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복 칼럼>비정규직 이렇게 풀자
이태복 칼럼>비정규직 이렇게 풀자
  • 이태복
  • 승인 2009.07.0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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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부터 예견되어 왔는데도 이제사 큰일난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정부여당은 공기업부터 비정규직을 해고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비정규직제도 자체를 유지하는 데 초점이 가 있다. 야당은 비정규직을 무조건 정규직화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행 비정규직법은 제정 당시부터 논란이 많았다. 그 이후에도 입씨름만 무성했다.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강조하면서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이 가로막힌 채, 고용기간 연장이냐 유예냐, 그대로 적용하여 정규직화할 것이냐 등의 논란만 벌이고 말았다.

하지만 비정규직에 관한 입법문제가 제기된 것은 IMF 이후 급격히 증가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노동조건, 복지 등 열악한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문제의 출발은 비정규직의 열악한 환경과 차별제도 등의 해결이어야 한다. 임금이 정규직의 절반 수준이고 4대보험 가입률이 30% 수준이라면 그 격차와 4대보험 가입률을 제도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 것이냐가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 논의는 여야를 막론하고 비정규직법에 당파적 관점을 무리하게 적용하면서 맞부딪힌 것이다. 만약 처음부터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대우와 조건을 먼저 개선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면 비정규직 해법은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2001년 청와대 수석시절 몇 차례 수석회의를 거쳐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임금격차를 20% 내외로 제한하고 4대보험에 의무가입시키되 4대보험 가입 자체가 부담이 되고 있는 영세사업장의 경우는 정부차원에서 지원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노사정위원회에 넘겼다. 그러나 당시 노사정위원회는 재계의 비정규직 유지와 노동계의 정규직화 주장에 밀려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아울러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자거나 경제상황과 기업상황에 따라 다양한 고용형태가 있을 수 있다는 등의 원론적인 얘기도 진전시키지 못했다.

한국사회가 비정규직법을 2년 전에 우여곡절 끝에 만들었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이길래 비정규직은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차별과 처우의 격차가 더 벌어지는가. 현행 비정규직법은 비정규직이 처한 상황을 개선해나가거나 전체 비정규직 규모를 축소시키지 못한다. 즉, 비정규직 보호에 충실하지 못한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면, 현재 시점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첫째, 정규직 노동자와의 임금 격차를 20~30% 이내로 제한할 필요가 있다.

둘째, 4대 보험을 의무가입 시키되 영세사업장의 경우 정부지원을 통해 부담을 덜어줘여 한다.

셋째, 전체 고용시장에서 비정규직의 규모를 30% 이내로 한정해야 한다. 현재 비정규직은 전체 취업노동자의 50% 이상이다. 이는 한국경제가 얼마나 불안정한 토대 위에 서 있는가를 말해주는 중요한 지표다. 따라서 정부는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안정적인 일자리가 확보되도록 노력하고, 기업의 가치가 인건비 규모가 아니라 기술력에 의해 결정될 수 있도록 기술력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넷째는 첫째와 둘째사항을 시행하면서 비정규직 보호입법의 취지를 살려 비정규직 사용제한을 비정규직 총목표 달성기준에 따라 신축성 있게 운용해 나가야 한다. 지나치게 경직된 방식을 성급하게 도입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당국도 말로만 서민을 위한다고 말하지 말고 더 이상 비정규직을 더욱 확대하는 노동시장 유연성을 강조해선 안 된다. 가장 서민적인 비정규직 문제부터 해결해 간다면 정부의 서민행보는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야 정치권도 제발 쓸데없는 명분싸움은 그만하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들에게 구체적인 희망이 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

이태복 / 전 보건복지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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