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으로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 같은 여성 활동가!
지역으로 저절로 굴러 들어온 호박 같은 여성 활동가!
  • 강찬호
  • 승인 2007.09.07 11: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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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여성의전화 활동가 한윤정씨

아름다운가게와 희망공작소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박원순 변호사는 인터넷신문 프레시안에서 주최한 강연에서 지역을 ‘블루오션’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대학을 졸업해도 갈 직장이 적당하지 않은 현실에서 기업만을 바라 볼 것이 아니라 발상을 전환해 지역을 주목해보라는 것이다. 지역에는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불모의 땅들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역 시민사회의 다양한 일자리 창출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역의 현실이 젊은이들을 지역으로 향하도록 할 만큼 여건이 돼있는지는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경제활동 인구의 다수가 서울로 출퇴근하는 광명시의 현실에서 광명이 지역이 될 수 있을까, 지역성이 있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있지만 광명을 지역으로 알고, 광명 지역에서 사회활동을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활동 영역이야 다양할 수 있지만, 시민사회 영역에서 지역 활동을 하는 이들로 국한해 본다면 그들은 지역 활동가들이다. 광명지역에서 자신의 직장을 발견하고, 자신의 활동 근거지로 삼는 이들이다. 많은 것은 아니지만, 젊은 활동가들도 종종 있다. 특히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역에서 일하겠다며 찾아오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그래서 광명여성의전화 한윤정씨(27)의 경우는 더욱 눈에 띤다.

그녀가 지역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도 벌써 올해로 5년째다. 그녀는 여성단체 활동가, 즉 여성활동가이다. 대학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사회학과 전공과 함께 평소 관심을 두고 공부를 해왔던 여성학과 관련해 우연하게 여성단체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대학 마지막 학기를 휴학하고 그 단체로 적을 옮겼다. 그곳이 광명여성의전화다. 지역에서 일꾼을 만나기도 쉽지 않고, 더욱이 시민단체라면 경제적으로 보상은 적은 곳이기에 대학 졸업을 앞둔 이들과의 인연을 맺기는 더욱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호박이 덩굴로 들어왔다. 한윤정씨는 오자마자 이 단체에서 주관한 청소년들 여름방학 캠프인 ‘딸들의 캠프’에 참여하면서 지역과 여성단체와 인연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단체에서 1년의 시간을 여성 활동가로 보냈다. 1년 후 한윤정씨는 다시 학교로 복학한다. 졸업을 위해 한 학기가 남았기 때문이다. 학기를 마치고, 그녀가 다시 일하던 여성단체로 돌아 올 것인가? 주변은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윤정씨는 졸업 후 당연하게 다시 이 단체로 돌아왔다. 졸업 후 다시 온 것이므로 정식 취직인 셈이다. 교사를 권유한 부모님들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문제는 자신의 방식, 자신의 고집(?)으로 해온 둘째딸임을 알기에 부모님의 권유는 권유로만 끝났다.

한윤정씨는 참하고 착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여성단체 활동가로써 당찬 이미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이런 이미지 역시 편견일 뿐이다. 이런 주관적 인상에 한 가지를 덧붙여 본다면, 그녀는 강한 인상의 소유자가 아니다. 다소 약해 보인다. 실제로 약한지는 모를 일이다. 인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가 광명여성의전화에서 주로 맡은 일은 회원관리 사업이다.

통상 지역에서 마주쳐야 하는 회원들은 결혼을 한 이들이고, 자신보다 연배가 많은 이들이 대다수다. 그런 이들을 회원으로 만나야 하는 한윤정씨에게 이 일은 만만치 않다.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많이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녀가 지역에 머물러 주류가 아닌 비주류의 ‘일탈’적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려서부터 가져왔던 생각, 즉 남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것,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성문제로 이어지는 활동과의 인연 때문이다. 또 활동공간에서 이뤄지는 편한 만남과 인간적 만남이 일상을 채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자신의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아집과 같은 모습을 발견해가며 가다듬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곳을 한 마디로 정리한다. “나의 성장을 도와주는 고마운 곳” 그리고 때론 “친정 같은 곳”으로 ‘편한 곳’이다. 



▲ "회원들이 활동할 만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교육문제다. 평준화 해결 됐으면..."

그런 그녀에게 힘든 일은 없을까? 그녀는 5년차 지역 여성 활동가로서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라면 부딪치는 고민을 하고 있다. “지역특성상, 회원들이 일 할 만하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4~5년 역량을 쌓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갈 때쯤이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간다. 교육문제와 주거 문제가 주 이유다. 평생학습 등 좋은 여건이 있음에도 평준화가 안 돼 이사를 가는 경우들이 많다. 회원들이 모이면 주로 아이들 이야기를 한다.” 회원 활동가들의 재생산 구조가 시민단체 활동에서 필수적인데, 회원들의 잦은 이사는 그 만큼 상근활동가들에게 어려운 과제다. 지역 특성이니 이해를 해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광명여성의전화. 지역에서 여성문제와 여성 인권문제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민단체, 여성단체이다. 가정폭력, 성폭력 대처 활동부터 양성평등 예산 집행과 정책의 감시 활동, 여성상담가 양성, 청소년양성평등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하는 곳이다. 한윤정씨가 생각하는 한국사회 여성문제는 무엇일까?

“이미 한국사회 여성문제에 대한 이론과 해결책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여성학은 학문으로서보다 삶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가족 안에서 불평등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론은 몰라도 이미 많은 것을 실천하고 있는 회원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저 자신이 머리 속에 있는 이론의 1%도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딜레마입니다.” 그녀 역시 자신에게 내재돼있는 가부장제의 잔재들을 보게 된다고 한다. 그럴 땐 당혹스럽다고.

이런 문제들에 대한 고민을 혼자 가지는 것이 아니라 회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풀어가는 방식 역시 중요하다고 그녀는 말한다. 그래서 회원들이 참여하는 교육과정이 끝나면 후속모임으로 소모임을 만들어 공부를 하면서 각 자의 삶을 서로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회원 사업이지만 이들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삶 역시 돌아보는 것이다.

이 때문이지, 한윤정씨는 회원사업에 있어 회원 간에 인간적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사업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지만, 회원들 간에 결속이 없다면 사업은 공염불이기 때문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회원 사업에 대해 노하우도 조금씩 쌓인다. 그것은 회원사업에 대한 매뉴얼의 증가라기보다는 회원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자신감이자 적극성에 대한 동기부여 같은 것이다. 해도 해도 눈에 잘 띠지 않는 것이 회원사업의 특성이기에 은근과 끈기 역시 회원사업에 필요한 자질이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회원사업에 대해 내부원칙 같은 것도 단체 안에서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무분별하게 회원들을 확장하는 양적 팽창 방식보다는 회원 한명 한명을 늦더라도 내실 있게 확보해가는 방식이다. 그래서 가능한 단체에서 진행하는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이들을 회원으로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단체를 외부에 알리는 홍보는 해도 해도 모자란 것 역시 현실이지만.

5년 전 한윤정씨는 자신의 대학교에서 만난 여성학 강사와의 인연으로 광명여성의전화와 인연을 맺었다. 사회학이 전공이고, 여성학은 관심 분야로 학교 내 여성학회 등을 통해 공부를 해왔던 것이 현장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그녀의 선택에 대해 주변은 놀랍다는 반응이지만, 자신은 편하게 이 길로 왔고 지금까지도 이 길이 좋다고 말한다. 그리고 5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지역에서, 여성단체에서의 5년을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는 요즘이다.

박원순 변호사의 말처럼 지역을 선택한 이들에게 지역은 블루오션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또 지역도 젊은 일꾼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있어야 한다. 한윤정씨처럼 호박이 스스로 굴러 들어오는 일이 그리 흔한 일은 아니기에. 한윤정씨의 삶이 지역에서 새삼 눈에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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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옥 2008-01-07 10:16:10
아름다운 그녀, 한윤정..
광명의 거주자도 아니면서
불철주야 광명을 위해 애쓰는 內柔外剛의 인물이지요.
하여, 그녀가 존재하는 여성의 전화는 더욱 빛이 납니다.
한윤정선생님,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