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포럼> 주민소환제, 역할을 기대한다
다산포럼> 주민소환제, 역할을 기대한다
  • 선경식대표
  • 승인 2006.05.11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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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소환제가 드디어 우리 곁에 다가왔다. ‘봄처녀 제 오시듯’ 환한 웃음을 띠고 불쑥 나타났다. 참으로 가슴 설레도록 반갑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의 논평도 시원하다. “주민소환제 도입으로 지역주의 정당과 결탁해 사사로운 이익을 쫓던 지역 토호세력들이 주민의 비판 목소리에 긴장하는 시절이 왔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는 토양이 조성됐다.”

주민소환제는 ‘부정의 추억’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키스’가 될 것이다. 그러나 참외밭에서 신발끈을 고쳐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선(多選)의 꽃다발’이 될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 성숙되는 계기

지방권력에 대한 유권자들의 직접적인 감시, 견제, 통제의 길이 열렸다. 이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성숙으로 이어질 것이다. 또한 투명사회를 앞당기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은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게 됐다. 대단한 일이다.

지방자치시대임에도 풀뿌리 민주주의는 선거때만 작동했다. 나머지 기간은 선출 공직들의 손아귀에서 숨쉬기도 버거웠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국민(주민)이 일상적으로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함으로써 성장하고 발전한다. 바로 주민소환제를 비롯해 주민발안제, 주민투표제, 주민소송제 등이 일상적인 민주주의를 보장한다.

주민소환법안 통과는 민주노동당이 존재함으로써 가능했다. 진보정당의 역할이 돋보인 쾌거라 할만하다. 지난해 3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는 투명사회협약 체결을 통해 주민소환제 도입을 약속해놓고도 차일피일 미루어왔기 때문이다.

5·31지방선거 전에 법안이 통과된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칫하면 도입이 4년 뒤로 미뤄질 뻔했다. 이제 지방선거 출마자들을 첫 적용 대상으로 삼을 수 있게 됐다. 부정과 비리로 점철된 단체장과 의원들의 행태를 익히 보면서 발등을 찍고 싶었던 주민들에게는 정말 시원한 소식이다.

부정과 비리의 어지러운 통계를 한번 보자. 지방단체장의 경우 민선 1기에서는 23명이, 2기에서는 248명 중 58명이, 3기에서는 248명 중 74명이 유죄판결을 받았다. 지방의회 의원은 또 어떤가. 비리 혐의로 기소된 의원이 91년 이후 1기때 164명에서 4기때 293명으로 늘어나는 등 지금까지 약 800명을 기록하고 있다. 지방권력이 얼마나 썩었으며 민의를 배반하고 있는지 웅변해주는 수치이다.

주민소환제 두려운 후보자 출마포기해야

당선되더라도 주민소환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후보자들은 처음부터 출마를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액의 공천헌금을 통해 후보가 된다하더라도 그 원금을 회수할 일이 쉽지 않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본전에 이자를 붙여 뽑아낼 궁리를 하는 후보자라면 아예 발걸음을 돌려 그 돈으로 사업이나 장사를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주민소환제 도입에 신중론을 말하는 정치인과 정당이 있지만 이는 기득권자들의 자기방어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대립과 갈등이 더 조장될 것이라는 걱정은 기우(杞憂)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일방통행식 폐쇄형 지방정치가 쌍방향식 개방형 지방정치로 거듭날 것이다.

오남용에 대한 우려는 도둑 제발 저린 격이나 마찬가지다. 건전한 양식의 소유자로 정도를 걷는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라면 두려워하거나 거추장스러워 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청렴한 공직자에게는 재선, 3선의 가능성을 높여준다. 적당주의와 편의주의를 금과옥조로 삼는 사람들에게 거북살스러울 뿐이다. 그렇지만 주민소환제의 의도가 바로 이런 풍토를 뒤집어엎자는 데 있음에랴.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시행불가능한 공약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됐다. 인기 영합적인 공약도 마찬가지다. 당선후 공약 이행을 제대로 못할 경우 불신임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들어 전개되고 있는 매니페스토운동과 맞물려 실천 가능한 공약으로 정책 대결을 벌리는 선거풍토 조성에도 기여할 것이다. 공약(空約)이 될 줄 뻔히 알면서도 당선되고 보자는 심리에서 공약(公約)으로 내거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당선되고 나면 그만’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한 기관차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주민소환제다. 이제 남은 것은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으로도 이 제도가 확대되어야 한다.


· 글쓴이 / 선경식
· 한국정경연구소 대표
· 정치평론가
· 민주화운동공제회 상임이사(현)
· 고려대 언론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졸업
· 중앙일보 사회2부 차장, 월간중앙 부장
· 노동일보 편집국장 등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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