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른다’
  • 정애숙
  • 승인 2007.07.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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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애숙(광명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장)

제12회 여성주간을 맞이하여 다양한 행사가 진행 되었다. 여성주간의 의미와  '시민참여 형사모의재판' 또한 다양한 행사 중에 여성주간을 빛낸 일등공신임을 자부한다.

지난 7월 3일 가정폭력특례법 개정안이 조용히 내용도 없이 통과 되었다. 이는 가정폭력피해자의 요구나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가정폭력 피해자의 고통을 무시한 껍데기 개정이라고 한국여성의전화연합에서는 성명서를 내고 규탄대회를 한 바 있다.

이번 모의재판은 일상 속에서 은폐되어 있는 가정폭력의 현실을 드러내고 가정폭력근절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기반을 확립한다는 목적으로 진행됐다. 또 한 가지는 그동안 판사의 가치관이나 사회적인 통념으로 많은 부분 판단되어 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내년부터 사법부가 배심원제도를 도입하기로 했고, 이에 우리 광명시민들을 배심원으로 모시고 미리 배심원 제도를 체험해 보고자 하는 중요한 취지가 있었다.

우리는 가정폭력을 자주 목격하는 만큼 가정폭력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 심각성은 일상적인 관계 속에서 외면되고 있다. 끔찍한 결말이나 극단적인 사건이 일어난 경우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모의재판을 통해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목숨을 건 일상의 이야기를 통하여 가정폭력 근절을 위한 우리의 의지를 다짐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이번 모의재판에 나온 출연자들은 전문 연극배우가 아닌 광명여성의전화 부설 가정폭력상담소의 상담원인 자원 활동가들이었다. 참여한 모든 시민들이 전문배우가 아닌가 하고 의심할 정도로 모의재판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인공들이다.

또한 모의재판을 보고 그 자리에 배심원으로 참석한 130여명의 배심원단 역시 짧은 토론시간 동안  다양한 토론 내용을 발표함으로써 정말 훌륭한 배심원의 역할을 해냈다. 늦은 시간까지 열심히 연습한 상담원과 귀한 발걸음을 한 만큼 진지하게 토론해 준 배심원단들의 멋진 활약이 성공으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광명여성의전화 가정폭력상담소에서는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겪는 다양한 문제들을 상담을 하고 있다. 그 전체 상담건수 중에 가정폭력피해사례는 50%가 넘는다.

모의재판에서 최종변론을 했던 변호사의 말처럼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지속적인 가정폭력을 당하였고, 아버지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지금은 살인자이지만 그 이전에 피해자”였음을 재판장에게 호소하고 있다.

가정폭력특례법이 시행된 지 올해로 10년째이다. 더 이상 가정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범죄로 규정되었음에도 우리 사회에서 가정폭력은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
모의재판에서 피고인들도 수차례 경찰에 신고를 하였지만 그때마다 ‘가정 내 문제’라고 무시되었다. 더 이상 국가도 개인의 생명을 보호해 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하고 놓칠 수 없었던 내용은 배심원들의 평의 내용이다. 모두 10개 조로 나누어 10명의 배심원 대표들의 발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7개조의 배심원단이 모두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무죄’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사체손괴에 대한 부분에서만 형량을 내리는 분위기 이였다. 

이 날 눈에 띠게 재미있었던 내용은 실제 배심원 개인들의 경험담 이야기였다. 실제 남편의 첫 폭력이 있을 때 경찰에 신고를 했는데 20여분이 지난 후에야 경찰이 도착하였고, 가정 내 부부싸움이니 조용히 처리하라는 충고를 듣게 되어 항변했다는 내용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남편의 첫 폭력에 적극적인 대처를 한 결과 지금은 폭력이 없음을 털어놓아 배심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또한  피고인들에게 형을 내림과 동시에 이 사건은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강조하는 배심원 대표도 있었다. 이렇게 배심원단의 무죄라는 결론에도 불구하고 이날 모의재판에서 재판장은 중형을 내리고 만다. 이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의 사법부는 남성 중심적임을 시사하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편의 폭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작은 폭력을 방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폭력은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므로 처음 시작될 때부터 경찰의 도움과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모든 폭력은 피해자가 폭력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보일 때만이 근절될 수 있다. 그렇지만 맞지 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때리려고 마음먹은 사람을 당해 낼 수는 없는 일이기도 하다. 경찰의 적극적인 대처와 적절한 조치가 절실히 요구된다.

내용면에서는 아직 많은 부분 부족하지만 성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어느 정도 초·중·고에서 정착되어 가고 있는데 가정폭력 예방교육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가정폭력 예방교육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되어 있어 본회 가정폭력상담소에서는 양성평등적인 성교육은 물론 가정폭력 예방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양성평등적인 성교육과 폭력예방교육은 절실히 필요하다.

오랜만에 여성주간에  행사다운 행사를 진행하였다. ‘시민참여 형사모의재판’ 이 그것이다.

2007.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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