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형도 시인, 드디어 광명시민들 앞에 서다.
기형도 시인, 드디어 광명시민들 앞에 서다.
  • 강찬호기자
  • 승인 2006.06.19 15: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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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형도 시비 건립 제막식 행사와 기념 세미나 진행 

안개시인이자, 요절시인으로 알려진 기형도 시인의 시비가 실내체육관 약수터 입구에 설치되어, 시민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어느 푸른 저녁’이다. 
기형도 시인이 광명지역에서 ‘광명시인’으로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힘써 온 기념사업회 활동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기형도 시인과 그에 대한 지속적인 ‘애정’을 가져온 많은 사람들과 문학사적 평가를 하는 이들 역시 기형도 시인과 광명의 ‘연결 고리’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광명과 시인의 연결 고리 기대

광명문화학습축제 개막날인 6월 16일 오후 6시. 
기형도기념사업회(대표: 이종락, 이하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백재현 광명시장, 전재희 국회의원, 안수남 광명문화원장 등 100여명의 지역 인사들과 시민들이 함께 했다. 
기념사업회 구성원으로 활동을 해온 기형도 시인의 누이인 기애도씨도 참석을 해서 눈길을 끌었다. 
기형도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을 출판한 출판사 문학과 지성사 대표와 소설가 성석재, 그리고 평단에서 기형도 시작들을 연구해온 학자들 역시 참석을 했다. 

기애도씨, 여기 모인 이들이 푸른사람들.

기념사업회 대표를 맡았던 광명문화원 이종락 사무국장의 사회로 이날 제막식이 진행되었다. 
기애도씨는 시비 건립에 대해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이 푸른 저녁을 기다리는 푸른 사람들이다.”라며, “아우를 광명사람으로 받아줘서 감사한다.”고 시비 설치에 대한 감회를 전했다. 
전재희 국회의원도 시비와 시인을 갖고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은 다를 수밖에 없다며, 기형도 시비 건립이 광명지역문화를 더욱 풍성하게 할 것 이라며 기대를 표시했다. 주요 내빈이 참석한 가운데, 시비 제막식 커팅을 한 후 참가자들은 시비에 ‘헌화’를 했다.

시비 건립의 실무 작업을 진행했던 양철원 광명시청 학예사는 “시비 건립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생가 복원이 되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시비가 건립이 되어 다행이고, 광명시민들이 기형도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기쁘다. 많은 준비와 논의를 거쳐 시비에 게재할 시를 선택했고, 시비의 형태를 결정했다.”고 시비 건립 과정의 소감을 밝혔다. 

시비 건립 세미나 통해, 보편성을 획득한 기형도 글쓰기의 힘 평론

한편 시비 제막식에 앞서 기념사업회는 시인 기형도 시비 건립 기념 세미나 ‘살아있는 기형도의 문학’이라는 제목의 세미나를 통해 기형도 시인의 문학을 조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광명문화원 강당에서 진행했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철화 교수가 ‘집 없는 자의 길 찾기, 혹은 죽음’,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김춘식 교수가 ‘조각난 시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이광호 교수가 ‘기형도 시 쓰기의 의미’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를 했다. 
발제를 통해 박철화 교수는 “기형도 시인은 80년대 저항의 시간을 살았지만, 당대 저항의 현실에 비해 목소리가 낮은 시인일 수 있지만, 저항 보다는 현실의 근원적 질서에 대한 물음과 현실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을 통해 보편적 체험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며, 기형도 시작들이 20년이 지난 현실에서도 지속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설명했다. 
김춘식 교수 역시 “기형도 시작들은 90년대 일상성이 화두가 되면서, 기형도의 실존과 맞닿게 되었다.”며, 시인의 시가 보편성을 획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 “기형도 글쓰기는 완벽을 지향하지 않았고, 기형도 시는 처마 밑의 고드름처럼 죽음으로 향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며, 그의 글쓰기에 죽음은 없다고 말했다. 
이광호 교수는 “기형도 시인의 유고시집이 출간된 이후 61쇄를 찍으며, 스테디셀러로서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것은 ‘신화적 사건’이다.”라며, 기형도 시인은 근대성 속에서도 주변적 근대화를 겪고 있었던 시인의 생가 주변과 당시 광명지역의 여건이 시인의 시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또 기형도 시인은 “과거의 시인이 아닌, 미래의 시인이다.”라며, “시인이 사용한 시간들을 통해, 미래 시인이 어떻게 글을 쓸 것인지 알겠다.”며 시인이 감수성을 그린 진정성과 보편성에 대해 논했다. 

어느 푸른 저녁

 1

 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 
곧,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 
것은 무방하지 않은가 
나는 그것을 본다 

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 있다, 한 사내가 
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 
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 
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 ! 
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 
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 
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 
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다

2

 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 
나는 까닭없이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 
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 
낮은 소리를 주고 받으며 
사람들은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 같이 
서로를 통과해 가는

나는 그것을 습관이라 부른다, 또다시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 
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러나 
안심하라, 감각이여 !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 
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느 투명한 저녁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모든 신비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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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2006-06-20 14:58:06
기형도 좋아하는 시인인데 실내체육관에 시비가 세워졋다니 보러 한번 가야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