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덩어리들… 영화 ‘타짜’를 보고
욕망의 덩어리들… 영화 ‘타짜’를 보고
  • 이효성
  • 승인 2006.10.27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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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법에서는 도박을 하다 적발되면 단발적인 경우에는 형법 제 246조  ①항에 의거 500만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하고 상습적인 경우에는 동법 동조 ②항에 의거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TV 뉴스등을 통하여 우리는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에 비추어진 화투판과 얼굴을 가린채로, 변사또 생일잔치에 참석했다 암행어사 출동 소리에 이리뛰고 저리뛰는 남원근방의 원님들처럼, 혼비백산하고 있는 아줌마들의 모습들을 간간히 볼 수가 있다. 곧이어 추적60분 톤의 심각하고 흥분된 기자의 설명이 깃들어지고  음성변조된 아줌마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그냥 푼돈으로 심심풀이 삼아 화투장을 만진 것 뿐 이예요!” 

형법 제 246조 ①항에 ‘단, 일시 오락정도에 불과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 한다’는 예외 규정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판돈의 규모가 몇천만원에서 몇억 원까지 왔다 갔다 한다는 기자의 설명에 일시 오락정도에 불과한 노름이 아니라 근로의식을 마비시키고 한탕주의를 조장하는 반사회적인 불법도박에 다름 아님을 알게 된다. 

최동훈 감독의 영화 “타짜”는 허영만의 동명 만화원작의 1부 “지리산 작두”를 각색하여 직업도박꾼들의 세계를 날것으로 적라나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고니는 목재소에서 우연히 끼게 된 노름판에서 돈을 홀랑당 날리고 누나가 이혼으로 받은 위자료까지 몰래 홈쳐 노름판에 털어 넣고 만다. 이후 노름판이 박문성이라는 전문 도박꾼에 의한 사기 도박판이라는 것을 알게 된 고니는 박문성을 찾아 전국의 도박판을 헤매다 도박계의 전설 평경장을 만나 그의 기술을 전수받아 도박의 고수인 타짜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영화 타짜의 원작인 만화의 배경은 낮과 밤의 주인이 국군과 빨치산으로 수시로 바뀌는 60년대 지리산 한 산골마을을 배경으로 시작하고 있다. 만화에서는 전쟁 후 모든 것이 잿더미가 된 한국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와 허무주의가 소칭 “섯다”라고 하는 화투판을 배경으로 하여 잘 묘사되고 있다.

영화는 원작과 다르게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1995년도 전후를 배경으로 한다. 1960년대 초가 우리들 기억 속 너머의 먼 시간이어서 시대적인 정서에 대한 공감대를 얻어내기가 어려웠다면 1990년대 중반은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이라고 하는 거품경제를 거쳐 IMF 체제의 고통이 연달아 일어났던 질풍의 시간이며 많은 사람들의 기억너머 속에 각인되어 있는 시대였기 때문에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고니가 평경장의 집에서 본격적인 도박기술을 전수받는 도중 TV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소식을 전하자 고니와 평경장은 이런 대화를 주고받는다.

고니 : “백화점도 무너진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평경장 : “그럼 백화점도 무너지지. 세상에는 착한 사람만 사는 것이 아니거든!”

이후 성수대교 붕괴사고 뉴스가 흘러나오자 정마담(김혜수)의 나레이션이 이어진다.

“고니는 성수대교가 붕괴되자 전혀 놀라지 않았다.”

90년대 거품경제가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가 무너지듯이 꺼져버리고 희망을 저당 잡힌 사람들이 득실대던 때에 한탕주의에 빠져 도박의 세계로 불나비처럼 몰려드는 인간 군상들이 잘 묘사된다.

특히 딸의 병원비로 도박을 하다 몽땅 털리고 축 늘어진 어깨로 힘없이 걸어 나가는 대학교수를 측은하게 여긴 고니가 본전을 쥐어주며 다시는 도박장에 발을 들어놓지 말라고 하지만  그 돈을 쥐고 움찔하다 다시 도박판에 발을 들여놓는 대학교수의 표정에서 도박이 가지는 중독성의 무서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형법 제 246조에 의하며 도박은 불법이다. 그러나 도박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사람들 틈 속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가 도박의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가 있자 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 24조원이 날아가 버렸다. 아파트를 향해 달려들고 있는 사람들과 신문의 아파트 시세분석은 투기를 넘어 도박을 부추기고 있다. 평생직장이 무너지고 연봉제에 의해서 몸값이 천차만별을 보이는 일터에서는 어떻게든 몸값을 올려서 다른 곳으로 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로 득실된다.

어쩌면 고니가 “사나이로 태어나서 한번쯤은 엑셀을 밟아봐야 한다.”는 외침은 꼭 화투판이 아니라도 한국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일 것이다. 

사족. 돈에 대한 욕망이 득실거리는 도박판에서 정마담(김혜수)이 뿜어내는 탐스러운 육체는 자본주의가 배설해내는 물적 욕망과 성적욕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영화 도중 경찰 단순반이 정 마담이 개설한 도박판에 들이닥치자 정마담은 단속반장에게 이렇게 항의한다.

“이거 왜이래, 이래 뵈도 이대를 나온 몸이야!”

아무래도 감독이 우리나라 학벌에서 여대를 바라보는, 특히 이화여대에 대한 미묘한 마초적인 시각을 들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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