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리비아 모델'을 거부하나
누가 '리비아 모델'을 거부하나
  • 정욱식대표
  • 승인 2006.05.23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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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분석] 리비아 모델과 북한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한 지 2년 반이 지나서야, 미국이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고 관계정상화 조치를 취하기로 함으로써, 또 다시 '리비아 모델'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일반적으로 리비아 모델은 '선(先) 대량살상무기 포기, 후(後)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일컫는데, 2003년 12월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일각에서는 북한도 이를 따라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었다. 그 후 잠잠해졌던 이 모델은 미국 국무부가 5월 15일 리비아와의 외교관계 완전 복원을 발표하면서 다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관심의 초점은 이른바 '리비아 모델'에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문제에 미칠 영향이다. 이와 관련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부 장관은 "리비아는 북한과 이란 같은 나라에 중요한 모델"이라며, "2003년이 리비아 국민들에게 전환점이 됐던 것처럼 2006년은 북한과 이란 국민들에게도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호응하듯 반기문 외교부 장관 역시 17일 내외신 기자 브리핑에서 "리비아는 대량살상무기를 스스로 포기해 미국으로부터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받게 됐다"며, "정부는 북한이 핵 포기시 자신들에게 밝고 좋은 미래가 있다는 점을 인식해서 조속히 6자회담에 복귀해 북핵 문제가 빨리 해결되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리비아와 관계정상화를 하기로 한 데에는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이외에도 여러 가지 동기가 있었다.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가 전면에 내세운 '테러와의 전쟁'에 리비아의 협력이 필요했고, 에너지 전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리비아가 주요 산유국이라는 점도 고려되었다. 이처럼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와 '친구'가 되고자 하는 동기가 강했던 반면에, 북한에 대해서는 여전히 '적'으로 남겨두거나 한 걸음 더나가 정권교체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누가 리비아 모델을 거부해왔는가?

표면적으로 볼 때, 리비아 모델을 거부하는 쪽은 북한처럼 보이지만, 미국과 리비아의 협상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이 북한과 리비아를 대하는 태도가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부시 행정부는 리비아와의 '직접 협상'을 통해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와 관계정상화를 맞바꾸는 방식으로 협상을 한 반면에, 북한에 대해서는 '직접 협상'도 거부해왔고 핵포기 유인책을 확실히 제시하지도 않아 왔다.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정상화가 절실했던 리비아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전인 2003년 3월 초, 미국·영국과 비밀협상에 들어갔고, 미국으로부터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면 테러지원국 해제를 비롯한 관계정상화를 약속 받자 2003년 12월 19일 대량살상무기 포기를 선언하게 된 것이다.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 선언이 이라크 다음에 자신이 될 것이라는 두려움보다는 미국과의 직접 협상 및 미국의 확실한 인센티브 제공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두 번째로 미국과 리비아는 협상을 진행하면서 서로 합의한 사항들을 이행함으로써 상호간에 신뢰를 쌓아왔다. 1990년대 후반부터 관계 개선 접촉에 들어간 미국과 리비아는 가다피 정권이 팬암 103기 폭파 사건을 해결하는데 노력하고 미국이 유엔의 리비아 제재 해제에 동의하는 등 신뢰구축 조치를 밟아왔다. 리비아의 대량살상무기 포기와 미국의 관계정상화 결정은 이러한 약속 이행에 기초한 신뢰구축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반면에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 이행에 지지부진한 태도로 일관했고, 부시 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등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북한의 불신을 배가시켰다.

마지막으로 부시 행정부는 전임 정부의 리비아와의 협상 내용을 '계승'했지만, 북한과의 협상 내용은 완전히 무시했다.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 때 북미간에는, 미사일 문제 해결을 포함한 중요 현안에 대해 대체로 합의점에 도달하면서 관계 정상화 및 평화체제 구축 의사까지 담은 '공동코뮤니케'를 채택한 바 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 부시 행정부 출범 직후인 2001년 초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유망한 요소"가 있다며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할 의사를 표명했으나, 백악관은 파월 장관을 강력하게 질책하면서 대북포용정책을 철회하고 말았다.

부시 행정부가 이처럼 북한과 리비아를 차별적으로 대한 근본적인 요인은 북한과의 협상보다는 북한 위협을 빌미로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등 군사적 기득권을 강화하고, 적절한 시점에 북한을 제거하는 것을 선호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실질적으로 리비아 모델를 거부하고 있는 당사자는 부시 행정부라고 할 수 있다.

'테러지원국'이라는 족쇄

어쨌든 미국이 2005년 이라크에 이어 리비아를 테러지원국에서 해제시키기로 함으로써, 이제 미국이 지목한 테러지원국은 북한을 비롯해 이란, 쿠바, 수단, 그리고 시리아 등 5개국이 남게 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막바지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시키는 문제가 논의되기도 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이러한 유화적인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오히려 더욱 까다로운 조건을 추가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1987년 대한항공 여객기 폭파 이후 어떠한 테러 행위도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9.11 테러 이후에는 대량살상무기 확산 의혹을 테러지원국 재지정의 이유로 삼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위조지폐와 마약 등 이른바 '불법활동'과 일본인 납치 문제, 그리고 다른 국적의 외국인들의 납치 의혹도 그 근거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묶어둠으로써 나타나는 문제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양산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테러지원국은 경제제재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1980년대 후반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 북한에 대해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완화했지만, '테러지원국'으로 계속 지정함으로써 경제제재 완화의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없었다.

미국에 의해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면 크게 네 가지 조치가 취해지는데,  무기 관련 수출 및 판매 금지 이중용도 품목 수출 통제  경제지원 금지  금융 등에 대한 제한조치 부과 등이 그것들이다. 이는 반대로 미국이 대북 경제제재를 해제할 경우, 북한은 경제난 해소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금융기관의 차관 지원 금지 조치가 해제되는 것은 북한이 국제자금을 통해 경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이 트이는 것을 의미한다.

수출입은행법 등에 따른 원조 및 금융거래 금지 해제는 미국 기업인은 물론 국제사회의 대북 투자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무역거래 또한 활성화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는 북한 상품에 부과한 초고율 관세의 인하로 이어져, 북한의 대미 수출이 늘어날 수 있다. 아울러 미국의 수출통제품목이 대폭 완화되어 북한에 대한 설비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전략물자통제체제에 걸려 있는 남북경협에도 숨통이 트이게 된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 임기 내에 북한이 테러지원국에서 해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오히려 부시 행정부는 테러지원국 해제의 문턱을 높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에 대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및 금융제재와 선박제재 등 경제제재의 수위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의 대화 요구에는 '악의적인 무시'로, 제재 해제 요구에는 제재 강화로 일관하고 있는 부시 행정부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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