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에서 세계 최초 민간 주회 개최, 꿈만 같았다.’
‘개성에서 세계 최초 민간 주회 개최, 꿈만 같았다.’
  • 강찬호 기자
  • 승인 2006.12.17 18:0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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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하는 민주평통 이영희 자문위원 인터뷰

2006년도 평화통일 유공 자문위원으로 선정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하게 되는 민주평화통일 광명시협의회(이하 민주평통) 이영희 부회장(여,56세)을 인터뷰했다. 인터뷰는 14일 오후 3시 민주평통 광명시지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박준철 민주평통 광명시협회장이 함께 했다.

인터뷰에서 박준철 회장은 “이영희 부회장은 6년 가까이 민주평통에 참여하면서 좋은 활동을 보여 주었지만, 이번 국민훈장 수상은 민주평통에서 활동한 것만으로 수상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이영희 부회장은 가려져 있었고, 나서지 않은 탓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가려져 있었다. 나서지 않은 탓.

이미 민주평통 활동을 하기 이전부터 보이지 않게 활동을 해왔고, 광명지역에서만이 아닌 지역 외부에서 그 동안 활동을 많이 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는 것이 박 회장의 전언이다.

짧은 시간의 인터뷰였지만, 인터뷰를 통해 재밌는 사실들을 접하기도 했다. 광명의 역사와 관련해서.

이씨는 지난 91년도부터 한민족예술단을 창단해서 공연예술을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한민족예술단 창단은 현재 단장을 맡고 있는 최종실 교수와 국악을 하는 자녀를 둔 학부형의 인연으로 만난 것이 계기가 되었다.

한민족예술단은 60여명의 규모를 자랑한다. 그 동안 아프리카 공연을 포함하여 28개국에서 공연을 했다. 95년 세계한민족체육대회 경축예술제를 비롯해 96년 제1회 신체장애인을 위한 공연 등 60여 차례의 공연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알리는 일에 기여를 해왔다.

한민족예술단 창단해 공연예술로 한민족 알리는 활동 전개…서울 전화 도입 앞장서기도.

이씨가 광명에 거주를 한 인연은 오래됐다. 현재까지 35년째다. 당시 광명시에는 포도밭이 많았는데, 포도를 따 먹으러 왔다가 광명과 인연이 닿았다고 한다. 광명의 자연환경이 당시 국문과 학생이었던 이씨에게 인상적으로 남았고, 지금까지 눌러 살고 있다.

새댁으로 새마을 부녀회장이 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새마을 부녀회장으로 활동할 당시, (광명시 전신인) 서면에서 전화를 사용하는 집안이었고, 이 전화는 영등포전화국에서 끌어 온 것이다. 전주는 직접 자부담으로 한 것이다. 72년도에 전화를 끌어 오는 사업을 부녀회 사업으로 주도적으로 하면서, 지금의 광명지역의 전화번호가 서울 전화 지역번호인 02번을 사용하는 계기가 된 것도 당시 이씨의 활동이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한다.

이씨는 지난 2002년부터 민주평통에 참여하였다.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과 민주평화통일 광명시협의회 부회장이 그것. 이씨는 민주평통의 임원으로 민주평통이 진행하는 여러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통일시대 시민교실’을 통해 평화통일을 주제로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는 명사들의 강연을 광명시민들에게 소개했다. 민주평통 산하 (사)남북나눔공동체 광명시지부 부회장을 역임하면서, 민간차원의 남북 나눔 운동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여하기도 했다.

이씨 자신이 회장으로 참여하고 있는 국제로타리클럽3690지구 광명장미로타리글럽 회원들을 통일시대 시민교실의 수강생으로 이끌어 내면서, 평화통일 문제를 함께 고민할 수 있도록 저변을 확대하는 역할을 해냈다.

민주평통과 장미로타리 활동 윈윈 통해 평화통일 저변 확대…개성서, 세계최초 민간주회 개최

또 민주평통이 주최하는 각 종 북한과 남한의 민간교류 사업에 참여하면서 2005년도부터 북한에 4차례 왕래를 했다. 북측에 사랑의 연탄 12,000장을 전달하는 사업과 영양제를 전달하는 사업에도 함께 참여 했다. 북한 개성 짐봉산에 통일 꿈나무 심기 사업에도 함께 했다.

그러나 이씨가 더욱 각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사업은 올해 11월에 있었다. 광명장미로타리클럽 회원들 30여명과 함께 11월24일 개성을 방문해서, 세계 최초로 북한 개성 현대아산개성사업소에서 평화통일 특별주회를 개최했던 경험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 “훈장 받는 것 이상으로 보람이 있었다. 꿈만 같았다.”며 당시 감회를 전했다. 그동안 로타리클럽에 대한 고정된 일반인들의 시각에 대해 새롭게 변화의 자극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북한 이해에 대한 폭이 더욱 넓어 질 수 있음에 대해도 의미를 부여했다. 이러한 변화의 징후는 국제로타리클럽 신임 회장이 북한 어린이 돕기 사업에 나서겠다고 밝힘으로서, 광명지역에서의 장미로타리 클럽의 활동이 결코 ‘그들만’의 활동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보람은 충분하다.  

박준철 회장은 “통일이라는 두 글자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우리 사회 현실”이라며, 이씨가 이런 노력을 해 준 것에 대해 남다른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분단 현실이 여전히 우리의 현실이고, 북핵 위기를 겪으면서 북한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이 아직도 많은 현실에서 북한의 동포들이 함께 살아가야 할 우리의 동반자라고 하는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멋대로 사는 인생이었는데…인도적 차원의 봉사로 이해해 달라.

이씨는 “멋대로 살아온 것뿐”이라며, 과하게 평가되는 것에 대해 의미를 축소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덧붙인다. “후대의 평가가 중요하다. 인도적 차원의 봉사다. 나라와 국경을 초월해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씨는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인생이 좋다.”고 한다. 누구에게도 손 안 벌리고 이 정도 살아 온 것에 대해 감사한다. “제 멋대로 살아 온 인생일 뿐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만치 봉사해서 훈장을 받는다면 누구나 일 안하고 봉사할 것이다.”라며 자신의 공적에 대해 겸손해 한다. 그러면서도 소녀 같은 장난기는 계속 발동된다. “그래도 상 받으니 좋다.”는 것이다.

요즘 세대로 치면 분명 공주병이 좀 있다. 그럴 수밖에. 멋있게 사는 것에 대해, 편하게 사는 것에 대해, 절차와 방식보다는 되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 그것이 좋다고 하는데, 절차와 기존 질서에 익숙한 이들에게 이씨는 당연하게 튀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그녀의 튐은 재밌게 말해 공주병으로 비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 이씨의 ‘되는대로 살자주의’가 그냥 살자가 아닌, 어떤 역사적 흐름의 한 줄기를 타고, 그 흐름에 몸을 싣고 가고 있는 것이라면, 이씨의 ‘되는대로 살자주의’가 예사롭게 들리지 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박 회장의 말대로, 국가 역시 그녀의 공적을 인정한 것이리라.

이씨를 아는 지인들은 이씨의 멋에 대해 ‘태평세월 여자’라는 호기어린 평을 하기도 한다. 이런 평가 이면에는 “남의 집 열 아들 안 부러운 딸”로서 자랑스러워하는 어머니의 든든한 지원이 있었다는 것 역시 이씨가 자랑하는 것이다. 

이씨가 구로공단 노동자들의 활동과 연결되어 사회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나, 정당 등에 인연이 되어 정당 교육 등에 참여하면서 사회활동에 가담한 이야기, 그 이전에 군무원으로서 일한 이야기와 그로 인한 에피소드 등은 일단 시간상의 이유로 보류했다.  

시상식은 오는 21일 워커힐 쉐라톤 호텔에서 개최되는 민주평통 상임위원회 50차 회의 시 의장(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친수(親受)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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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그레 2006-12-18 23:37:38
너도나도 민주화운동했다고 하는구나...이제는 누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