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타고 갔다온 역사의 현장, 강화도
타임머신타고 갔다온 역사의 현장, 강화도
  • 장귀익 부장
  • 승인 2002.11.19 18: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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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왼쪽/박물관 뜰에 있는 멍텅구리배, 위오른쪽/병인양요 때 정족산성 전투에서 전멸한 프랑스군, 아래왼쪽/ 보문사 느티나무 아래, 아래오른쪽/'외규장각 도서 반환'이라는 문구가 씌어진 등이 걸려있는 보문사>


강화도의 자연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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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시간에 맞춰 일어나다가 잠에 맞춰 일어나는 개운함을 즐기는 일요일,
생태학교 가는 날이 괴로운 것은 이 순간이다.
그러나 몸은 습관에 길들여지는 법, 이제는 한달에 한번은 힘들지 않게 일어난다.
11월치고는 매서운 비바람과 추위로 걱정을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한결 풀린 날씨라 기분이 상쾌하다.

지붕없는 박물관 '강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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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에서 가까우면서도 바다가 있고 신령한 산이 있고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사의 장마다 등장하며 우리를 지켜내기에 온몸을 내 놓은 곳,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고 사적지며 전적지인 곳.
그래서 '지붕 없는 박물관' 이라 불리는 강화도로 떠난다.

강화도는 원래 김포반도에서 떨어져 나온 섬이라고 한다,
지도를 펴놓고 김포 서쪽해안과 강화도의 동쪽해안을 맞추어보면 서로 잃어버린 짝처럼 꼭 맞게 된다.
또 한강, 임진강, 예성강의 하류가 강화도 앞바다에서 합쳐진다.
그래서 이름도 '물江(강) 빛날 華(화)' 즉 강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고을이라는 뜻이다.
강화의 신령한 산인 마니산은 백두산과 한라산의 한 중앙에 있어서
한반도의 모든 '氣(기)' 가 모이는 곳으로
전국체전때 마니산에서 성화를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화도의 5대 명물은 쌀, 인삼, 인삼막걸리, 화문석, 순무가 꼽힌다고 한다.

서로 차리하려던 싸움이 끊이지 않았던 섬의 역사가 한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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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에 대한 기본을 알고 들어가라는 듯 강화 초입에 역사박물관이 있다.
위치가 중국으로 가는 뱃길의 길목이인데다가
강화도를 차지하면 한강 이남을 차지하게되는 중요한 곳으로써
고구려와 백제의 치열한 전투부터 서양의 침입까지
강화도를 차지하려는 싸움이 끊이지 않던 곳이다.
역사박물관에는 강화의 지형과 시대별 전투의 모형과 공을 세운 장군의 모습,
당시의 대포. 소포등이 전시되어 있다.

청나라와 싸운 병자호란, 프랑스를 물리친 병인양요, 미국과 맞선 신미양요..
병자호란(병자년에 중국의 난)후 왕자시절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갔던 효종이 북벌의 꿈을 안고 국력을 키웠다.
효종의 애마 벌첨대는 매일 강화도와 서울을 오고 갔는데 양천에서 숨을 거두었다.
워낙 벌첨대를 사랑하는 효종은 벌첨대가 '죽었다'는 말을 못하게 영을 내렸기때문에
양천군수는 말이 죽은 사실을 알릴 방법이 없어서
"벌첨대가 누운지 3일이 되었습니다" "벌첨대가 밥을 안 먹은 지 3일이 지났습니다"
"벌첨대가 숨을 안 쉰 뒤 3일이 되었습니다" 고 하여
겨우 말이 죽었다는 말을 하지 않고 벌첨대의 죽음을 알렸다고 해서
작은일을 가지고 끙끙거리는 것을 빗대어 "양천군수 말 다루듯 한다"는 말이 생겼다.

병인양요(병인년에 양인의 난)는 천주교가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프랑스 신부 12명중 9명을 죽인 것이 문제가 되어
프랑스군이 신부 1명에 조선군 1,000명꼴로 복수를 하겠다며 쳐들어온 사건이다.
처음에는 프랑스군이 조선군을 압도하여 강화를 점령하였지만
양헌수 장군이 정족산성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전멸시키고 대승을 거두었다.
프랑스군은 철수하면서 외규장각에 있던 도서 345권과 은괴 19상자 등,
우리 문화재를 약탈해가고 남아있던 도서들을 모두 불태웠다.
신미양요(신미년에 양인의 난)는 미국 제너럴 셔먼호를 앞세운 미국이
조선의 개항을 요구하면서 쳐들어온 사건이다.

박물관 마당에는 여러개, 여러 가지의 비석이 서 있어서 그 시대의 사회생활상을 엿보게 해 준다.
고려 때는 몽고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39년 동안이나 도읍지의 역할을 하였다.
이때 개성주민 10만명을 이주 하기도 했다.
인구가 많아지면서 말과 소도 따라 많아졌다.
그 관리 또한 무척 엄격해서 말의 관리를 정하는 '금표'비가 있다.
마.소의 똥을 함부로 버리면 곤장80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곤장50대를 쳤다는 것이다.
또 서당 앞에서는 말에서 내려서 가라는 뜻의 '하마비'를 세우기도 하였다.

박물관 마당에 서있는 배 한척/ 한번 잡혀 들어가면 나오자 못하는 멍텅구리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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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마당에 배가 한 척 있다.
이 배는 물고기를 잡기만 하고 움직이지를 못해서 '멍텅구리 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잡은 물고기는 작은 배가 실어 나르기 때문에 이 배는 항상 바다에 떠 있다.
따라서 이 멍텅구리 배에 잡혀가면 아무도 빠져 나오지 못한다.
마당 한켠에 탱자나무가 있는데 강화도는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나무도 마름이나 탱자나무처럼 가시가 많은 나무로 울타리를 쳤다.
탱자나무는 주로 남쪽에 사는 천연기념물이며
강화도가 탱자나무 생존의 북방한계선이 된다.

선사시대 청동기 유적 '고인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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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강화도에는 선사시대 청동기 유적인 고인돌이 많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어있다.
고인돌은 북방식과 남방식, 혼합식으로 나뉘어지는데
북방식은 지상의 사면을 돌로 막고 그 위에 뚜껑돌을 얹은것이고
남방식은 땅을 파고 시신을 넣은 뒤 그 위에 뚜껑돌을 얹고 돌을 괴는 방식이고
혼합식은 땅을 파고 돌관을 넣고 그 위에 뚜껑돌을 올리는 형태이다.
그중 강화도는 북방식이며
상석의 무게가 50톤으로 이 돌을 들 수 있는 장정의수와 그 가족의 수로 유추해 볼 때
주민 2,000명 규모의 마을이 이미 그 당시에 형성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전등사, 벌을 받는 나녀상이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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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의 고찰 전등사로 갔다.
전등사 입구에 아주머니들이 군밤, 순무, 게장, 나물등을 팔고 계신다.
아이들은 코딱지 선생님이 사 준 군밤을 까먹으면서 전등사로 들어간다.
전등사는 추녀 끝에 나체로 쪼그리고 앉아 지붕을 받치고 있는 여인조각상이 있다.
이 절을 지은 목수가 정을 나눈 여인네에게 정과 함께 돈을 맡겼는데
그 여인네가 그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
그래서 평생 무거운 지붕을 받치고 있는 형벌을 받으라는 목수의 울분이 담긴 조각상이다.
전등사를 나와서 코딱지 선생님은 또 순무를 사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어떤 아이는 밤 같다고 맛있게 먹고 어떤 아이는 인삼 같다고 찡그리고,
코딱지 선생님은 이 맛있는 것을 왜 몰라주느냐고 계속 드시고..

게장 식사를 끝내고 바닷가에서 뛰노는 어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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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에서 나와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맛깔스런 반찬과 강화의 토속음식인 게장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오늘따라 배가 고프다고 내내 점심을 기다려온 아이들은
밥상에 앉자마자 남김없이 빠르고 깨끗하게 자기 밥그릇을 비운다.
식당의 주인아주머니와 아들은 아이들 상마다 찾아다니며
부족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고 친절히 챙겨준다.
식사 후 구수한 숭늉에 진한 호박죽까지 강화의 인심 또한 유적지나 경치의 수준에 못지 않음을 보여준다.
점심을 먹자마자 아이들은 잠시도 앉아있지 않고 마당으로 뛰어나가
저희들끼리 무슨 잡기 놀이를 하느라 조용한 주변이 깔깔 하하 시끌벅적하다.
저 넘치는 에너지를 어찌 누르고 있었을까.
코딱지 선생님이 아이들의 마음을 얼른 알아차리고 바닷가로 데리고 나가신다.
여기서는 설명이나 안내가 없다.
그냥 놀고 싶은데로, 하고 싶은데로 풀어놓으니
갈대 숲 속에 들어가서 숨바꼭질을 하는 아이,
물길의 돌을 들어서 어느새 칠게를 양 손에 들고 나오는 아이,
모둠 선생님과 함께 장난치며 낄낄거리는 아이들.
여기서는 아이. 어른. 교사. 코딱지가 별 차이가 없다. 그저 그저 즐거울 뿐.

새우깡 먹는 불쌍한 갈매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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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타고 석모도를 들어갔다.
관광객들이 주는 새우깡의 맛을 아는 갈매기들은 사람이 모여있는 뱃전에 서로 달려들어서
아이들은 아주 가까이에서 갈매기들을 볼 수 있었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자꾸 주게 되면
원래 자기 먹이와는 다른 먹이를 먹게되면서 병이 생기고
물고기를 잡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어 결국 바다 먹이사슬의 균형이 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인간은 사람을 오염시키는 것도 부족해서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갈매기까지 타락시키고 있었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라는 문구가 씌어진 등이 죽 늘어서 있는 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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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모도에서 내려 보문사로 들어갔다.
꽤 높은 산위에 자리잡고 있는 보문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고색창연하고
전등사와는 또 다른 분위기를 입구부터 느끼게 된다.
입구 양쪽에 '외규장각 도서 반환'이라는 문구가 씌어진 등이 죽 늘어서 있어서
우리의 문화재를 요구하는 강화주민, 아니 모든 우리 국민들의 여망을,
또 아직도 끝나지 않은 '병인양요'의 후유증을 체감할 수 있었다.
보문사의 오래된 느티나무아래에 둘러 앉아 코딱지 선생님의 '방귀뀌는 나무'라는 생태동화를 듣고
절 뒷산 눈썹바위에 있는 마애관음보살상을 찾아갔다.
굽이굽이 420개의 길고긴 계단을 다 올라와서 땀을 식히며 저- 아래를 내려다 봤다.
단풍이 곱게 물든 산과 바다에 바싹 붙어있는 밭,
구름을 뚫고 내려온 햇살이 바닷물에 닿았다가 되 올라온
붉고 밝은 빛들이 만들어 내는 풍광은 그저 '아-'할 뿐 불완전한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

보문사에서 내려와 입구에서 파는 엿을 아이들은 맛있게 먹으며 차를 타는데 비가 조금씩 뿌린다.
바다에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우리는 차에 올랐다.
오늘은 타임머신을 타고 역사속으로 자연속으로 한참을 달려 갔다 온 하루였다.

<광명경실련 장귀익부장 2002년 11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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