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김정일 면담의 의미와 과제
정동영-김정일 면담의 의미와 과제
  • 정욱식대표
  • 승인 2005.06.22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건배를 나누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사진-통일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전격 면담하면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6월 17일 전격적으로 이뤄진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미국의 성의 표시라는 조건을 달았지만 처음으로 7월중으로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고, 핵확산금지조약(NPT) 복귀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 수용 의사도 밝혔다.

이와 같은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는 '6월 위기설'을 대화 국면으로 전환시키는데 한층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북한의 이러한 태도 변화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친 뉴욕 북미 접촉 및 남북 차관급 회담이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이 대결적인 자세를 고조시키는 방향에서 유화적인 방향으로 대외전략을 수정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지금까지 핵문제와 관련해 남한을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김 위원장이 직접 정 장관과 장시간의 협의를 갖고 6자회담 참가 및 NPT 복귀 의사를 밝힌 것은 예상 밖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남북한이 핵문제 등 평화문제를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남북관계의 질적 발전은 물론이고 한국의 주도적인 역할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은 문제 해결의 중요한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만나게 되었다. 작년 11월 노무현 대통령의 'LA 발언'을 통해 비로소 자리를 잡기 시작한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병행 발전'의 기틀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기회'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부시 행정부를 설득해 실질적인 대북정책의 변화를 유도해야 할 과제가 커졌다는 것은 '도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6자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악재'를 예방·관리해야 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은 숙제이다.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화답?

정동영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 면담이 성사되어 김 위원장이 직접 핵 포기 의사를 밝히고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배경에 대해 6월 11일 한미정상회담에 대한 북한의 화답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부 역시 이러한 맥락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에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우선 한미정상회담이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거가 취약하다. 정상회담에서 평화적·외교적 해결 원칙을 재확인하고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비난 발언을 자제한 것은 '일보 전진'라고 할 수 있지만, 부시 행정부가 북핵 해법과 관련해 3차 회담 때의 제안을 강조하면서 더 이상의 양보가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오히려 '일보 후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평양 면담의 성사 배경에 대해 겸손해질 필요가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자칫 오판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과가 평양 면담으로 이어졌다는 식의 인식은 정부의 북핵 외교를 제약할 수 있다.

핵문제의 평화적인 해결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북한과 미국이 얼마만큼의 유연성을 가지고 서로의 우려와 요구 사항을 동시적으로 이행할 수 있느냐에 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실질적인 해법을 내놓는데 실패한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으로 간주하면서 이러한 틀에 얽매일 경우 6자회담의 재개 여부도 불투명해지고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또 다시 북미간의 말싸움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보다 차가운 머리를 가지고 이번 평양 면담을 분석해야 할 까닭이다.

부시 행정부의 '의도적인 신중함'

주목할 점은 부시 행정부가 정동영-김정일의 평양 면담에 대해 폄하하는 듯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 면담이후 부시 행정부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달라"며, 미국은 북한을 6자회담에 복귀시키기 위해 양보를 할 의사가 없고, 북한이 회담 일정을 밝혀야 한다며 자신의 코트로 넘어온 공을 받아치려고 하지 않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이처럼 '의도적인 신중함'을 보이는 이유는 북한을 고립·압박시키려는 노력이 이번 평양 면담을 통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특히 북한이 핵문제를 남한과 논의하는 것 자체를 꺼려왔던 것과는 달리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6자회담 복귀 및 NPT와 IAEA까지 언급하면서 핵사찰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을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북한이 2월 10일 핵보유 선언이후 핵 시위를 강화하면서 부시 행정부가 원했던 '5 대 1' 구조가 형성되는 듯 했지만, 이번 평양 면담은 거꾸로 부시 행정부가 압박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위기와 기회의 변증법

핵문제를 둘러싼 북미간의 갈등이 잘 보여주듯 위기는 기회를 잉태시키기 마련이다. 이는 거꾸로 모처럼 만들어진 기회를 잘 살리지 못하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위기와 기회의 변증법에 한반도가 놓여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번 기회를 잘 살려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및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본격 가동시키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과제가 요구된다.

첫째는 6자회담으로 가는 길목에서 터져 나올 수 있는 '미국발(發) 악재'를 예방하는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악재로는 부시 행정부 지도부에서 김정일 위원장 및 북한 체제를 비난하는 발언, 북한 인권 문제를 전면화시키면서 이를 또 하나의 의제로 삼으려는 움직임, 한반도 안팎에 군사력 증강 및 대규모의 군사 훈련 실시, 민주주의 증진법 제정 등이다. 정부는 이와 같은 조치들이 6자회담 재개 및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어렵게 하는 요소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면서 미국에게 자제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둘째는 어렵게 정상화된 남북관계를 잘 풀어 가는 것이다. 이번 평양 면담에서도 정동영 장관이 남북관계의 발전 필요성을 역설하고 이에 김정일 위원장이 화답한 것은 남북관계가 또 한번 질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김 위원장과 정 장관이 핵문제를 심도 깊게 상의한 것은 장관급 회담에서 핵문제를 비롯한 평화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노 정부는 이러한 기류를 잘 살려 가급적 빨리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노무현 정부가 북핵 해결의 핵심적인 카드로 삼고 있는 '중대한 제안'의 실현 조건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합의 기반을 튼튼히 하고, 중대한 제안의 실현을 가장 어렵게 하는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와 테러지원국 해제를 북한의 핵 포기 과정과 연계해 미국에게도 전략적 결단을 요구·관철시켜야 할 것이다. 

정욱식/2005년 6월 20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