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개정 문제를 껴안는 광명시민사회의 몸짓
소파개정 문제를 껴안는 광명시민사회의 몸짓
  • 강찬호
  • 승인 2003.02.19 1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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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개정 문제를 껴안는 광명시민사회의 몸짓

 

 @ '왜 소파를 개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강의를 듣고 있는 대책위 관계자들

 

광명경실련 등 지역시민사회 14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미 장갑차 여중생 고 신효순, 심미선 살인사건 광명지역대책위원회(이하 지역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은 지난 13일 6시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왜 소파를 개정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날 자리는 지역대책위원회가 2003년도에도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기로 확정하고, 그 첫 사업으로 오는 2월 21일 문정현 신부님을 초청하여 대중강연을 열기에 앞서 지역 관계자들이 소파 개정 문제에 대한 자세한 현황을 먼저 알고자 마련되었다.
강사로 나선 유영재(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씨는 이날 강의를 통해 현행 소파규정상의 형사재판권 적용범위에 대한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열거하고, 소파개정 범대위측에서 제시한 소파 개정안을 설명했다.
강의를 마치고 질문과 토론을 하는 시간에 최근 이라크 등 반전분위기와 소파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해 유씨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에 맞서 전쟁반대의 목소리를 시민사회 진영이 함께 제기해야 하는 시점임을 언급하면서도, 소파 개정 문제는 소파개정 문제대로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당면 정세에서 요구되어지는 내용들을 수렴하는 유연한 입장의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강의를 들은 지역대책위원회 한 관계자는 군대시절 카츄사에 근무를 하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이야기하면서 “소파 개정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이번 강연이 새삼스럽게 공감이 가는 바가 많았다”며 강연에 대한 소감을 전하기도 하였다.

이날 강연을 바탕으로 광명지역대책위는 2월 21일(금) 오후7시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문정현 신부와 나누는 한반도 평화이야기’ 대중강연을 통해 광명시민들과 함께 소파개정 운동의 필요성을 공감하고자 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거리의신부로서, 소파개정의 한길을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문 신부의 강연이 광명시민들에게 많은 울림을 줄 것으로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깊이 깊이 존경하는 산같으신 우리 문정현 신부님!/ 조명선

 

어제 문득 신문가판대에 서있다가
문화일보를 사들고 전철을 타고 신문을 펼쳤더니 문정현 신부님의 기사가 실렸더러구요!!
아니 이게 무슨 텔레파시가 통한 걸까요!!
집에가서 스크랩을 하고서 이렇게 홈에 들어가 글을 퍼왔습니다.
우리의 든든한 산같으신 문정현신부님
전 글을 읽으면서 울컥 눈물이 나오데요!!
깊이 깊이 존경하는 산같으신
우리 문정현 신부님!!

@ 시민운동가 200명이 뽑은 2002년도 시민운동가상 1위 문정현 신부(가운데), 2위 한상렬목사(왼쪽)

 

  ‘싸움꾼신부’의 장애아사랑 17년/ 우승현

 

‘거리의 신부’ 문정현(62·불평등한 소파개정 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씨.
반미시위 현장에 흰 수염을 날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힘이 부치고 설움에 겨우면 대자로 누워 엉엉 우는 노익장 신부다. 그가 나타나면 전경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며 긴장한다. 툭하면 악다구니를 쓰며 전경의 헬멧, 무전기, 곤봉을 빼앗아 버리는 ‘깡패 신부’로 이름나 있기 때문. 여기까지가 알려진 문정현 신부다.

시위가 없는 날 그는 41명 아이의 순한 아버지로 변신한다. 그의 본직은 전북
익산시 월성동 중증장애아 보호시설 ‘작은 자매의 집’ 원장. 지난달 24일 문신부를 ‘작은 자매의 집’ 원장실에서 만나 장애인 아버지로서의 삶을 들어봤다.

“1986년 여름의 일이야. 병든 소를 수입한 것에 대한 농민투쟁인 일명 ‘소파동’이 한창이었지. 익산부근의 한적한 농촌마을에 농민들을 조직하려 들어갔는데 사람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소리 같기도 한 울음이 들려서 따라 가봤어. 세상에…. 아무도 없는 집 마당에 예닐곱 살쯤 돼 보이는 정신박약 여자아이가 감나무에 개 줄로 묶여 있더라고. 그 옆에는 밥을 담은 양푼이 뒤집어져 있고, 애 얼굴은 음식 ‘칠갑’이 돼 있었어. 사람 꼴이 아니었지.
눈물이 벌컥 솟았어. 이럴 수가 있나. 이런 아이를 외면하고 사회운동만 할 순
없다 생각했어. 그 후 성당 옆 창고를 집으로 개조해서 그 아이를 데려와 따뜻한 밥 먹이고, 씻기면서 키우기 시작했지. 소문이 나서 정신지체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 지금의 ‘작은 자매의 집’이 된 거야.”

회한 어린 말을 마치고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 문신부의 눈가가 젖어 있다. 이제 ‘작은 자매의 집’은 건물 4채에 8세에서 20대까지 원생 41명과 교사·직원 30여명이 생활할 정도로 큰 규모로 성장했다.

“장애인 보호시설의 기본은 기다림과 믿음이야. 아이들 수발해서 특수학교에
보내고, 나이가 들면 슈퍼마켓에서라도 일할 수 있게 사회화를 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

사실 문신부의 교육경력은 사제 서품을 받자마자 시작됐다. 결손 가정문제로 방황하던 성당 청소년들과 때론 술도 마시고, 때론 ‘쥐어 패기’도 하며 가슴으로 품었다. 72년부터 4년동안은 전주 혜성중고교에서 종교과목과 영어를 가르쳤다.

“농사짓던 아버지가 빚 문제로 노름에 빠지자 삐뚫어진 녀석, 파렴치하게 해고된 부모님 때문에 방황하는 아이들을 보며 청소년 문제가 부조리한 사회구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고 사회운동의 뜻을 품었지.”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74년 인혁당 구속자들 구명운동에 나서면서 본격적인 사회활동을 시작했고 YH사건, 소파동 등 각종 노동, 농민 투쟁의 중심에 섰다. 1988년 5월 제자의 죽음을 계기로 통일운동에 나선다. 고교시절 문신부의 강연을 따라다녔고, 문신부로부터 영세를 한 서울대생 조성만씨가 “88 올림픽 남북
공동개최, 주한미군 철수”를 외치며 투신 자살한 것. 89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멤버로 친동생 문규현 신부를 임수경씨 방북에 동반하게 한 것도 그다. 요즘도 매주 수요일이면 군산미군기지반환 시위에 참석하고, 반미집회가 있을 때마다 몸을 던진다.

문신부는 서울에서 반미집회에 참가하더라도 경찰에 연행이 되지 않는 오후 11시 55분 무궁화호 막차를 타고 반드시 전주로 돌아온다.

“어디에 있든 아이들이 눈에 선해요. 이 나이에 아스팔트에 몸을 갈며 싸우면 녹초가 되죠. 그래도 아이들이 등에 올라타고 장난치는 걸 받아 주다보면 마음의 피로가 싹 풀립니다.”

가끔 아이들이 그를 TV에서 보고 “신부님, 우리 보고는 싸우지 말라면서 왜 싸워?”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하느님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는데 어떻게 형제인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냐. 국가보안법은 천주교 교리에 어긋난 거야. 그래서 ‘깡패 신부’가 된 거지.”

그를 만나기 전부터 줄곧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과연 사회개혁운동과 중증장애아 보육 사이에는 어떤 결합지점이 있을까.

“공통분모는 ‘사람사랑’이지요. 변두리에서 고통받는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있다면 둘 다 절실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노동운동 하다 쫓기는 사람, 국가보안법으로 고통받는 이들, 자신을 낳은 부모에게 홀대받는 아이들 모두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형제·자매들입니다.”

익산〓우승현기자
noyoma@munhwa.co.kr

 

 <광명시민신문 강찬호기자 (tellme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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