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떠난 지난 4년, ‘산꾼’으로 변모한 이재흥 전 의장.
정치 떠난 지난 4년, ‘산꾼’으로 변모한 이재흥 전 의장.
  • 강찬호
  • 승인 2008.01.09 19: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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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말라야 칸첸중가 원정길에서 지난 99년 촬영 중 사망한 KBS 촬영팀 추모비 앞에서.

한국방송 KBS에서 다큐멘터리 '산'을 금요일 저녁 방영하고 있다. 지난 4일 히말라야 해발 8천고지 중에 하나인 칸첸중가를 오르는 클린 원정대가 2부작으로 소개됐다. 이날은 1부가 방영됐다. 그리고 그 화면 안에는 낯선 산악회 이름이 자막으로 등장했고, 눈에 띠는 인물도 등장했다. ‘광명산악회’ 이름이 그것이고, 전 광명시의회 의장을 지낸 바 있는 이재흥씨가 11명의 원정대 일원으로 화면에 비쳤다. 9일 이재흥 전 의장을 만나, 히말라야 원정대에 오른 계기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과거 불명예스럽게 의장직을 물러나야 했던 시간을 뒤로 하고 지난 4년 동안 산과 함께 살아온 삶과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이재흥 전 의장은 많이 변했다. 새로운 길을 찾아 과거와 단절을 시도했고, 변화를 시도했다. 그리고 그 결과 히말라야 산을 오르는 인연을 맺었다. 산은 그에게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바위에 미끄러져 굴러 떨어지는 질곡의 인생 여정을 온전하게 보여줬다. 산과 인생이 따로 있지 않음을 알게 해준 것이다.

그는 36살에 시의회 초선의원을 거쳐, 재선, 삼선 의원 그리고 시의회 부의장과 의장직을 맡았다. 지역정치에서 수직 곡선을 그리며 나름대로 잘나가는 시절이 있었다. 투표에서 지지 않았던 행보는 스스로를 거만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낭패를 봤다. 그리고 불명예스럽게 의장직과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다. 자신의 오만과 거만이 빗어낸 결과에 대해 이재흥 전 의장은 스스로 부끄러웠다. 대인기피증에 가까운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광명을 떠나야 할 것인가? 농촌으로 내려갈까?”하는 고심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산을 만났다. 아니 “산으로 도피했다.” 사람을 피해 도망간 산은 그를 품어 주었다. 



▲ 오랫만에 만난 이재흥 전 의장은 진솔하고 담담하게 산과 맺은 인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산은 그를 산악인으로 변모시켰다. 그리고 산악인으로서 4년의 세월은 그를 전문 산악인, ‘산꾼’으로까지 변화시켰다. 그는 전문 산악인이 되기 위해 국내 굴지의 등산학교를 다녔다. 전문산악인의 길은 새로운 인연을 소개했다. 산악회 ‘광명산사람’의 운영자인 그는 전문 산악인들의 모임에 참여했다. 그 모임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엄홍길 대장, 한왕룡 대장, 박용석 대장을 만나게 됐다. 식객의 저자인 허영만 만화가, 드라마 작가 등 유명세를 타는 산악인들과의 만남도 이뤄졌다. 이중 한왕룡 대장과의 인연은 더욱 각별해졌다.

히말라야 클린 원정대 참여 역시 한왕룡 대장과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클린 원정대를 제안하고 꾸리는 이가 한왕룡 대장이기 때문이다. 클린 원정대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의 왕래로 늘어가는 쓰레기는 골칫거리로 남아 있다. 산악인들은 이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조금이라도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클린 원정대가 나선 것이다. 이들은 히말라야를 올라 등산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를 줍는다. 클린 원정대가 칸첸중가 쓰레기 수거에 나선 것 역시 그 코스의 어려움으로 사람들의 접근이 어려운 만큼 쓰레기가 방치돼있다는 판단에서다. 오는 4월 이들은 칸첸중가에 이어 히말라야 8천미터 이상의 14고지에 속하는 시샤팡마와 초오유 2개 고지를 클린 원정대로 오를 계획을 갖고 있다. KBS 산 다큐멘터리 제작진은 칸첸중가에 이어 이들을 취재할 계획이다.



▲ 히말라야 고지 중에 한 곳인 아일랜드산 정상에서.

지난 4일 방영된 칸첸중가 클린 원정대는 5,200미터 베이스 캠프가지 올라가 자신들의 임무를 마쳤다. 지난 해 9월말 출발해 10월말에 돌아오는 1개월간의 여정이었다. 쉽게 사람들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코스의 험난함을 겪는 것도 벅찬데, 쓰레기 줍기와 촬영 협조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아직 4월 등반을 결정하지 않았지만 8천미터 히말라야 고지를 올라보겠다는 것은 산악인으로써 그에게 다가오는 커다란 유혹이자 꿈이다. 이미 유럽 최고봉인 러시아 엘브르즈 등반을 했고, 히말라야도 세 차례나 오른 그이기 때문이다. 해발 6,300미터 고지까지는 올라봤다.

히말라야를 오르내릴 정도로 산악인으로서 그는 프로가 돼가고 있지만, 처음 그가 산에 발을 디딜 때는 심각한 초보였다. 지역 정치인의 길을 뒤로 하고 구름산을 오를 당시 그는 7차례나 쉬어야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몸이 불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이제는 “구름산은 보건소 언덕”이라며 웃음을 짓는다. 그러면서도 산악인의 면모를 유지한다. “그러나 산악인은 어떤 산도 깔보지 않는다. 제 각각 산에 대해 존경을 보낸다.”

수 천 미터에 이르는 산의 고도만이 산 등정의 어려움을 표시하는 것도 아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산이라도 해도 그 지형으로 인해 산악인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경우도 있다. 올해 1월 그는 지난 해 실패한 일본의 3,190미터 북알프스 산을 다시 오를 계획이다. “겨울 등반으로는 난코스 중에 난코스로 알려진 산”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산과 맺은 인연, 그리고 산을 오르내리며 돌아 본 자신에게 정치는 무엇인가. “산과 정치를 선택하라면 산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선택의 문제로만이 아니라면, 그리고 변화된 자신에게 다시 기회가 온 다면, 그것은 과거에 군림하고 거만했던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다. “자신이 지은 죄 값을 치를 수 있다면 치르기 위해 봉사하는 정치가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마저도 욕심으로 여길 태세다.

정치의 맛을 본 사람은 쉽게 그 맛을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인이 정치와 단절하는 것이 그 만큼 어렵다는 말일 것이다. 그런 위험과 유혹을 알기에 아직도 그는 반신반의하며 지역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동안 그의 삶의 변화 한 복판에는 컨텐츠 하나가 덧붙여져 있다. 디자인을 전공하는 만학도의 즐거움이다. 산과 만학으로 그는 반성과 새로운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가고 있다. 그리고 다시 지역 활동을 위해 기지개를 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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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안2동 2008-02-27 10:38:17
많이 변하셨군요.
전주대학에도 다니고 있다는 소식 들었습니다.
부디,건강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잘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