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는 나의 힘, 하안1동 강복금씨를 만나다.
‘재미’는 나의 힘, 하안1동 강복금씨를 만나다.
  • 강찬호 기자
  • 승인 2006.09.30 16:51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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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는 사람들이 북적대고, 막걸리 사발이 돌면서 인정을 나누는 곳이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열린 3일간의 짧은 장터를 찾았다. 살아가면서, ‘이 사람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누군가를 추천할 수 있는 사람이나, 그렇게 추천을 받는 사람은 아마도 행복할 것이다. 누군가를 추천하는 것이 그 만큼의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추천을 받은 사람은 그 만큼, 살아가는 일에 삶의 책임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추천하고 추천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매일 매일 그런 사람들을 쫓아 다녔으면 좋겠다.

임시 장터지만, 묵 국수 대접이 돌았고, 좁쌀 막걸리도 돌았다. 찾은 곳은 광명시 새마을지회가 3일 동안 추석맞이 대목장을 연 곳. 30일 점심 오후였다. 매주 목요일이이면 지역 농산물을 팔았던 목요장터가 섰던 곳. 아파트 재건축으로 이제 이곳은 문을 닫고, 다른 곳으로 이전을 해야 할 처지지만. 목요장터가 섰던 그 곳에서 새마을지회가 장소를 빌어, 장터를 열었다. 그리고 사람을 소개 받았다. 소개를 한 이는 공무원이다. 동에서 근무를 할 당시, 동 새마을 조직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묵국수를 먹으며, 막걸리 한 잔을 가볍게 먹으며 자연스럽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묵국수와 막걸리 도는 새마을 장터를 찾아, 강복금씨를 만나다. 

하안1동 새마을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강복금(52. 하안1동)씨다. 작은 체구에 다부진 인상이다. 별명이 ‘억순이’에 ‘깡패’란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뭔가 ‘카리스마’(?) 같은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기질이 있다. 생긴 대로 살아야 한다. 강씨 역시 그런 이들 중에 한 명일 것 같다.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 좋고,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좋다. 힘이 들어도. 첫 만남이지만, 강씨는 그런 사람 같았다. 조직에 있든, 아니면 속된말로 정치라도 할 만한 사람 같은 느낌. 인터뷰를 하면서, 익숙해 질 즈음, 농을 걸어 보기도 했다. ‘정치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자신은 아니란다. 자기가 자신을 안다고.

강씨가 처음 새마을과 인연을 맺은 것은 94년도다. 처음 2년, 3년 활동을 했다. 그러다 잠시 중단을 했다가,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하안2동 부녀회장으로 일한다. 광명시에 살기 시작한 것은 81년도다. 만 26년이다. 시가 개청을 한 해이기도 하다. 당시가 27살. 결혼을 하면서, 당시 남편이 구로동 3공단에서 일을 하고 있어, 광명시에다 거주지를 튼 것이다. 광명시 도시 태동의 역사가 그렇게 시작이 되었다. 결혼하고, 신혼생활을 보내고 1남 1녀의 아이들을 이곳에서 나고, 키웠다. 강씨에게는 광명이 고향이란다. 여론 조사 기관에서 ‘고향이 어디세요?’라고 물으면, 자신이 태어나고 20살까지 자랐던 경남 ‘하동’이 아니라, ‘광명’이라고 한다고 한다. 광명에서의 삶이 27년이니, 그럴 만도 하다.

81년 시 개청과 함께 광명시에 살았다. 신혼생활 시작한 광명은 나의 ‘진짜’ 고향. 

강씨는 지금이 매우 좋다고 한다. 백수라서. 두 아이 대학생이고, 결혼은 자기들이 벌어서 가면 될 일이니, 이제는 돈 쓸 일도 크게 없어 큰 걱정 근심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매일 매일이 좋다고 한다. 강씨는 솔직하고 당찬 사람이다. 거침없이 사는 사람 같다. 요것조것 재는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사람인 듯하다. 새마을 부녀회에서 활동하는 것 역시, 새마을에 대해 이것저것 말도 많지만, 또 관변단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강씨는 그런 말에 치우치지 않는다. 새마을의 순수성, 설립목적이 지향하는 것을 먼저 본다고 한다. 그것을 믿고 있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든, 그 조직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조직이 힘이 있고, 사람이 많으면 이런 저런 유혹이 있고, 손길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유혹에 흔들리다 보면, 단체나 조직은 흔들린다. 그러나 중심이 바로 서면, 그 조직은 지켜진다. 강씨 역시 그런 중심 중에 한명일 것 같다. 그리고 더 큰 힘은 새마을에서 활동하는 것이 강씨에게는 무엇보다도 ‘재밌는’ 일이다.

매일 매일이 재밌다.

“사람 만나는 것이 재밌다. 소위 여성성 안 내세운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은 가능한 하려고 한다. 시간을 내고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려고 한다. 때론 아무것에나 고개 처박는다고 욕도 먹는다. 가능한 해주려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다.” 강씨는 ‘예스’우먼이다. 요청이 오는 것, 할 수 있는 것이면 한다는 것이다. 또 광명에 이사 와서, 하안1동에만 살았다. 하안 1동에서 알 만한 사람 다 안다. 그래도 요즘엔 제일 자랑스러운 것이 하안1동 부녀회란다. 단합도 잘 된다. 부녀회장 하니까, 젊은 사람들이 놀아주는 것이지, 누가 놀아주겠냐며 하안1동에는 은근히 예쁘고 젊은 부녀회원들이 많다고 자랑이다. 하지 못하는 노래도, 젊은 회원들과 어울리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게도 됐다고 한다.

한편 새마을 일이라는 것이 만만치 많은 않다. 광명에서 가장 일이 많은 조직 중에 하나라면 과장일까. 새마을 조직의 발품을 필요로 하는 일은 지역에서 많다. 그리고 그 일을 지금까지는 잘 해내고 있다. 그렇다보니, 소속 회원들에게 전가되는 일의 강도는 세다. 특히 젊은 회원들이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종종 처음에는 발을 들이다가도 힘이 들어 빠져 나가는 이들도 있다. 부녀회장은 이들을 지켜야 하는 몫이 있다. 힘이 들어도 결속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결국, 강씨는 회원들 역시 자신처럼 재밌게 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하려고 애를 쓴다고 한다. 그런 마음 때문인지, 젊은 회원들이 함께 해주는 것을 보면, 너무 ‘예쁘다’고 강씨는 말한다.

부녀회 아니면 누가 나랑 놀아 줄까. 젊은 그들이 너무 이쁘다. 

모임을 이끌고, 책임을 맡은 사람들의 입장은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새마을 자체 행사로 참여하면, 신경 쓰느라 먹을 것 제대로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새마을을 떠나, 자신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자격이면, 마냥 재밌게 논다고 한다. 그런 것이다. 강씨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매년 가을 김장철이면 새마을에서 몇 천 포기의 김장을 담아 독거노인들에게 배달을 하면서, 어르신들의 건강이나 처지를 걱정했다고 한다. 이제는 정작 자신도 계단을 오르내리며 관절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몸이 그런 것을 알아차린다고 한다. 그래도 지금의 일은 ‘드러눕지 않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한다.

올해 추석맞이 장터에서 하안1동 부녀회는 김 판매를 담당한다. 각 동별로 제비뽑기를 뽑아서 무엇을 팔 것인가 결정했는데, 운 좋게 김 판매를 뽑았단다. 비교적 품이 덜 가는 일. 목표량은 100개. 그런데 3일장 중에 2일째인데, 판매량은 200개. 목표 2배 달성이다. 인터뷰 중에도, 다른 판매대에 있는 회원들은 ‘벌써 다 팔고 놀고 있는 것이냐’며 농을 건다. 목표 달성자의 여유로움. 판매 비결은 미처 묻지 못했다. 7년간의 연애담도 미뤘고. 하동에서의 20년도 미뤘다.

‘깡패’ 소리 들어도, ‘행실’ 나쁘다는 소리는 안 들어.

그래도 사생활 한 토막을 엿들었다. 강씨의 생활이 밖에서 당차고 억세기에 다른 사람들이 ‘남편 역시 꽉 잡고 사는 것 아니냐’며 묻곤 한다. 강씨 왈. 그렇지 않다고 한다. 집에서 말 잘 듣는 다고 한다. 물론 강씨의 평가다. 대답은 걸작이다. “밖에서 이길 사람 천지인데, 안에서까지 이길 일이 뭐 있냐.”고. 남편은 비교적 조용한 편인데, 강씨의 적극적인 내조자란다. 단체에서 활동하다보면, 밖으로 도는 일이 많다. 그 만큼 집에, 소홀하게 되는 것은 당연. “제대로 안 할 것 같으면, 안 내보낸다. 깡패소리는 들어도, ‘행실’ 나쁘다는 소리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바른 사람인 것을 안다.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인 것을 안다.” 선거 운동에 참여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후보자 동행하다, TV에도 나왔다. 남편 친구들이 ‘뭐라고’ 말하면, 남편은 저것도 ‘능력’이라고 편을 들어준다고 한다. 든든한 내조의 힘이 있는 것이다. 정치 이야기가 나왔으니, 강씨의 정치 인연도 소개를 하자. 강씨는 한나라당 골수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한나라당 좋아하는 것은 역시 사람 좋아서란다. 강씨는 전재희 국회의원에 대한 개인적 애정을 가지고 있다. 전 의원이 좋아, 한나라당도 좋은 것이 됐다. 중·고등 시절, 공부하기 싫은 과목도 선생님이 좋으면 싫은 과목도 좋아하게 된다. 시의원들에게도 한 마디 한다. “시의원들도 전문성 있어야 한다. 공부해야 한다.” 그런 시대라고 한다. 

아마도 강씨를 움직이는 힘은 ‘재미’다. 사람 좋아하는 것 역시 재미있어서다. 누군가 주변에서 자신을 챙기는 이라도 있으면 그것도 좋다. ‘제가 나 사랑하는 구나.’ 이런 강씨를 누가 말릴까. 강씨는 한 때 ‘사장님’이기도 했다. 직원을 두고 가내 공장을 5년 동안 운영했다. 그만 둔지 얼마 되지 않았다. 카스테레오 볼륨 장치를 만드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하청을 받아서 일하다가, 사업자를 내서 본격적으로 했다. 만든 제품은 주로 수출을 하였다. 대금을 달러로 결재했다. 그런데 달러는 떨어지고 자재 값은 올랐다. 결국 버티다 접었다. 중소기업 유자제도도 있었고, 그것을 권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빚지기 싫어 융자 받지 않고 접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도 공장에서 일하면서 ‘재밌었던’ 기억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

‘재미’는 나의 힘.

인터뷰 끝머리에, 자식자랑 한 토막도 얻어 들었다. 강씨나 남편이나 체구가 작은 편인데, 아들은 ‘품종개량’에 성공했다고 한다. 178센티에 86킬로그램. ‘이 정도면 된 것 아니냐.’며 은근히 자랑 한다. 그런데, 딸은 엄마, 아빠 닮아 아담 사이즈란다. 절반의 품종개량인 셈이다. 그래도 덩치 큰 아들이, 딸 아이 못 건드린다고. 강씨의 힘 센(?) 피가 절반은 딸 에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장날 , 좌판 깔고 인터뷰를 빙자해서 노는 것은 눈치 보이는 일이다. 그런데, 목표 2배 달성이니. 부러움의 대상일 뿐. 장터 찾아가 짧은 인터뷰도 아니고, 사람 만나 인터뷰 하는 것이 될까 싶은 마음으로 찾았는데, 무사히 마쳤다. 그것도 기분 좋게. 그리고 다음 동민 체육대회 때 찾아오라고 한다. 맛있는 음식 해준다고. ‘기꺼이 찾아 가겠다.’고 대답했다. 참, 인터뷰 중간 중간 얼굴 내민 사람들이 있다. 그 중에 한 분 말씀. 나무젓가락 사용하면 안 된다고. 신체에 유해하다고. 그 독성이.  TV에 나왔다고. 얼른 젓가락 놓고, 손으로 부침을 집어 먹었다. 그리고 강씨는 놓여진, 아니 버려진 나무젓가락을 하나로 모아 묶었다. ‘일회용 사용하면 안 되는데…’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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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민 2006-10-07 02:37:47
"새마을"이라 하면 그냥 70년대 박 대통령 독재시절의 새마을이 생각나 웬지 느낌이 좋지 않았는데, 강복금님을 보니 사람냄새 나게 만드는 다른 "새 마을" 운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화이팅!!

나그네 2006-10-09 08:38:39
숨어서 봉사하는 강복금님!
추석명절 잘보내셨는지요!
이제 봉사활동때문에 거친성격인가?아님 성격인가?
천천히 이제 복받으며 살아가싶시오

하안4동 2006-10-02 09:45:05
역시나? 짱!!!
강 : 강하디강한여자 강복금 실은 약한 여자지요!

복 : 복스럽게 생겼다고 놀리는 남자는 아무도없다
왜냐면 놀리다간 디지게 맞아죽으니까!

금 : 금방이라도 날라올것같은 손과발길질에 나는너무쫄았지
오야붕! 그만좀 겁주지마쇼!
어디무서워살겠수?
그런데 의리만큼은 그어떤놈보다도 지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