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새 쫓으러 간다.” 광명시농촌지도자연합회 최영길 회장
이사람> “새 쫓으러 간다.” 광명시농촌지도자연합회 최영길 회장
  • 강찬호 기자
  • 승인 2006.05.25 19:1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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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토박이, 노온사리 최영길씨를 만나다. 

11대를 이어 광명 자연부락에서 살고 있는 광명 토박이. 스무 살 시절에는 광명을 벗어나 충무로와 을지로를 오가며, 한 때 마음껏 ‘폼’도 잡아 봤다. 최영길(55)씨가 그다. 그는 이 당시 폼 잡던 시절을  ‘슬리퍼를 끌고 명동 시내를 누볐다.’고 회고한다. 2년 정도 을지로6가, 당시 서울운동장(현 동대문 운동장) 맞은편에 있었던 ‘계림극장’ 영사실에서 일을 했다. 당시만 해도 영화필름이 비싸 단성사와 같은 일류 극장에서 상영이 끝나고, 문화영화(대한뉴스 등)가 상영이 되는 시간을 이용해, 필름을 오토바이로 다른 극장으로 배달했던 시절이라고 한다. 계림극장도 일류극장에서 상영을 하고 나면 그것을 받아서 상영을 했고, 그 필름은 다시 오토바이를 통해 필요한 다른 극장으로 이동되었다. 당시 영화 배달은 필름 ‘나까마’들을 끼고 있었고, 이들은 당시에 소위 ‘조폭’과 연계되어 있었다고 한다. 최씨는 영사실에 근무하면서 이런 영화 시장, 극장의 유통 구조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노온사리 촌놈, 명동 거리를 누비다...‘나도 한때 잘 나갔던 때가 있다우’

그래도 영사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어 “촌놈이 영화는 실컷 봤다”고 좋아한다. 인터뷰 중에도 중간 중간에 알랭들롱부터 당시 유명했던 배우들은 줄줄이 외운다. 짧은 2년간의 사회경험이지만, 최씨는 이때 영사실 주임을 통해 “사람 됨됨이를 배웠다.”고 한다. TV, 배전 등 영사실에서 직접 몸으로 배운 것이 살아가면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극장 상무 집을 드나들며, 다른 사회의 ‘경험’도 가졌다. 폼도 잡아보고, 인생도 배우고, 극장과 유통이라는 ‘시장’도 경험했다. 이런 인연이 생긴 것은 매형이 이 계통에서 ‘가설극장’일을 하고 있어서, 계림극장에 소개를 받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런 연유 때문이지, 최씨는 최근 영화계에서 정부의 스크린 쿼터 축소 방침에 대해 항의를 하는 것에 대해 ‘지지’를 하는 입장이다. “스크린 쿼터 축소 반대는 맞는 말이다. 외화 비교해서 경쟁 안 된다. 지금 국산 영화 뜬다고 해도 시기상조다. 외국시장 진출 아직 이르다.” 

최영길씨, “스크린쿼터 축소 아직 이르다.”

최씨가 광명을 벗어나 외지에 머문 ‘외지 인생’은 이때가 전부다. 노량진으로 중학교를 다닐 때에도 노온사리부터 통학을 했다. 광명에서 오류역까지 8킬로, 노량진에서 다시 학교까지 4킬로의 거리를 통학 한 것이다. 2년간의 외지 생활을 마치고, 노온사리에서 지금까지 농사를 짓고 있다. 11대가 이곳 노온사리에 살면서 농사를 지어 온 것이다. 최씨는 현재 광명시농촌지도자연합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단체는 농업 선진지 기술을 농민들에게 전파하고, 농업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단체라고 소개를 한다. “경기도에 1만명, 전국적으로 10만명의 회원들이 있다.”고 규모를 자랑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새마을지도자연합회나 자율방범대연합회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런 최씨지만 올해 들어 단체 일을 줄이려고 한다. 그리고 새로 맞은 일에 충실하려고 한다. 작년에 맡게 된 지역 농협 이사 자리가 그것이다. 지역농협 이사는 10명으로 구성돼있다. 남성이 8명, 여성이 2명이다. 이사들 중에 농사를 짓는 이들도 있지만, 완전하게 전업농으로 농사를 짓는 이사는 자신뿐이라고 한다. 농협 이사로서 각별한 사명감을 갖는 이유다. “조합원위해 일하겠다. 학온동 지점 외에도 농기계센터 등에 민원 소리함을 설치하여 주민 민원을 듣도록 하고, 친절 직원을 추천하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최근에는 집 앞에 지역농산물 판매장을 시의 지원을 받아 설치하기도 했다. 광명에 12개가 설치되어 있다. 광명시내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판매하던 직판장 역시 이 지역 재개발로 인해 사라지게 된 것 역시 최 회장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노온사리 농사꾼으로 지역농협 이사, 잘 하고 싶다.....난, ‘막가파’다.

농협의 이사로서 자신이 나름대로 지역의 일을 하고 있지만, 최씨는 정작 자신은 ‘막가파’란다. 왠 막가파? 들어보자. 광명에서 대를 이어 살아가는 ‘원조 토박이’이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예전에 광명에서 ‘광명막걸리’가 꽤나 알아줬다.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양조장이 줄고, 맛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최씨는 자신이 한 때 자랑스럽게 여겼던 ‘막가파’를 탈퇴하고, 맥주로 전환을 했다고 한다. 어느 덧 세상이 변하면서, 자연마을에서도 하나, 둘씩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베여있다.

사랑방에서 모닥불 피우는 것 원하는 것인데...

농업에 대한 이야기도 잠시 나눴다. “국회 가서도 농업문제를 따진다. 국회의원들 알고나 해라. 농민들이 왜 농촌을 떠나는가? 사랑방에서 모닥불 피우고 지내는 것 원하는데...어디로 가라는 건가. 일제시대, 한국전쟁 겪으면서 일군 농촌인데, 언제 우리사회가 이렇게 변한 것인가?”라며, 갈수록 어려운 농촌 현실, 자꾸만 떠날 수밖에 없는 농촌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평생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지금도 그 터를 지키고 살고 있는데, 어느새 사람들은 하나, 둘 곁을 떠나가고 있다. 그나마 남은 이들 중에 농사를 짓는 이들도 줄어 얼마 남지 않았다. 농지는 용도변경 기회만 기다리고 있다. 안타깝다. “벼는 탄산가스 먹고 소나무의 2.5배에 이르는 산소량을 배출한다. 논은 곡물생산 외에도 홍수를 조절한다.” 굳이 논의 가치, 벼의 가치를 거론하면 뭐하나. 하면 할수록 현실 때문에 답답해질 뿐이다.

“새 쫓으러 간다.”

현실은 답답하지만, 그래도 사는 여유, 유머는 잃어버리지 않는다. 최씨는 “새 쫓으러 간다.”고 뜬금없이 말을 던진다. 갑자기 새는 왜? 그리고 왜 쫓는다는 거지? 알 길이 없다. 도심 한 복판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최씨는 그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화장실을 다녀온다. 새 쫓고 왔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해가 안가는 독자 분들이 있다면, 글쎄, 이를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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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저리 2006-05-26 16:15:25
이런곳에서 만날줄이야... 반갑습니다.

단위농협이라는 명칭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지금은 지역농협이라고 하지요. 수정부탁드립니다.
빛바랜 사진같군요. 지금 한창 모내기할 철인데.....,

김선미 2006-05-26 14:11:13
회장님 얼굴 못 뵌지가 넘 오래됐네요
사무실에 한번들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