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참 고마우신 하늘이고 땅입니다.
밥은 참 고마우신 하늘이고 땅입니다.
  • 강찬호
  • 승인 2007.04.20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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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화가 이철수씨, 더불어 숲 초대손님으로.



▲ 더불어숲 초대손님, 이철수씨. '밥이라면 할말 있을 것 같아...'

판화가 이철수씨가 ‘밥’을 들고, 광명시평생학습원에서 진행하는 더불어 숲 월례강연장을 찾았다. 광명은 처음이고, 본인은 강연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란다. 그림쟁이다. 말 보다는 그림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화가인 만큼, 말의 부족은 이해해달라고 한다. 좀처럼 강연을 하지 않는 입장이지만, 밥에 관한 이야기라, 할 말이 있을 것 같아 광명을 찾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밥이라면, 할 말 있을 것 같아.
 
이철수씨는 그 동안 그려온 판화 그림들을 화면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그림은 밥에 관한 이야기들로 재구성 되었다. 밥에 대한 이야기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먼저 부모님의 결혼사진이 등장했다. 결혼식 장면만 놓고 보면, 당시는 그래도 살만한 집의 결혼식이었고, 그런 가정에서 자랐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부친의 사업이 망한 것이다. 그리고 어려워진 살림으로 겪을 고생을 했다. 힘겹게 살아본 이들이 남의 사정을 헤아릴 줄 안다. 가난.

그는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화가로서 살고 있다. 그리고 20여년 꾸준히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지으면서, 얻는 삶에 대한 깨달음은 작지 않다. 그의 그림 속에서는 농사를 지으며 얻는 깨달음의 메시지가 많다. 농사를 통해 ‘세상의 주인이 나’라는 깨달음을 얻기도 하고, 때로는 슬프고 절망적인 농촌의 현실과 그곳을 지켜가는 늙은 농민들의 삶을 마주한다.

20년 가까이 농사지으며, 세상의 주인은 나라는 사실을 깨달아.

이철수씨의 밥 이야기는 부모님 결혼과 농사지으며 사는 이야기에 이어, 다시 인생의 스승이자, 선배 그리고 형님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들을 만나면서, 거칠었던 그림은 다른 전환점을 맞이한다. 동화작가와 목사로서 깨달음의 삶을 소개하는 이현주 선생,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 자신의 주례를 서주기도 했던 이오덕 선생, 그리고 장일순 선생들과의 만남은 스스로가 ‘꽃’이 되어야 하는 이유와 가르침을 준 이들이다. 밥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 지를 가르쳐 준 스승들이다. 


그러나 이철수씨는 깨달음을 추구하되, 관념적 깨달음을 경계한다. 현실에 발 딛고 서 있는 깨달음이어야 한다. 선방의 깨달음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현실에 대한 발언을 담고 있고, 그것은 깨달음과 분리되지 않는 방식을 추구한다. 그래서 그에게 목격되는 현실은 그의 마음을 때론 바쁘게 하기도 한다. 공정한 분배가 없고, 더욱더 나빠지는 양극화 현상이 그렇다. 이라크 전쟁이 그렇고, 지금의 한미 FTA가 그렇다. 그리고 이런 핵심에는 자본이라고 하는 거대한 괴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직시한다. “다시 80년대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인가?” 이미 밥상이 세계화되었고, 이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자본의 논리에 대해, 이철수씨는 맘이 바빠진다고 말한다.

‘다시 80년대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인가?’ 강화되는 자본 논리에 마음 바빠지기도.

성찰 없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시대 자화상이 그에게는 안타깝다.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최상임에도, 그것을 개발하고 망가뜨리는 인간의 욕심이 안타깝다. 본인 역시 이런 자본의 추악함 때문에, 현재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다. 바빠진 것이다. 이철수씨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에 숲을 망가뜨리는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막아야 하고, 이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각박해지고, 자본의 힘이 공고해지는 때, 이철수씨는 ‘집’의 중요함을 말한다. 집이 곧 진지이고 보루라는 것이다. 집이 다정한 곳이고, 고요한 곳이다. 밥상을 대하면서, 밥이 곧 하늘이고 땅이다. 그의 이전 그림 ‘밥은 하늘입니다’가, 2006년도에는 ‘밥은 참 고마우신 하늘과 땅입니다’로 바뀌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이루고 있는 밥의 문제, 먹거리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한다. 과거에 비해 지금이 부유해져 가난을 벗어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은 또 다른 질의 가난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풍요 속에 가난. 우리 사회를 망가지게 하는 것이다. 밖에서 일하는 남편을 포함해, 불안하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다. 집은 이들이 머무는 곳이다. 이곳만은 물질로부터 자유로운 관계에 놓여 있어야 하는 곳이다. 집과 밥상머리는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마음을 갖자고 한다. 개인적 가난, 사회적 가난을 향해. 각박해진 세상을 향해. 더불어 텅 비어 있는 숲을 만들자고 한다. 향기로운 차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을 갖자고 한다.

더불어 텅 빈 숲이 되었으면....깨달음 주는 그림 그리고자.

이철수씨는 저항의 그림을 그리던 시대를 넘어,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 생명을 지키며, 따뜻하게 세상을 보듬자고 말한다. 선가의 전유물이 아닌, 일반인들의 삶 속에서 울릴 수 있는 마음공부를 하자고 말한다. 그의 그림 역시 이러한 깨달음, 울림이 있는 그림이 되기를 희망한다. 이런 이유로 그의 그림은 하소연의 손짓을 하기도 하고, 조용히 관조하고 품어 안기도 한다. 그리고 강하게 발언을 하기도 한다.

“목소리 높이고 싶은데 누르느라 고민이 많다.” 각박한 현실에서 깨달음을 찾고자 하는 그의 고민이다. 그리고 잠시 그림을 놓더라도, 이윤만을 쫓는 자본의 악령에 맞서 마을을 지키는 싸움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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