이 수완이 있었던가. 아님 노둣돌을 놓으려함인가. 그 친구는 대학 재학 시절에 벌써 카페를 동업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둘은 정(情)을 모락모락 피워내더니 급기야 카메라 앵글에 나란히 잡힌다.

화면 중심에 드러난 또하나의 얼굴

둘이 하나가 되어 보금자리를 튼 곳은 해남. 남편이 짐을 꾸렸다. 취직한 것이 서울이어서. 미라 씨가 뒤따르니 부부의 둥지는 광명으로 옮겨진다. 1992년의 일이다. 들뢰즈는 유목민이란 용어를 썼다. 남편은 현대 도시유목민의 전형이다. 서울생활도 잠시. 중국으로 넘나들었다. 전자회사 생활 10년 쯤 되던 때, 아예 독립회사를 차리더니 때론 2,3개월이 지나도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지처! 아니다. 친구가 부부가 되는 것은 잘 싸우고도 잘산다는 것이다. 미라 씨에게 남편은 가장 간곡했던 기도의 응답선물이다. 어찌 그를 믿지 않으랴. 가슴으로 만나는 사람이자, 사랑이다. 미라 씨와 사랑하기 위해, 살기 위해, 잘 살기 위해 개종한 사람이다. 교회 생활도 잘하고, 사업도 잘한다. 이로써 가장 행복한 풍만이 가정에 넘친다. 거기 끼어든 여자. 중 3이다. 엉뚱한 생각 마시라. 앙드레김을 넘어서는 의상디자이너가 되는 꿈을 지닌 딸이다. 광명시 Rock 페스티벌 땐 학교 대표로 나가 전자기타연주를 할 만큼 음악 재능도 뛰어나다. 
“너무 잘 자라 주어 고마울 뿐이예요. 키워주신 시어머니의 정성은 말로 다 표현 못하구요.”

광명시가 내세울만한 선진 ‘보건소’

 미라 씨가 광명에 왔을 때, 보건소는 지금의 평생학습원 자리에 있었다. 직원 30여 명과 간호사 3명의 단촐한 식구는 세월의 고개를 넘어 어느덧 직원 70명에 간호사 13명. 그만큼 사회의 보건의료 사업 비중이 커졌다. 국가 의료정책도 바뀌었다. 결핵, 전염병, 가족계획, 모자보건 같은 주 정책이 방문 간호, 정신보건, 건강증진 같은 사업으로 전환되었다. 목표량을 상명하달 하던 사업방식도, 자치단체 실정에 맞는 지역보건 사업을 계획하여 하위상달하면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보건소는 민간 병원이 돈이 안 되어 꺼리는 국가 보건정책을 주로 서비스한다. 정신보건 사업으로 정신치료를 요하는 이들을 가정과 병원을 연계하여 사회복지 재활 치료를 주 2회 진행한다. 사회적응을 위해 대인관계나 미술, 음악 치료 같은 심리 치료를 병행하며 환우들끼리 마음을 나누고 정보를 공유케 하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사후 약방문 식의 의료체계도 예방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건강 증진 사업은 예방의학이다. 비만, 절주, 금연 운동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운동기구도 대여한다. 특히나 노인요양센터는 2001년에 전국최초로 개원했다.
“광명시 보건소는 전국단위로 보면 선진보건소에 해당해요. 특히나 노인요양센터는 자랑할 만한 광명의 사업입니다.” 
 
찾아가는 의료서비스의 선봉

요즈음 한의사협회와 의사협회 간 밥그릇 싸움이 치열하다. 보건소는 예외다. 양의와 한의가 결합한 곳이 보건소다. 이 점은 보건소의 최대 장점처럼 보인다. 보건소가 잘하는 일이 또 있다. 가난한 사람은 젊어선 자식 교육시킬 때 서럽고, 늙어서는 몸 아파 서럽다. 이 중 늙어서 몸 아프면 더 고통스러울 터. 의사나 한의사나 서로 밥그릇 싸움하지만 찾아와 진료하고 치료해 주는 일이 어디 찾기 쉬운가. 보건소는 좀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하지 않나.
미라 씨의 담당 업무는 방문 간호사업이다. 방문진료팀은 2000년에 신설되었다. 저소득층과 차상위 계층 가정의 고혈압, 당뇨, 암으로 고통당하는 환우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의료서비스를 실행한다. 보건소의 의사 1인과 간호사 1인이 주 5일 가정 방문한다. 찾아가서 치료하고 투약하며, 생활 전반을 관리하고 필요할 경우 자원봉사자에게 의뢰한다. 현재 방문 대상자는 약 1500명이다.
 “이분들을 집중, 정기, 추후, 자가 관리자로 구분해 계약직 간호사 5명, 정규직 2명, 의사 1명이 관리하고 있어요.”
이 인원이 1500명을 관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같다. 그러나 광명시 전체 인구에 비하면 관리하는 인원이 많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보건소와 사회복지의 이원화가 일원화되어야 해요. 보건소가 본청에 있는 게 아니라서 소외되는 느낌이 있어요. 의료와 복지는 병행되어야 하는데 말이예요.” 
보건소는 한직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미라 씨는 공무원 재직 19년째이다. 주변에서 능력있는 지역사회보건 사업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좋은 정책도 손발이 맞아야 하는 법이다. 광명시가 기왕에 잘 해온 대민의료 서비스 부분을 행정적으로도 잘 뒷받침 해 효율적인 의료서비스가 실행되도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전문적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지역보건행정 분야에 등용하여 지역사회 건강사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선진보건소라는 명예를 지켜갔으면 좋겠다. 

가장 보람 있었던 일

“1997년으로 기억합니다. 00 교회 교인이 전화를 했어요. 19살 소년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인 채로 있다는 겁니다. 가보니 80세 할머니 혼자서 손자를 간호하다 지쳐있었습니다. 가스배달을 하다가 뺑소니차에 치인 겁니다. 하루에 한번은 방문해 정성으로 간호하다가 전문적인 재활체료를 위해서 어렵게 손을 써 국립재활원에 보냈습니다. 처음엔 움직이기도 어려웠던 상태에서 바퀴달린 의자를 타고 다닐 정도로 좋아졌습니다. 그 후 할머니께서 별세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가평보건소에 연계 해 00를 ‘가평 꽃동네’에 보냈습니다. 지금은 꽃동네에서 가장 재미있는 청년으로 소문이 날 만큼 재활치료에 성공하여 밝게 살고 있어요.”

화면에 나오지 않는 것이 세상사다

화면만 보면 안 된다. 거긴 주류들의 잔치판이다. 선한 이웃 대다수가 화면 바깥에 있다. 모 대기업 회장단이 영등포 쪽방에 가니까 언론은 앞 다투어 주객을 전도시켰다. 보건소가 주인이 아니다. 서비스 받아야할 시민이 화면 중심에 서야 한다. 미라 씨는 독실한 기독신자다. 
“신앙 안에서 예수님처럼 사랑을 실천하고 싶어요.” 
예수님은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미라 씨는 다니는 교회에서 영향을 받아 네팔에 사는 9세 소녀를 딸처럼 생각하고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선한 일은 꽃이 피어나는 화사함과 유사한 흐뭇한 마음의 향기를 풍긴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미라 씨와 보건소 섬김이들의 선행이 만발하여, 시민들 평안이 비례로 확산되어 가길 소망해 본다.

2005. 3. 18  / 이재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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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2005-03-28 10:19:04
그동안 주어진 자리에서 묵묵히 열심이 사는 모습이 아름다웠습니다. 언니 홧팅!!

이미라 2005-03-25 09:44:25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지역사회 보건행정을 하는 사람으로 여러가지 어려움이 없지는 않지만, 주어진 여건에 최선을 다하며 광명시민을 위하여 봉사하고자 합니다. 지역보건행정에 계속적인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오버란 2005-03-25 08:59:04
!!!!! 느낌표와 함께 진한 삶의 감동이 제게 밀려옵니다..
늘 변치않는 마음과 믿음으로 힘든이들의 빛이 되어 주셔여..^^

안수남 2005-03-24 21:21:41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참봉사를 하시는 분이라서인지 모습이 항상 편안하셨습니다. 내세우시지 않은 성품으로 이러한 지면 할애가 부담스러우셨겠지만 차이 없이 사랑을 실천하시는 보건소 가족들을 대표하여 소개한 글로 여기시고 보건소 가족 모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박상대 2005-03-23 14:04:52
늘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항상 기억 하겠습니다 미라님!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