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를 읽고
‘돈 주앙의 잃어버린 일기’를 읽고
  • 정미영
  • 승인 2007.07.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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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실은 항상 환상보다 더 끌리는 법이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종교재판소의 마녀사냥으로 15세기에서 17세기까지 300여년  동안 희생된 사람은 3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백만 명에 달할 거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 일기는 1593년 씌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필리페 2세가 다스리던 스페인은 역사상 최고의 큰 제국이었으며, 왕의 명령에 따라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입되는 모든 금과 은은 세비야 항구를 통해서만 들어왔다.  세비야는 막강한 부와 퇴폐성 때문에 스페인의 바빌론으로 불렸다.

주앙은 귀족과 창녀 사이에서 태어나서 수녀원 헛간에 버려졌다.  그러나 신의 자비와 수녀들의 사랑으로 자란 주앙은 테레사 수녀와의 사랑 때문에 수녀원에서 쫒겨난다.

그 후 도둑의 소굴에 들어간 주앙은 그 뛰어난 실력 때문에 명성을 얻게 된다. 귀족들의 집을 털어 가난한 형제들과 나누는 삶은 주앙에게 기쁨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페드로 후작을 알게 된 주앙은 페드로 후작의 정치적 야망에 필요한 첩자활동을 하게 되며, 페드로 후작으로부터 검술과 ‘난봉꾼’으로서의 삶을 배우게 된다.
페드로 후작은 주앙을 귀족 ‘돈 주앙’으로 바꾸어주는 은혜까지 베풀어준다.

  # 여자의 욕망

종교재판관 이냐시오 수사는 한때 돈 주앙의 스승이었다. 그는 종교재판관으로서 이 잔인한 시대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다. 신의 뜻을 행한다는 확신으로 이단을 가려내는 그는 어쩌면 가장 악마를 숭배하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귀족과 성직자들은 그들의 아내와 딸들의 정절을 강요한다. 그러나 자신의 딸 방에 침입한 난봉꾼을 보고 소리를 지르는 귀족은 결코 없다. 그들에게 관심은 ‘명예’와 ‘부’일뿐 사실 딸의 정절 따위는 중요치 않다. 그 정절은 단지 또 다른 부유한 귀족과의 결혼을 약속할 수 있는 것 일뿐이다.

주앙은 말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어쩌면 욕망이 아닐까?
공주의 침실까지 침입한 돈 주앙의 대담함과 그에게 쉽게 열리는 침실문의 비결을 주앙은 이렇게 얘기한다.
-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재산이나 직위나 외모 덕분이 아니다. 유일한 이유는 바로 여자들의 억누를 수 없는 욕망 때문이다. 그것은 왕이나 교황의 권력보다 강하고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이다.

그 어떤 시대건 남자들은 여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식민지 개척으로 많은 남자들이 죽어버려 여성들의 절반이 과부이거나 남편에게 버림받은 시대, 시대의 불한당 같은 교황청이 인간의 욕망마저 이단과 마녀사냥으로 억누르는 위선의 시대.

돈 주앙은 시대가 낳은 사생아일 뿐이다.
그 어떤 시대건 남자들은 여자들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 남성은 권력을 통해 지배하려 했을 뿐 여자의 욕망을 그 자체로 자유로이 사랑한 적이 없다.

돈 주앙의 비결은 어쩌면 이 단순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 주앙이 다녀간 침실의 여성들은 비로소 자신의 아름다움과 욕망을 깨닫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알게 된다. 그 어떤 여성도 그를 거부할 수 없고 사랑에 빠져버린 건  당연하다. 그러나 돈 주앙은 단 한차례의 사랑만 나눈다. 왜냐하면 ‘난봉꾼’이 사랑에 빠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아나 아가씨

인간은 죽을 때가 되어서 죽는 게 아니라 자신이 죽을 때라고 믿는 때 죽는다는 말이 진실일까?
주앙은 말한다.
-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남자는 목적을 가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삶은 키 없이 항해하는 배와 다름없다.
- 인생에서 내가 발견한 목적이 무엇이든, 그것은 천국의 영광보다 더 환히 빛날 것이고 세상 사람의 그 어떤 명예보다 더 소중할 것이다.

그러나 신은 늘 한 인간의 목적에는 관심이 없다. 신은 장난꾸러기고 인간을 시험하기를 좋아한다. 주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나 아가씨는 명예와 딸의 정절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기는 시대의 가치에 충실한  장군의 딸이다. 아나 아가씨는 사랑이 없는 결혼을 하느니 차라리 죽어버리겠으며, 결혼한 후에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기는 그런 여자는 되지 않겠다고 말하는 매우 지적이고 아름다운 아가씨다.

비극은 돈 주앙에게 아버지나 다름없는 페드로 후작이 이 아가씨를 사랑해서 비열한 방법으로 약혼을 해버렸고, 여자의 욕망을 이해하고 영혼의 자유를 인생의 목표로 삼았던 돈 주앙도 이 아가씨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사랑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 없으며, 패배를 인정할 수도 없다는 이 도도한 아나 아가씨가 매력적인 건 사실이지만 돈 주앙이 사랑에 빠진 건 정말 유감이다.

페드로 후작과의 의리와 아나 아가씨를 사랑하는 마음의 갈등으로 돈 주앙은 괴로워한다.
돈 주앙은 사랑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사랑의 환상이 현실의 육욕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사랑은 얼마나 이상한 것인가? 사랑은 왜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을 내리고, 왜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는 걸까?

돈 주앙의 제자이자 세비야 최고의 고급 창녀 알마가 육욕이 사랑따위보다 훨씬 우위에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을까?

#결혼의 비밀

쾌락의 폭과 깊이를 잘 알고 있는 여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처녀나 자신의 신비로움을 잘 모르는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것과는 다르다. 알마는 남자의 욕구를 이해하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너무도 잘 하는 세비야 최고의 고급 창녀다. 그러나 돈 주앙은 ‘난봉꾼’으로서는 해서는 안되는 배반, 즉 사랑을 나누는 현재의 여자에게 충실하지 못하고 온통 머릿 속에서 아나 아가씨만을 생각하는 혼란을 겪는다.

알마는 말한다. 아직 키스도 못한 사랑이라면 첫 키스를 하는 순간 사라져 버릴 허망한 열정이라고.....
페드로 후작을 배반할 수도, 아나 아가씨와의 사랑을 이룰 수도 없는 돈 주앙은 결심한다. 신세계로 가리라고.... 아나 아가씨가 없는 세계로....

돈 주앙이 머물렀던 도둑의 소굴에서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는 술집의 주인 마누엘은 돈 주앙에게 결혼의 비밀을 말해준다. 어떻게 한 여자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 내 아내에게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 아내의 웃음과 눈물을 통해 그들이 느끼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느낄 수 있거든. 대부분의 남자들은 한 여자의 일부분만을 맛보지. 하지만 여자의 몸과 마음, 영혼을 진실되게 아는 것만으로도 인생은 충분히 만족스러워질 수 있어.
 
돈 주앙은 신세계로 떠날 수 없었다. 먼저 종교재판소의 병사들과 재판관이  그의 집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초록색 종교재판소 깃발에는 화려한 왕관과 올리브 나뭇가지와 검이 있는 십자가 상징이 그려져 있다. 올리브 나뭇가지는 자비를, 검은 정의를 상징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비는 손톱만큼도 없고, 정의는 폭력과 박해에 지나지 않는다.

종교재판소의 모진 고문을 아나 아가씨의 환상으로 견뎌내며 돈 주앙은 이냐시오 수사에게 말한다.
- 당신은 믿음을 가장하여 진실을 숨겨왔습니다. 쾌락과 정열을 부정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당신과 당신들의 종교 단체가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하고 모든 여성들의 욕구에 죄라는 오명을 씌우는 것은 죄악입니다.
- 마리아의 여성성과 모든 여자들의 욕망을 신성하지 않은 것으로 만든 것은 바로 당신들과 당신들의 교리입니다. 욕망을 몰아내야 하는 악마를 만든 것 당신들입니다.

# 종교재판소

돈 주앙이 스페인의 공주까지 유혹했던 못말리는 바람둥이였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이 일기는 위조된 게 아니라는 학자들의 결론이 있었다고 한다.

일기의 마지막 부분은 한편의 영화보다 극적이다. 돈 주앙은 종교재판소에서 탈출해 아나아가씨를 찾아간다. 그러나 사랑이란 얼마나 작은 오해에도 쉽게 흔들리는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오해와 알마와의 마지막 키스를 사랑으로 오해한 아나 아가씨는 돈 주앙에게 칼을 겨눈다.
 
수많은 죄를 지은 이냐시오 수사는 돈 주앙과의 결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온몸이 썩는 고통을 겪게 되고, 내가 가질 수 없다면 그 누구도 가질 수 없다고 페드로 후작이 아나 아가씨에게 겨눈 총의 총알은 돈 주앙의 심장에 박힌다.
 
뒤 늦게 울부짓는 아나 아가씨의 슬픔은 부질없고, 돈 주앙의 죽음을 괴로워하는 페드로 후작의 후회도 너무 늦다.
 
아나 아가씨는 수녀원으로 가고 이 일기의 마지막을 완성한 돈 주앙의 충실한 하인 크리스토발은 이 일기를 이제는 평범한 남자의 아내가 된 알마에게 맡긴다. 돈 주앙의 일기가 더 이상 이단이 아닌 시기까지 잘 숨겨달라는 부탁과 함께.
 
알마는 웃으면서 말한다. 그러한 시기는 영원히 오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그녀와 그녀의 자손이 대를 이어 이 일기를 안전하게 지키겠노라고 약속했다.
 
설마 우리가 본 이 소설이 그 일기일까? 그것은 확신할 수 없다. 돈 주앙은 어쩌면 그저 파렴치한 바람둥이였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 시대를 견디려면, 미친 광기의 시대, 더구나 종교와 정의, 선이라는 명분을 얻어 잔혹하게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시대를 견디려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언가 자유로운 영혼 하나쯤 필요로 하게 된다. 그래서 대리만족을 얻고 견디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단지 빨강 머리를 가졌다는 이유로 화형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그 시대는 끝났고 이젠 더 이상 돈 주앙의 일기가 이단이 아닌 게 기쁠 따름이다.
 
물론 그렇지만 나는 의혹을 멈출 수 없다. 지금은 다른가?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다름, 영혼의 자유로움, 인간의 욕망을 이해하는가?
 
신의 뜻을 행한다는 오만함으로 선·악을 구분해버리는 오만한 종교재판관은 더 이상 없는가? 
 
지금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없는 것은 엽기적이고 잔인한 고문도구일 뿐, 여전히 수많은 매스컴, 종교단체, 그리고 이념들은 아직도 종교재판관으로 남아있다는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 작가에게 던지는 질문

작가가  나보고 거참 말 많은 아줌마라고 해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모든 이의 인생처럼 돈 주앙의 인생 또한 바로 돈 주앙의 것일 뿐이다. 작가는 작가의 말을 통해 결혼의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한 여자를 통해 모든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한 여자는 한 여자일 뿐이다. 수많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는 삶보다 한 여자와의 결혼을 이루는 삶이 더 위대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돈 주앙이 사랑한 아나 아가씨도 한명의 여자일 뿐이다. 세상의 수많은 여자 중에 한명일 뿐이고, 돈 주앙이 사랑하기로 결심한 한명의 여성일 뿐이다. 위대한 사랑은 있지만 더 위대한 여성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이란 무엇을 선택 했는가로 결정된다. 그리고  무엇을 선택했던..돈 주앙이 바람둥이로 남지 않고, 한 여자를 사랑했다고 해서 더 위대한 삶을 선택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돈 주앙은 그저 조금 지쳤을 뿐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여성의 침실을 드나드는 삶에, 시시콜콜히 돈 주앙을 노리는 종교재판관들의 터무니없는 위선에, 수많은 비밀을 간직한 채 사랑에 굶주린 귀부인들에, 끝없는 야망 때문에 인간성을 잃어버린 페드로 후작에게, 명예 때문에 너무도 쉽게 목숨을 내놓은 귀족들의 허영에..
 
그래서 죽을 줄 알면서 불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아나 아가씨를 사랑하기로 결정해버린 건지도 모른다.
 
살아있음이 반드시 죽음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고 생각할 만큼 지친건지도 모른다.
결혼의 신성함을 지나치게 강조한 마지막 부분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2007년, 더 이상 돈 주앙이 필요치 않을 만큼 여성들은 존중된다. 그런가?

그러나 슬픈 눈빛을 간직한 남자!
삶을 사랑해야 하고, 눈물보다는 웃음으로 신의 창조물을 즐겨야함을 이해하는 남자!
더 이상 잃을게 없는 체념과 절망을 아는 남자!
여자가 뿌린 향수에서가 아닌 진정한 여자의 향, 우주와 생명의 비밀이 간직된 여성의 향기를 사랑할 줄 아는 남자!
그런 돈 주앙 같은 남자가 있다면 소주에 삼겹살이라도 함께 먹으면서 인간 영혼의 자유로움에 대해 논하고 싶다.

그리고 한 가지 묻고 싶다.
매혹적인 창녀 알마 보다 세상물정 모르는 고집쟁이 아나 아가씨가 좋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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