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깨치면서 새롭게 세상을 만났다.
한글을 깨치면서 새롭게 세상을 만났다.
  • 강찬호
  • 승인 2007.05.28 10: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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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복지관 광명학당 서재홍(80) 어르신을 만나다. 


너무도 살기 어려워 배울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했고,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이제 먹고살만해진 세상이다. 자식들이 성장하고 출가하고 도시에서 자리 잡았다. 사는 데 바빠 배움의 시기, 기회를 놓쳤지만 지금이라도 늦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배움을 시작했다. 한글을 제때 익히지 못해 간판을 읽지 못하고 은행에 가도 답답했다. 교회에 가서도 찬송가, 성경책을 펼쳐도 함께 따라 부르거나 읽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볼까, 혹시나 알까 노심초사 했던 심정이야 말해 무엇 할까. 전시에 나간 남편에게서 온 편지에 대해 답장을 보내기 위해 친구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미안해서 친구 집 일을 해 주기도 했다. 배우지 못한 것은 한이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저절로 나온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한 숨이 절로 나온다...한글 배우고 만난 세상은 새로운 세상.

서재홍 어르신은 이렇게 가슴에 맺혀 있는 ‘배움의 한’을 지난 광명시문화학습축제 문해백일장에 참여해 글로 표현했다. 그리고 대상을 받았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어렵게 살았던 경험, 배우지 못해 겪었던 어려움을 글로 담았다. 글로 쓰다보면 지난 시절 맺힌 한들은 조금씩 사라지리라. 한글을 깨치면서 새롭게 세상을 만났다. 그것은 너무도 큰 기쁨이었다.

서재홍 어르신은 올해 팔순이다. 광명종합사회복지관 광명학당에서 5년 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뭘 쓸려고 해도 벌벌 떨려...힘이 없어...관장님이 그래도 다녀야 한다고 해서 지금도 다니고 있어요. 옛날 못 배웠던 시절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해져” 말을 이어가는 중간 중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온다. 그 심정을 누가 알겠는가. 지금도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릿속에서 금방 잊어버린다. 나이 탓이다. 같이 한글을 배우는 동료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운 심정이다. “젊은이들은 일류처럼 멋있게 입고 다니는데, 왜 옛날에 못 배우고...” 팔순의 나이에 60대는 젊게 보인다. 마치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없는 시골 농촌에서 60대가 청년인 것과 같다.

문해백일장에서 대상을 받은 소감을 물었다. “글자 똑똑한 것 아닌데, 어휴” 다소 민망한 듯 표현하지만, 그래도 자랑거리는 있다. 스스로 흐뭇하다. 군대 간 손주에게 상 받은 소식을 편지로 써 보냈는데, 부대에서 이 사실을 안 소대장이 자랑스러워하며 손주에게 맥주도 사줬다는 것이다. 칠순의 나이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이제 누구에게나 글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배우면 알 수 있구나. 은행가도, 차 타러 가도 답답했는데 이제는 너무 좋다. 어두운 눈 뜨게 해준 복지관에 너무 감사하다. 지금 생각하면 옛날 어찌 살았는지, 좋은 것 한둘이 아니다.”

글자 똑똑한 것 아닌데, 어휴~.

서재홍 어르신은 광명에서 37세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다. 예산에서 살다 서울을 거쳐, 공기 좋고 바람 좋아 광명으로 왔다. 지금은 사람이 많아져 광명이 많이 변했지만 아직은 광명이 살기 좋다. 매주 2회씩 광명학당에 다니는 것 외에도 복지관에서 빵 만들기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20명이 10명씩 교대로 빵을 만든다. 예전에는 빵을 만들어 파는 봉사까지 했지만, 지금은 여건이 나아져 빵을 만드는 일만 한다. 빵을 만드는 날은 새벽에 복지관에 온다. 복지관 직원들보다도 이른 시간에 와서, 조리대 등 준비를 한다. 일을 마치고 바로 한글을 배운다.

슬하에 6남 2녀 8남매 자녀를 두었다. 안타깝게도 넷째 아들이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해 있어 주말이면 아들 병수발을 한다. 복지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빵을 만들다보면 가정사 실음도 잠시 잊을 수 있다. 집에서도 읽고 쓰는 재미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들으면 바로 잊어버리다보니, 주2회에서 주3회로 배우는 시간을 늘려야지 생각다 해보지만 즐거운 욕심일 뿐이다. 한창 한글을 배울 때는 새벽까지 공부했다. 열정이 있었고 꼭 배움의 한을 극복하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요령도 생긴다. “요즘은 싫어질 때도 있다. 뭘 좀 안다고 (웃음)” 서재홍 어르신은 대부분 부모들이 그렇듯이 “돈이야 굶지 않을 정도면 되고 건강이 제일”이란다.

“참 살기 힘든 때가 있었다. 밥 그릇 숟가락 다 빼앗기고 나무 숟가락으로 밥 먹던 시절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벼 공출에 처녀 공출까지도 해가는 기막힌 일제시대였다. 처녀공출이란 소문에 겁을 먹은 부모님은 열일곱에 나를 급히 출가시키고 여자들은 살림만 잘하면 된다는 친정아버지 때문에 글자 한자 배우지 못하고 쫓기듯 간 시집살이는...지금까지 살아온 팔십평생 중 가장 기뻤던 일은 복지관에 다니면서 한글을 배운 것이다...” - 2007년 광명문화학습축제 ‘문해학습글쓰기대회’ 서재홍 어르신 참가작 ‘배움의 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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